푸른 맛 푸른 요리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우리의 전통 사찰음식 만드는 선재 스님

2007-09-22     관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집의 모든 음식은 수행하는 행자님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어요. 나물 한 가지를 상에 올려 놓으려면 노스님이나 자기보다 먼저 온 선배스님들과 함께 채마밭에 나가 나물을 솎으면서 나물 솎는 법, 다듬는 법, 삶는 법, 무치는 법, 상에 올리는 법 등을 가르쳐 주셨지요. 또 나물 삶은 뜨거운 물을 그냥 버리면 벌레가 죽으니 나물 씻은 물에 찬물을 붓던가 식은 다음에 버리라는 말씀도 더불어 해주셨어요.
행자시절 하심(下心)의 장이 되는 후원에서의 생활은 절집의 법도를 배우는 중요한 수행의 한 부분이며 사찰음식도 배우고 서로의 정도 오고 가는 중요한 기간이었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대중스님네들이 계신 곳과 강원, 선방, 그리고 몇몇 절만 빼고는 대부분의 사찰이 공양주 보살님들의 손에 의해 음식이 만들어지다 보니 절집의 음식문화가 많이 바뀌어가고 있어요.”
최근 일반 가정에서는 장을 담그거나 김장을 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식품공장에서 제조한 것을 사서 쓰는 경향이 많아졌다. 간편한 식품이나 인스턴트 음식들로 우리 음식의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는데 사찰음식도 이러한 시대의 영향으로 많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 자연식품이 아닌 공해식품, 인스턴트식품, 인공조미료, 제철이 아닌 음식물들이 자연 사찰에도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질된 음식문화로 수행인에게 부적합한 음식섭생과 균형이 제대로 안 잡힌 음식으로 인하여 질병이 많아지고 정신이 안 맑아져 수행이 장애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선재 스님이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사찰음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또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승가대학 3학년 때 기숙사에서 원주 소임을 맡으면서부터다. 소임이 자신에게 떨어진 이상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그 때나 지금이나 그것을 또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는 스님은 승가대 학인스님들의 공부를 돕는 수행식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음식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든 음식인데도 스님이 만들면 그 맛이 달라졌다. 자연 음식을 대하는 스님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멀리 나가셨던 스님들도 공양시간에는 반드시 돌아와 공양을 할 정도로 스님의 음식솜씨는 대단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절집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육식과 오신채,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그보다 훨씬 맛난 음식을 만들어내는 스님의 솜씨에 모두들 감탄을 했다.
이 기회에 사찰음식에 대해 연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지도교수와 도반스님들의 권유에 스님은 4학년 한 학기를 꼬박 부처님 당시의 음식문화에서부터 경전상의 음식문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찰음식문화에 대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썼다.
스님이 쓴 「불교복지증진을 위한 사찰 음식문화 연구」 라는 논문을 살펴보다 보면 정말 부처님께서 그렇게 자상하게 무슨 음식을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에 관한 것까지 낱낱이 말씀을 하셨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을 하게 된다.
선재 스님의 이러한 노력은 자연스레 알려져 법보신문에 ‘선재 스님의 푸른 요리’가 연재되었고, 또 이어서 불교 텔레비전에 ‘푸른 맛 푸른 요리’ 코너가 마련되어 3년간 방영되면서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 또는 타종교인들까지 고정시키는 인기프로그램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사찰음식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스님이 개발한 음식을 포함 400여 가지의 음식과 만드는 법이 소개되었다.
“새로운 것을 잘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절집에서 흔히 만들어져왔던 음식들을 소개하고, 눈 앞에 있는 재료를 어떻게 하면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만들까하고 고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음식들이 떠올라요.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만드니 하는 사람들도 좋아하고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사찰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일반 주부들, 요리연구가는 물론이고 특히 종교의 벽을 넘어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도 이 프로그램을 보시고 찾아오시기도 하고 또 타종교인들도 그 동안 막연하게 불교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없어졌다고 해요.
