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드는 휴가계획

삶의 여성학

2007-09-22     관리자

지난 달에는 바쁜 가운데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그들과 어울려 망중한을 즐겼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작가와 편집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었고, 가까운 교외에 있는 사진작가의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몇 명이 함께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은 사슴목장이 있는 곳이어서 전원의 맛을 한껏 즐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곳에서 서로의 다른 면모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노부모님이 함께 생활한다고 하여 그냥 가는 것도 그렇고 해서 우리가 손수 점심을 지어 드리기로 하고 약간의 음식준비를 하여 함께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 되돌아오기도 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시간이 맞지 않아 약간의 차질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두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마냥 즐거웠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마을 어귀로 접어들자 1960~70년대 정도에나 있음직한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들꽃이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좁다란 들길을 타고 배밭을 지나자 이내 사슴목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 시원한 바람 속에 호두나무의 은은한 향기가 환영이라도 하듯 우리를 감쌌고, 우리는 ‘우와’하는 감탄사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노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약수터였다. 그곳은 자연적인 약수터는 아니었지만 ‘아버님과 동네청년들’이 공을 들여 만든 약수터라고 한다.
점심을 지어 먹고 한 팀은 일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 팀은 그저 자연을 즐기기로 하였다. 서로의 일(?)을 끝내고 우리는 담소와 함께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 말수는 적지만 진솔한 표현에 속정이 깊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옥수수밭이 보이는 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어느새 ‘부모님 잘 섬기라’는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졌다. 의좋게 말씀을 나누시며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다들 자신들의 부모님이 떠올랐던 것이다.
매일 바쁘다는 이유로 본의아니게 부모님을 외면했던 자신들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결혼하기 전 몇 년간 나는 부모님과 단 세 식구만이 살았던 적이 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부모님의 인기척을 느끼면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이 예사로운 평소의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 혹시라도 인기척이 없으면 가슴이 철렁하여 안방문을 살며시 열어보던 일이 엊그제 같다. 이제는 혼자 되신 어머님을 뵐 때마다 ‘밤새 안녕하셨느냐’는 말의 의미를 새겨보게 된다.
유치원 원장을 하셨던 한 분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아버님께서 ‘오늘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바쁜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올께요’하고 하직인사를 하고 서울로 온 것이 바로 아버님과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이야기에 다들 숙연해졌다. 정말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돌아가신 후에 가슴을 치고 운들 아무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다가 마른 뼈 무더기를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큰 절을 하셨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본 제자가 연유를 묻자 부처님은 “이 뼈는 전생에 나의 조상이었을 것이고 또 나의 부모도 되었을 것이므로 예배한 것이다.”라고 하신 후 부모님의 은혜에 대하여 설법을 하신 내용이 「부모은중경」에 있다. 「부모은중경」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를 열 가지로 나열하고 이와 대비하여 자식들의 불효를 예를 들어 설하고 있다. 그 중에는 “좋은 음식을 가져다가 처자식을 먹일 때는 체면도 없이 비루한 짓을 저지르다가도 부모님께 대하여는 남들이 비웃는다 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 허다하며, 제 아내나 첩과 약속한 것은 꼭꼭 지키면서도 어버이의 말씀과 부탁은 쉽게 저버린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여식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만일 딸이 되어 출가하게 되면 출가 전에는 그렇게 효순하던 딸도 제남편을 맞은 뒤에는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차츰 떨어져서 조금만 꾸짖어도 이내 원망을 하기가 일쑤이고, 또 제 남편을 따라 타향으로 옮겨가게 되면 부모와 이별하고서도 소식을 끊고 편지 한 장도 보내지 않으니, 부모는 딸의 얼굴 한 번 보고 싶어하는 것이 마치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 부모로 하여금 간장이 끊어지듯이 생각하게 한다.”는 것으로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설법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불효를 뉘우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가 찾아 뵐 부모님이 한 분이라도 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면서 이번 여름에는 ‘돈 드는 휴가’가 아닌 ‘정드는 휴가’로 계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멀리 외딴 곳을 찾을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찾아 뵙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순(孝順)하고 감사드리는 정겨운 부모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정이 많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