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의 히말라야티벳 기행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20     관리자

히말라야란 산스크리트로서 눈을 뜻하는 `히마'와 집 또는 근원을 뜻하는 `알라야'라는 말이 합성된 것으로 `눈의 근원'이란 뜻을 나타낸다. 히말라야는 눈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수백만 사람에게 불멸의 지혜와 영성(靈性)의 보고(寶庫)이며, 지금도 이곳에는 성자들이 계시기도 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몇 가지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곳 성자들을 만나고 더불어 이런 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자 하이었다. 다행이 티벳 수도 라사에서 성자를 만났지만 고산병이라는 비싼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고 나서였다.
하지만 고산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적인 체험도 하게 되어서 이것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고소증 체험현장
우리 일정 중 5일차가 되는 8월 4일, 니알람(해발고도 3,750m)의 새벽이 개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우리처럼 닭우는 소리가 아닌 개 짖는 소리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이곳에는 개가 많았다. 새벽 어둠을 헤치고 밖을 나가보면 하늘의 별들이 그렇게 투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맑고 밝았다.
오늘은 이번 여행의 최고 난코스를 통과해야 하는 날이다. 장장 430km 즉, 하룻동안에만 비포장 길을 서울서 부산까지 달려야 한다. 3,750m의 높은 고도지만 아직도 올라가야 하는지 차는 계속 높이 높이 오르기만 했다.
황량한 주변 산들에는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신기한 산의 원형 그대로 보여주지만 쾌청한 날씨 덕분으로 저 멀리 고산준봉들이 살짝살짝 고개를 내밀어 산세의 기묘함을 만끽하면서 그런 대로 오전 일정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여기서는 고속도로라고 해도 모두가 비포장 길이어서 차는 몹시도 흔들려 조금씩 멀미가 나기 시작했고 달리는 차의 먼지로 인해 창문은 대개 닫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우리 일행은 해발고도 4,000m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고 중간에 쉬는 곳이 바로 5,400m의 엄청난 높이로 산소가 매우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창문까지 닫는 어리석음 마저 보였다.
지금 당장 심각한 환경에 처해 있고, 알게 모르게 고소증의 고통이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왔지만 대부분 잠을 자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주변 경관의 아름다음에 깊이 젖어서인지 그 고통을 바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순간, 버스 뒤에 앉아 있던 차사장님이 중간에 있는 정상무님을 보시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잠을 잘 때 고개가 떨구어지더라도 다시 고개가 올라오든지 아니면 최소한 이리 저리로 움직이기라도 해야 되는데 오랫동안 계속해서 한곳으로만 고개가 졌혀저 있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가와 손목을 만져보았더니 손에는 싸늘한 기운이 만연했다.
엉겹결에 다리 부분도 만져보자 그곳도 차갑자 총비상이 걸렸다. 느닷없이 처음 당하는 일이면서 몹시 흔들리는 버스 속이라 당황스러움은 더 했고, 여기저기서 저마다 알고 있는 응급처치로 바쁜 손길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느 여자 분이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던 수지침을 때마침 준비를 해오셔서 양손 10군데와 양말을 겨우 벗긴 양발가락 10군데 그리고 중요한 혈이 가는 곳을 여기저기 따보았지만 피가 나오지 않자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남을 살리자고 혼신의 노력을 하는 이 여자 분에게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던 고소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떠나기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고 그 전날 장무에서는 심한 감기몸살까지 겹쳐 그 동안 무척 힘들게 지내왔던 분이셨는데 그 증상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여기저기를 시도한 결과 한참이 지나서야 다행이 피가 나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뒷좌석에는 이미 어느 여자 분이 벌써부터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몹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했다.

고소증 해결방법
이렇게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고소증이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측면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우선 전체 여행일정에서 고소적응증을 위해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차츰차츰 올라가는 여정을 잡는 것이 매우 필요했다. 우리는 네팔 카트만두)1,400m)에서 장무(2,300m)와 니얄람(3,750m)을 거쳐 5,000m 고개를 두 개나 넘어 시가체(3,900m), 라사(3,650m)로 들어갔다.
바로 비행기편으로 저지대에서 라사(3,650m)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약간 무리가 따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우선 고소증이 왔을 때 창피하다고 숨기려 하지를 말고, 약을 먹거나 주무르거나 지압 등을 하기보다 제일 먼저 산소를 마셔야 활 것 같다.