아무래도 사찰음식을 강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부처님 이야기도 하게 되고 또 사찰에서의 음식문화와 그 정신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니까요. 무슨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 언제 어떻게 얼만큼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체질을 결정하게 되고, 또 심성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음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일반적으로 육식을 금하는 사찰의 식생활로 채식이 많이 발달하다 보니 제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또 철지난 다음에도 먹기 위해서 저장식품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치나 제철의 식품을 소금에 절이거나, 또 뜨거운 소금물에 삶아 데쳐 말리거나 된장, 간장, 고추장에 담그는 장아찌류도 많이 발달하였고, 또 채소를 맛있게 먹고 또 모자라는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된장, 간장, 고추장도 찌개, 국, 쌈장 등 음식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저장식품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집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에도 파, 마늘, 젓갈은 넣지 않고 생강과 소금을 기본으로 합니다. 소금은 정제되지 않은 굵은 소금을 쓰며, 찹쌀풀, 밀가루풀, 보리밥, 감자, 호박 삶은 물과 잣죽, 배즙, 무즙도 넣어요. 젓갈 대신 발효식품인 간장, 또는 된장을 넣어서 담그기도 하는데 콩잎에 된장을 풀어 쌈을 싸먹기도 하지요. 가장 많이 쓰는 무, 고추, 열무 이외에도 고들배기, 무청, 갓 대오른 상치, 시금치, 고구마순, 연근, 우엉, 고추 등으로도 김치를 담그고, 산초가루나 재피가루, 재피잎을 넣은 김치를 담그기도 합니다. 그리고 절집에서는 음식을 남기거나 버리는 법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버섯 우린 물을 이용하거나 쓰고 남은 각종 재료를 알뜰하게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있지요.”
장아찌류만 하더라도 오이, 무, 더덕, 도라지, 콩잎, 신선초, 깻잎, 산초, 재피, 무청, 김, 대추, 은행, 두부, 수박, 고추, 푸른 토마토, 참외, 양회 등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힘들 정도다. 대개가 제철에 산이나 들에서 흔히 나는 채소나 산나물, 나무열매 등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조미료 또한 버섯가루, 다시마가루, 재피가루, 다시마물, 방아잎, 들깨가루, 날콩가루, 참죽순 말린 것과 참기름 들기름 등으로 맛을 내왔다.
또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연등회 팔관회 등 큰 불교의식에 의례음식으로 차병과류가 발달하면서 떡류와 한과류가 다양하게 발달했으며, 또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헌다(獻茶)의식과 사찰을 중심으로 차를 마시는 일이 성행하다 보니 다기도 발달하게 되고 다도의 예절도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찰음식을 통해 우리의 바른 음식문화를 일깨워주고 부처님 당시의 식생활 문화를 복지차원의 일환으로 이 시대에 맞게 정착시키고 싶다는 선재 스님. 스님은 스님들의 수행식도 선방에 계신 스님들과 강원에 계신 스님들, 그리고 도심에 나와 계신 스님들의 경우 각각 식단이 달라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중풍, 암, 고혈압, 당뇨 등 많은 현대병으로 사망률이 많은 이 시대에 사찰음식인 채식문화가 가장 이상적인 음식문화로 자리잡아가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스님은 당신의 본분이 수행이지만, 이 일 또한 자신에게 떨어진 이생의 소임이니 만큼 이를 정립하고 보급하는 것도 더불어 함께 해야 할 또 하나의 수행방편이라 여긴다.

선재 스님은 화성 신흥사 성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 봉녕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 은사스님을 모시고 신흥사 청소년수련회 수련프로그램 운영을 10여년간 했으며, 불교텔레비전 ‘푸른 맛 푸른 요리’를 통해 400여 가지의 사찰음식과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현재는 경기도 여주 이포나루 근처 토굴에서 수행정진하며 인연에 따라 우리의 전통 사찰음식연구와 보급에 정성을 쏟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