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정화능력

불교와 환경3

2007-09-22     관리자


무수한 티끌 속에
저마다 삼천대천세계가 들어 있다.
연꽃이 피어 있다.
또 그 무수한 연꽃 속 이슬 속엔
저마다 미소하는
부처님이 들어 있어
무량광명(無量光明)을 뿜고 있다.
- 박희진 님의 시(詩) ‘ 연꽃 속의 부처님’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던 사물도, 어느 땐가 마음 속으로 그대로 다가설 때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삼보사찰(三寶寺刹)을 순례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전남 승주의 송광사, 경남 양산의 통도사, 그리고 합천 해인사까지를 말입니다. 그때 통도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동대구 인터체인지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가득 연꽃군락들이 나타났습니다.
말로만 듣고, 스치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정녕 맑고 깨끗한 연꽃을 보며 저절로 환희심이 생겼습니다. 불자로서만이 아니라 연꽃은 정말 맑고 아름다운 꽃이구나, 맑은 영혼의 정화인 양 깨끗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7, 8월 경에 동대구 부근을 지날 때면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경주에서 포항을 거쳐 속초로 가는 동해가도를 지나가면서 동해의 푸른 바다를 접하면서 느끼는 활수함과 함께 울진의 연호정(蓮湖亭)과 삼척의 연적지에 핀 연꽃은 여행의 지루함을 씻어주고, 마음 속의 청량감을 저절로 드러내주는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좋은 인연인 듯싶어 연꽃을 심어 준 분들의 무량공덕(無量功德)에 마음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꽃은 불교적으로도 많은 인연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실 적에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때 부처님의 걸음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가르침을 피실 적에 묵묵히 연꽃을 드시니 오직 가섭 존자만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부처님의 뜻을 전해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두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성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향은 사찰건축에도 이어져서 사찰 조성시 공간적 구조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극락세계를 나타내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입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주석하시는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옮겨 놓는 것이 불자들의 이상이었고, 그 때에 부처님의 세계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연꽃으로 이루어진 못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못이라고 불리워졌으며, 연못은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사찰과 민간의 정원에 만들어 졌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연꽃은 다년생의 수생식물로서 관상용, 식용, 그리고 약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통 7~8월에 꽃이 피고, 꽃은 연한 홍색과 백색입니다. 꽃잎은 이른 아침에 피어 오후에는 꽃잎을 오므리는 개폐운동을 2~4일 반복한 후에 지게 됩니다.
9~10월 경 꽃잎이 떨어지면 벌집 모양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안에 들어있는 연의 종자를 연실(蓮實) 또는 연자(蓮子)라고 부르며, 연의 뿌리는 땅속에 줄기가 있는 지하경으로 되어 있으며, 지하경 끝의 세 번째 마디부터 자라는 부분을 연근(蓮根)이라 하여 식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꽃이 언제부터 우리 나라에 유입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으나, 8세기 경 불국사 조성시 경내에 구품연지(九品蓮池)를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통하여 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유입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꽃의 꽃 자체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많이 심어져 왔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숭유억불정책으로 사찰이 융성하지는 못했어도 송나라 때 유학자인 주돈이(周敦神)의 애련설(愛蓮說)의 영향으로 정원의 연못에 심어져 감상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연(蓮)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花中君子)이다.’

이와 같은 연꽃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가정에 연화도(蓮花圖)를 그려 두고 연꽃이 갖고 있는 풍부한 생명력과 생산력으로 인하여 길상행복, 생명창조, 자손번창 등을 기원하는 원천이 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심복의 부생육기(浮生六記)에 보면 임어당(林語堂)이 중국문학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부르는 운(芸)이라는 여인은 연꽃이 이른 아침이면 피고, 저녁이면 지는 것을 이용하여 작은 비단 주머니에 차를 싸 연꽃이 오므라들 때 연꽃의 화심(花芯)에 놓아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꽃이 피면 놓아 둔 차를 갖다가 차를 달여 주었다고 합니다. 이 연화차(蓮花茶)의 맛과 향기는 유난히도 좋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꽃의 특성은 앞에서도 얘기하였듯이 관상용이나, 식용 등의 효능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환경적으로도 연꽃의 기능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특히 일부 식물들은 환경오염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오염물질들을 자연적으로 치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충분한 과학적 정보가 마련되지 않아서 그렇지 자연은 스스로를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못이라는 작은 수중 생태계도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조절능력을 갖고 있는 자연입니다.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미생물은 미생물대로, 그리고 식물은 식물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생물이라 부르는 물과 공기, 그리고 햇빛들도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러워지면 스스로 깨끗해 지고자 하는 자정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연못에서도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주로 미생물과 물에 심어져 있는 연꽃과 같은 수생식물입니다.
연못에서 연꽃은 더러운 물들을 깨끗이 해주는 자연적인 정화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수중의 오염물질들은 연꽃의 양분이 되어 흡수되어 나름대로 물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보아서 보잘 것 없다고 느끼는 갈대나 부들 같은 수생식물들도 그 나름대로는 자연계에서 정화식물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연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하는 정화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적으로도 세상의 더러움 속에 물들지 않고 항시 맑은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상징성과 함께 그 스스로도 온몸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치유시키는 보살의 행(行)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연꽃은 그저 꽃만이 아니라 연화보살(蓮花菩薩) 또는 연화불(蓮花佛)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올해는 엘니뇨의 영향이어서인지 연꽃도 일찍 핀 것 같습니다. 바쁘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활짝 핀 연꽃을 보며, 연꽃의 맑고 향기로운 모습을 닮아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보고자 합니다.
지금 IMF구제금융 이후 여러 모로 힘든 시절에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더라도 한 줄기 빛과 같은, 그리고 한 떨기 꽃과 같은 마음의 순수함마저 잃는다면 세상이 어찌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루 해가 지면 밤이 오고, 다시 날이 밝아 오듯이 흙탕물 속에서 맑고 밝게 핀 연꽃과 같은 한 점 마음의 순수함과 성실함을 갖고 살다 보면, 밝고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 혼탁함 속에서 항시 맑고 밝은 모습으로 핀 연꽃을 보며, 이 어려운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나아가 우리의 마음도 밝아져서 세상이 좋아지기를 기대하며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연화보살님과 부처님이 모습을 두루 드러내시어 더욱 맑고 밝은 세상이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