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계룡산 갑사

템플스테이

2007-09-20     관리자
“갑사에서 겁나게 복을 많이 받아부렀는디, 어째야 쓰까잉”


옛 고승이 “매서운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고서야,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不是一番 寒徹骨 爭得梅花 撲鼻香).”라고 했던가. 공주 계룡산 갑사(주지 장곡 스님)를 찾던 날은 공교롭게도 전북 임실의 기온이 영하 23도까지 곤두박질치던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갑사에 도착하니 한층 어두워진 하늘에서 거센 눈발을 뿌려댄다. 대웅전을 향하는데 난데없이 수십 마리의 까마귀떼가 나타나 머리 위에서 웅장한 군무(群舞)를 펼쳐보이며 분에 넘치는 환영인사를 해준다. 하얀 눈 사이를 까만 날개짓으로 가르는 모습이 어쩌면 1박 2일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딴 생각 말고 마음 공부 잘하라는 위압적인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르리라.



방사(房舍)로 배정된 팔상전 녹원실에 짐을 풀고 용담 스님을 따라 갑사 순례에 나섰다. 1,500여 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갑사는 다양한 불교문화재를 보유한 불자들의 성보(聖寶)로서 한국불교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흔히 눈에 띄는 나무조차도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것이라 하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중에서도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유적들이 있다.

대웅전 오른쪽 계곡을 따라 약 100여 미터 오르면 흡사 천주교의 마리아상을 연상케 하는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자연동굴에 모셔져 있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영험하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실제로 이곳에서 기도하고 난 후 병을 고쳤다는 사례가 많다고 전해진다. 또한 들리는 얘기로 도력(?)이 떨어진 무속인들이 기를 충전하기 위한 기도처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눈을 소복이 이고 있는 삼층석탑과 마주친다. 이 탑은 백제 비류왕 때 왜구의 노략질로 피폐화된 갑사를 중창하는 과정에서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다리를 건너다가 죽자, 그 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우탑(功牛塔)이다. 어디선가 바람소리와 함께 소의 울음소리가 옷자락을 잡는 듯하여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공우탑과 대숲터널을 지나 내려오면 너른 터에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철당간(鐵幢竿)이 우뚝 솟아있다. 사찰에 법회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외부에 알리기 위해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한다. 당간은 신성한 지역에 나쁜 액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선사시대의 솟대 신앙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하니, 계룡산의 신령스런 민족 정기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리라.

이번 갑사 템플스테이에는 우미건설 임원진과 협력업체 사장단 55명이 함께했다. 자기 수양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업체간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활용하게 된 것은 이광래 우미건설 회장의 제안이라고 한다. 과거 회사 사정이 어려웠을 때 3개월간 사찰에서 기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마음의 평온을 얻고 사업을 재개해 튼실한 중견기업으로 성장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시의 사찰생활 경험을 일부라도 나누고자 템플스테이를 올해부터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삼은 것이다. 원주 구룡사, 순천 송광사에 이어 갑사가 세 번째이다.



인사상무 이호재 씨는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여하신 분들은 대부분 40·50대로서 그저 앞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고요한 산사에서 머물며, 뒤를 돌아보고 ‘참나’를 찾아가는 값진 체험이 될 것입니다.”라며 참가자들의 호응이 대단해 새해에도 공주 마곡사, 합천 해인사 등으로 템플스테이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정갈한 산채비빔밥으로 저녁공양을 마치고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법고 소리에 이끌려 범종루로 나갔다. 중년의 참가자들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두 손을 합장한 채, 장삼을 흩날리며 쉴새없이 법고를 울리는 스님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황홀한 감동 속으로 빠져든다.

저녁예불을 드린 후 용관 스님의 지도로 서로 마주보며 108배씩 주고받는 108참회가 이어졌다. 관절이 삐걱대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끝까지 절을 마치는 모습엔 어떤 절절함이 엿보였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힘든 고비가 어찌 한두 번이었겠는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부처님과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면서 용서와 화해의 깊은 공감대가 흐르고 있었다.



108참회로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음의 때까지 벗겨낸 참가자들이 동진출가하여 13년째 승복을 입고 있다는 용관 스님에게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늘어놓는다. 속세에선 조카나 자식뻘 되는 나이지만 스님을 대하는 태도가 자못 진지하다. 조금만 더 안정되면 출가를 감행할 속내를 조심스럽게 비치기도 한다. 조계종 출가 연령 제한이 50세라는 것을 알고는, “그럼 안 되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출하자 박장대소가 터진다.

다음 날 아침에 있을 발우공양 습의와 참선지도가 있은 후 잠자리에 들기 위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방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화장실과 샤워실이 붙어 있어 이용하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절절 끓는 방바닥에 누우니 세상 근심이 뉘 집 개 이름만 못하다.

갑사의 하루는 온 세상이 달게 잠들어있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얼음보다 차가운 공기가 일순간에 숨구멍을 습격하여 모든 감각을 번쩍 깨워놓는다. 산 속 혹독한 추위와도 하룻밤을 같이 지내니 정겨운 도반이 된 듯하다. 목탁소리를 들으며 청량한 산사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마음껏 들이마셔 본다. 그 신선함이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맛이다.

온몸의 기운이 살아 움직이니 아무런 걸림없이 지순한 마음으로 새벽예불과 참선, 발우공양을 마쳤다. 울력시간, 속세의 번뇌를 남김없이 쓸어내듯 경내의 눈을 말끔히 비질하였다. 이후 대자암까지 산책이 이어졌다. 숲 속을 자분자분 걸으며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데, 청솔모 한 마리가 자연 속에서 그대로 얼어버린 천연아이스크림 감을 따다 앞발로 들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긴다.

아쉽게도 갑사의 대표적인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인 ‘불교무술’은 날씨가 워낙 추운 탓에 참가자들의 건강을 고려해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강당에서 사희수 무술 사범으로부터 호흡법과 선(禪)체조를 배웠다. 참가자들이 대부분 건강에 가장 관심이 많은 터라 한 동작도 빼놓지 않고 따라하려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이다.

모든 프로그램을 여법하게 끝마치고 수료증을 받아든 한 참가자가 진한 전라도 사투리로 총평을 한다. “아따, 우리가 갑사에서 겁나게 복을 많이 받아부렀는디, 어째야 쓰까잉.”

참가자들이 떠난 자리가 쓸쓸해서일까. 불현듯 함박눈이 쏟아져 순식간에 갑사를 하얗게 뒤덮는다. 배웅을 나온 것일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까마귀떼가 커다란 나무 위에 앉아,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책을 하듯 산사를 내려가는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취재정리|양동민·사진|최배문

갑사 템플스테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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