요즘은 시중 약국에도 캔으로 된 산소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지급을 받아 수시로 산소 공급을 하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여행 중에 찾아오는 감기몸살이나 두통을 제때 아스피린 등을 복용하여 미연에 방지하며, 특히 멀미가 온 상태면 음식을 먹지 못하므로 빈속에도 먹을 수 있는 `타이레놀' 같은 약품준비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는 속이 울렁거릴 때 `다시마'나 `오징어' 그리고 `오이' 등을 씹을 것을 준비하여 조금씩 씹어 주면 울렁거림을 가라앉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과 즐기는 마음에는 고소증이 없다. 평소 비즈니스 업무와 가정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여행을 떠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웠던 분들은 고소증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근엄하신 분들을 한결같이 심한 고통의 대가를 치뤄야 했다. 고소증이 오면 누구나 분별이 심하게 올라오게 된다. 짜증이 나고 몸이 불편하다 보니 자칫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려 화를 내는 수도 있다. 남을 위해 주기보다는 우선 자신이 불편하므로 그런 행동을 하는데 그런 분들이 더욱 심한 고소증의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고소증을 많이 겪는 편이었다. 남자 분들은 식사를 할 때도 유머가 없고 시종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여자 분들 테이블에서는 고소증으로 인한 고통이 있더라도 언제나 밝고 웃음이 넘치며, 풍부한 대화 소재의 연결로 유쾌한 분위기가 끊이지 않았다.
평소 생활에서도 밝고 즐겁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호홉법을 평소에 많이 익혔거나 여기 와서도 일심으로 긴 호흡을 정성껏 하신 분은 많은 효과를 보았다. 내쉬는 숨을 길게 하면 부교감신경이 흥분하여 몸의 상태가 많이 가라앉아 몸에 산소요구량이 줄어들므로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도 쉽게 적응되어 고소증세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약 고소증이 계속 되더라도 식사는 꼭 챙겨 먹여야 했다. 다른 조리음식은 몸이 받지를 않았고 과일이나 죽(미음) 위주로 먹었는데 특히 과일이 이렇게까지 친근한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미음도 몸에 흡수되는 것이 마치 스폰지처럼 쏙쏙 되는 것 같아 인간의 손이 가급적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 최상의 식사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소중한 영적 체험을 하기도 했다. 먼저 5,400m 고개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영봉이 8,000m급의 `치사팡마'인데 정말 이곳에 서 있기만 해도 고소증세로 귀가 멍하고 머리는 아프지만 이런 증상과는 무관하게 알 수 없는 기운의 흐름이 하늘에서 내 몸 정수리를 타고 흘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산에 가면 산기운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그리고 고소증세로 그렇게 아프다가도 금강경을 독송하게 되면 그 통증이 말끔히 가셔지는 현상을 여러분이 경험하게 되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현상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더 깊은 환희심과 발이나 손이 따뜻해지고 나아가 무엇이 알아지는 능력까지 생기는 것을 통해 우리는 금강경의 신비스러움을 체험하였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수확이기도 했다.
고소증세가 주는 의미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고소증세로 시달리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그 동안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이것을 토대로 진정한 자기를 찾는 고귀한 영적 여행이 될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가만히 보니 형편없는 내 꼴만 보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동안 얄팍한 자기 성실로 안주한 것들이 모두 무너졌고 그 엉성함이 밝은 대낮에 발가벗겨진 것처럼 백일하에 드러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기만이 가지고 있다고 자만했던 당당한 그 무엇마저도 여기서는 쓸데없는 분별일 뿐이었다. 여기서는 말없는 말도 사라져야 했고 소리 없는 무언이 아닌 진정한 무언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동안 잘못된 길을 걸었음을 깨닫게 해준 자연의 스승은 소리 없이 그 장엄함과 육중함으로 나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
`무아상', 『금강경』을 읽을 때 금강경 곳곳에서 수없이 해댔던 그 말씀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화석처럼 느껴졌는데 비로소 생명으로 생생히 살아나는 듯하였다. 하지만 무아상의 자리에 드는 과정과 그곳에 머무는 것에는 공경심으로 인한 즐거움과 환희심만을 통해서였다. 그 상태만이 생명의 고귀한 꽃은 피어나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새겨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여행은 앞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들려주는 소리 없는 법문이어서 아픔만큼 유익했다. 결론이 이렇게 감사의 마음으로 귀결되니 그 동안의 여정이 새삼 그리워진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류기송(柳基松)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