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가 열어주는 공덕의 길

특집 - 참회

2007-09-22     관리자

제가 ‘참회’라는 말의 참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불교에 몸을 담은 지도 한참이나 지난 뒷일이었습니다. 지금부터 30년 전 할아버지의 재를 올리러 해인사에 갔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저는 불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가련한 중생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올바른 불자로서의 길을 이끌어주신 분이 성철 큰스님이셨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그야말로 부처님의 은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쑥맥인 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간곡하게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로고! 그런 몸으로 어떻게 험난한 세파를 헤치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허나, 부처님의 은덕은 가없는 법. 아가야, 네가 그래도 인연이 있어 부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으니 나 또한 인연법을 외면할 수가 없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성철 큰스님께서는 대충 그런 말씀을 저에게 내려 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그 때 내리신 말씀 가운데 지금도 제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가, 너는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있을 뿐, 송장이나 다름이 없어. 일심으로 예불하고 기도를 올려라. 그렇지 않고는 온전히 살아 버티기 어렵느니라. 먼저, 큰법당에 가서 삼천배부터 올리고 오너라. 또 앞으로 절에 올 적마다 삼천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아비라 주력을 일심으로 외워라. 그래야만 네 몸을 거듭나게 할 수가 있느니라. 부처님의 가피력을 얻어야만 너는 온전한 몸으로 바꿀 수가 있겠다. 그리고 집에서도 108배를 날마다 올리거라. 아가, 내 이 말을 명심하고 실행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불이 무엇이며 어떻게 올려야 하는 것인지, 삼천배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비라 기도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저는 큰스님 앞에서 얼어붙은 듯이 쪼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저 “예, 예” 하는 대답으로만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서 큰법당에 가보아라.” 하시는 큰스님 말씀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님 한 분이 고갯짓으로 저에게 일어서기를 재촉하시기에 그 스님을 따라 큰법당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생전 처음으로 절을 찾아든 제가 예불방식을 알 턱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눈치 하나는 살아있는 터라 곁눈질로 스님의 동작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인사 큰법당인 대적광전에서 지난 30년 전에 올려온 삼천배의 시작이었습니다.
해방을 맞은 1945년은 우리 겨레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해이지만 제 개인으로서도 잊혀지지 않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 나이 열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해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를 초토로 그을려버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원자폭탄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사태가 터진 지도 훨씬 뒷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멋모르던 어린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성철 큰스님 말씀대로 제 몸이 송장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것도 그 원자폭탄 때문이라는 것을 세월이 아주 흘러 어른이 된 뒷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천행으로 살아남기는 했어도 원자탄 방사능 때문에 흐느적거리던 몸으로 삼천배라는 것을 시작했으니, 지금 돌이켜 보아도 모험이나 다름이 없던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이 성한 불자들도 해내기 버겁다는 삼천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 때 삼천배를 해냈습니다. 이를 앙다물며 밤을 새워 절을 했습니다. 장장 13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성철 큰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저는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해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삼천배는 제 몸뚱이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꾸어 주었고, 더 나아가서는 가없는 부처님의 은덕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삼천배를 마치던 바로 그 날 큰법당에서 나오면서 웬일인지도 모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이 쏟아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합장례를 수도 없이 올렸습니다. 해인사 가람 안을 헤매면서 그 땅바닥에 수도 없이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것은 의식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제 행동을 의식하지는 못했을 망정 그것이 제 전생업보에 대한 참회라는 것은 확연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거듭해오는 동안 참회수행의 공덕을 입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게 모르게 심어온 인과 그에 따른 업을 씻어내는 데는 참회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일심으로 예불해오는 가운데 성철 큰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의 법문에 힘입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이제는 참회함으로써만이 지난 날의 죄업을 씻어 없앨 수 있다는 ‘참회멸죄(懺悔滅罪)’라는 말씀이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내가 옛날에 갖가지 악업들을 지은 바가 있으며, 이 모두 다 무시로부터의 탐진치로 말미암음이요, 이것은 다 몸과 입과 뜻이 낳은 바이매, 이 일체를 나는 지금 다 참회하노라〔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痴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하는 참회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올바른 참회가 되고 더불어 공덕을 쌓게 된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참회의 공덕으로 일체의 죄업을 소멸시킨다.”라는 말씀의 뜻도 겨우 알았습니다.
저는 대수술을 받은 몸입니다. 그 아픔은 말로써는 도저히 드러낼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몸 가운데 탈이 난 곳을 도려내는 그 아픔, 그런 아픔이 따르는 참회라야만 참다운 참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끝에 메스의 생채기가 남아 있듯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의 생채기는 그래도 남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생채기마저 깡그리 씻어 없애는 데는 얼마만큼 참회를 거듭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저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자기 정화를 위해,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하고, 꼭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큰스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루도 참회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부처님을 떠난 생각은 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참회의 공덕으로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의 경지를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더듬을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지심귀명례 법계장신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