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을 바로 살펴야

번뇌에서 건지는 깨달음 18

2007-09-20     관리자

의사들은 입 냄새로 사람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냄새의 종류에 따라서 내장의 어느 부위가 비정상의 상태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지침술가들은 손바닥에 내장과 연결된 선이 있다고 주장한다. 손바닥 각 부위의 혈색을 살펴서 내장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고 또 손바닥에 침을 찔러서 속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상가는 얼굴을 보고 사람의 과거나 미래를 짐작한다. 나는 여기서 관상술이 맞다 틀리다를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슬픔, 울화, 기쁨에 찬 사람의 표정이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살려고 다짐하는 사람의 얼굴이나 눈빛과 남을 속이고 이용하려는 사람의 얼굴과 눈빛은 다를 수밖에 없다. 관상으로 사람의 길흉화복을 정확하게 점칠 수는 없지만, 마음가짐의 대강을 짐작할 수는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조짐을 먼저 보인다. 해가 갑자기 뜨거나 질 수 없다. 해가 뜨기 전에는 어둠 속에서 미리 밝음을 보이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는 밝음 속에서 미리 어둠을 보인다.
인공위성을 비롯한 최신의 장비로 지구 전체의 기상을 관측하기 이전의 옛날에는 태풍이 갑자기 오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태풍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전조를 내비친 다음에 나타난다. 우리 나라에서 만나는 태풍의 예를 보자. 태풍이 발생하는 필리핀 부근으로부터 대만, 제주도, 동해를 지나 북쪽으로 빠져나간다.
발생지로부터 우리 나라에 도착하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태풍이 어떻게 생기는 지에 대해서 나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태풍이 갑자기 생길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나의 큰 태풍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기상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태풍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태풍의 조짐을 보고 대비를 하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하나는 열의 견본 또는 조짐
사법고시는 판검사와 변호사를 선발하기 위한 국가 최고 시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지난 번 1차 고시에서 불합격처리된 한 수험생이 합격으로 번복된 사건이 있었다. 조사해 보니 그 수험생의 답안지가 잘못 분류되어서 점수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불합격자가 합격으로 바뀌어지기는 국가고시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과거에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수험생의 점수가 잘못 처리되었다면, 합격하거나 탈락한 다른 수험생의 점수도 잘못 처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의문이 생긴다. 물론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우리가 하나의 일을 다른 열의 견본이나 조짐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평꾼의 비뚤어진 시각이 아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갑자기 내린 초여름의 비로 인해 중랑천의 물이 서울의 지하철7호선으로 넘쳐 들어온 사건이다. 환승역 공사를 하면서 중랑천 물이 불어 났을 경우를 예상해서 물막이를 완벽하게 해야 하련만, 공사의 설계부터가 문제이고, 그나마 설계에 명시한 물막이 높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설계도면보다도 2.7미터 낮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경제적 국난이 닥쳐온 코스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보 사건이 터지고 기아를 비롯한 몇몇의 대기업이 무너지더니 외국자본이 도망쳐 나가고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참, 그전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졌던가. 그렇다면 이번 지하철7호선 침수는 또 다른 사건의 조짐이 아닐까.
예전에도 '개혁'이라는 말은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높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개혁을 외쳐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이 꼴이 되었다. 지금도 '개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이 난무한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7호선 침수는 아주 불길한 조짐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만 하다. 이 하나의 사고 뒤에는 열 아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고의 가능성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남을 읽을 때는 편견 없이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읽는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입사 지원자가 미래에 펼칠 능력보다는 먼저 과거의 행적을 본다. 만약 지원자의 신상란에 폭력, 사기 등의 전과 사실이 있다면 회사는 그를 채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가 한 번 실수를 저질렀으면 그는 다시 두 번의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전과자는 감옥으로부터 나와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가 힘들다고 한다.
반대로 선전에 의해서 얻어진 이름이나 인기 때문에 실제의 인품 이상으로 과분한 대우를 받는 예도 많다. 가문, 재산, 학벌이 좋다고 해서 꼭 인격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저것들을 갖춘 사람을 우대한다.
세상에는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면, 그것이 습관이 된다. 이것이 업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마음의 의지가 있다. 업의 습관도 바꿀 수가 있다. 한때에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좋은 사람일 수만은 없듯이, 한때에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나쁜 사람일 수는 없다. 상대를 읽을 때 과거의 행적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아울러 하나가 나쁘면 반드시 둘이 나쁠 것이라는 편견을 지우고 사람을 대해야한다.

나의 업은 불길조(不吉兆)로
우리는 남을 읽는 일과 자신을 읽는 일을 구별해야 한다.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편견없이 대해야 하지만,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불길한 조짐으로 긴장해야 한다.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다고 치자,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상대가 나에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이것은 확실히 불길한 징조이다. 나는 머지 않아 망신을 당하거나, 갖가지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나의 부하나 동업자가 실수를 한다고 치자. 이 또한 불길한 징조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내가 아니지만, 그 원인은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상대의 실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게으르고, 기도나 정진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이것도 불길한 조짐이다. 머지 않아 나에게는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이다.
일이 잘 풀리면 나에게 방자한 마음이 생길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잘 못 풀릴 경우에는 더욱 조심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인다면, 불길이나 불행을 좋은 쪽으로 돌리거나 최소한 그 나쁜 정도를 감소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조짐을 잘 읽고 그에 대처한다면 개인, 직장, 사회 또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조짐이 나타난다는 것, 열 가지로 이루어진 속은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의 견본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살피자. 남의 잘못을 볼 때는 누구나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고, 나의 경박스러움을 볼 때는 이것이 곧바로 닥칠 불길을 예고하는 조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이석우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