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체의 바이오(BIO) 표현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 판화가 박동윤 교수

2007-09-20     관리자


지난 2월말에서 3월초 까지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는 초대전으로 박동윤(42세.공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의 판화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화살과 과녁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수 있는 도자기며, 전통문양,꽃,과일,찻잔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 작가의 성실함과 정돈된 생각들이 그대로 형상으로 표출되어 있었다.
"리얼리티(reality)가 있다고 했을 때 그의 경우는 형체 자체를 고스란히 옮기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질감까지도 리얼하게 재생 해낸다는 데에 고유한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물체의 바이오(bio)를 느끼게하는 셈이다."
미술평론가 서성록 씨의 말이다. 원래 서양화를 공부했던 그가 동판화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86년, 사실적 묘사를 좀더 잘해보고자 해서다. 그리고 그해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서 주는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동판을 다룬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그림공부지만 한순간도 그것이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작품 하나가 되어져 나오기까지의 피를 말리는 우여곡절 속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해 가야 하는 것인가...끊임없는 좌절과 의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도 그 작업속에서 또 삶의 의미를 찾곤 한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는 화살과 과녁들.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는 화살은 무기의 개념이 아닙니다. 주로 공간에 떠 있는 이 화살들은 시간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심볼(symbol)이에요. 최근 들어 화살의 수가 줄고 있는데 많다고 해서 그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자신 나이를 더해 가면서 모서리가 하나하나 깎여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차분하고 편안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차츰 작품의 소재도 편안한 것을 찾게 됩니다. 보는 사람들에게도 친근감을 주고 편안함과 부드러움을 줄 수 있는 소재들을 찾고 있어요. 도자기며, 우리의 전통문양이며, 일상 중에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형상들을 그림으로 드러내 보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쉰 살이 넘으면 대체적으로 그 동안 해왔던 대로 그냥 진행되는 것이니 만큼 그 때는 변신이라는 것이 쉽지 않아요. 한 살이라 도 더 젊었을 때 끊임없는 자기 변신이랄까 변화와 자기개발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올 10월에 있을 개인전에는 회화작품들을 내보일 것입니다. 10년 넘게 해온 동판화 작업이지만 그동안 해왔던 판화의 이미지와 회화의 이미지를 맞춰보고자 해서다.
그것은 생각대로 그렇게 쉽게 되어질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성실하게 이 작업에 임할 것이다.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부인과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형제들의 격려와 따끔한 평가, 그리고 충고는 그의 작업에 많은 힘이 되고 있다.
일곱 남매 중 자신을 비롯해 네형제가 미술공부를 했다. 지난 1994년 운현궁미술관에서 있었던 한국불교미술인협회 창립전에 둘째누님인 박동희(조각) 선생과 작은 형님인 박동춘 (회화)선생이 함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고, 지금은 스님이 되신 바로 손위 누님은 출가 전 금속 공예를 했다. 올해 은석초등학교를 퇴임한 큰느님 박동원 선생님도 음악에 타고난 재능(많은 어린이 찬불동요를 작곡)이 있는데 역시 미술공부를 했어도 훨씬 탁월 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저희 어머님꺼서 특히 미술감각에 뛰어나셨던 분이셨어요.
특별히 교육을 받으시지는 않았지만 색감각이나 조형에 대한 각별한 눈을 가지셨지요. 어렸을 때 기억에 어머니는 수를 많이 놓으셨는데 수본도 당신 자유자재로 만드셨고, 색깔도 그 당시의 다른 분들과는 많이 달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창의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박동윤 교수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하게 된 것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의 격려가 절대적이었다. 선생님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시고 늘 곁에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당시만 하더라도 갖기 힘들었던 여러 색깔의 크레파스며, 물감 등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공주교육대학부속 초등학교 교사였던 큰누님이 마련해준 30색깔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보니 많은 책임을 느낍니다. 특히 그 학생들이 앞으로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지만 자주 대화를 나누며 인생이야기를 해요. 주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다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게 되고, '모든 것은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너무 마음을 멀리 보내지 말고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돈독한 불교신심을 가지신 장모님의 권유로 결혼하기 전 능인선원에서 수계를 받고 결혼을 했고, 출가한 누님을 8년 만에 처음 뵈었을 때는 비록 한없는 눈물을 쏟아 냈지만 달라진 누님의 보습에서 오히려 당당함과 분명함, 경외감, 그리고 무엇인가 자신과는다른 모습을 보면서 슬며시 불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슬비에 젖어 들 듯 그의 작품속에도 이러한 생각들은 드러나고 있었다.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다보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 불교적인 이미지이기에 굳이 특별한 형상을 그리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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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윤: 1957년 충남공주에서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여섯 차례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의 국내외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 공주교육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회화를 시작으로 10여년동안 동판화 작업을 했지만 다시 회화를 통해 그 만남을 올가을 개인전에서 선보이고자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옥정 불자님의 보시행으로 입력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