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순례기] 5.티벳 고원으로

수미산 순례기

2007-09-20     김규현

순례(pilgrimage) 양자강 발원지의 첫 동네 타타하연에서 청해호(靑海湖)에서부터 이틀이나 타고 왔던 버스를 보내고 하루를 머물며, 내일이면 다시 만날- 저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당구라 산맥 너머에 펼쳐져 있을 티벳트 본토를 그려보았다. 아울러 이번 순례길의 의미도 실크로드의 돈황(敦湟)에서 시작한 이번 나그네길은 광활한 청장 고원을 동서남북으로 횡단하여 벌써 6천리를 주파하였고 날수로도 보름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티벳 고원으로 입성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나그네길은 특정한 목적지가 없다.

수미산 자체가 경전상에서나 존재하는 이상형의 산이지 실제 존재하는 이 지구상의 위도상 한 지점으로 표시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기에 딱히 목적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수미산을 찾아 나선 자체가 구름 속에 솟아 있는 환상을 찾는, 시쳇말로 `뜬구름 잡는 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이상한 모양을 한 봉우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하얗게 빛나는 작은 봉우리였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어느덧 이제는 마음의 바다를 뚫고 나와 푸른 하늘에 닿을 만큼 거대한 산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 높고 눈부셔 감히 처다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 산이 바로 수미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하였다기보다 그냥 `수미산이다'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산은 대설산 히말라야 너머 티벳 고원 어디엔 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아니 꼭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이번 나그네길은 목적지가 없다고도 볼 수 있고 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순례란 일반적 정의로는 어떤 종교의 성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뜻한다.

그러므로 순례란 단어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풍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해석은 조금은 다르다. 내게 있어서 순례는 마음 속에 화두(話頭)를 품고 그 끝을 따라 정처 없이 몸도 따라 가는 것이다.

내 젊음의 긴 터널 어둡고 복잡한 미로 같았던 혼돈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다가왔던 단어 하나. 그것은 바로 pilgrimage였다. 순례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는 어느 날 갑자기 과거형의 그리움으로 다가왔는데 마치 내 전생이 히말라야의 순례자였던 것처럼 그렇게 친숙한 느낌으로 한동안 지속되다가 티끌세상 인생살이의 긴 세월 속에서 서서히 그 느낌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갑자기 순례란 말의 느낌이 다시 새로워지기 시작하여 수미산의 영상과 오버랩(중첩)되어 가슴 속에서 들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저항할 겨를도 없이 보따리를 짊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난 다시 수미산을 찾아 내 화두 어안(魚眼)을 들고 떠나와 지금 여기 이렇게 내일이면 당고라를 넘어 내 고향(?) 티벳트로 입성하는 것이다.

당고라(唐古拉) 넘어 티벳땅으로

고산병 증세로 인한 두통 때문에 선잠이 든 상태에서 타타하에서 얻어 탄 동풍(東風) 트럭은 이미 당고라를 기어 올라와 고갯마루에 도착해 있었다. 하계(下界)는 오뉴월이라지만 해발 5,220m의 이곳은 분설(粉雪)만이 바람에 날아다니고 주위의 산들은 짙푸른 하는-마치 남색 잉크를 부어 놓은 것 같은 색깔의-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아! 티벳이다. 드디어 티벳 본토에 도착한 것이다. 기원의 오색 깃발, 타루쵸가 세찬 바람에 펄럭이면서 나를 맞고 있었다. 타시딜레!-안녕 히말라야가 인도 평야의 연꽃송이라면 이곳 당고라는 청장고원(靑藏高原)의 화심(花芯)에 해당된다. 북으로는 곤륜산맥에서 남으로는 히말라야 사이의 거대한 대륙의 한 가운데이다. 말이 고갯마루이지 오히려 광야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곳에 `당고라'라고 쓰여진 표지석만이 세찬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시진을 찍으려고 발자욱을 떼니 몸이 후청거려 중신을 잡을 수가 없다. 고산병이 도지나 보다. 예방이나 치료방법이 전혀 없는 무서운 병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고산병은 대개 해발 3,400m 전후에서 시작된다.

산소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이 병은 처음에는 두통, 현기증, 식욕부진에서 점차 건망증, 수면불능, 호홉곤란 등으로 다시 폐수증(肺水症), 정신 착란에 이르게 되어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치료의 방법은 단 하나 산소 마스크를 끼고 살든지 아니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든지 해야 한다.

예방책이라면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며 적응해 나가는 방법이 제일 좋지만 비행기를 탈 경우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뛰는 것은 금물이고 수분이나 바티민C 등을 계속 보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사람마다 다르다.
휘청거리며 걷는 나를 보고는 사라 좋은 장족(藏族) 즉, 티벳인 운전수는 씩웃으며 그들이 마시던 티벳차(수여우차)를 전한다. 그들은 내가 티벳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퍽이나 신기해하면서 어디서 배웠느냐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내 전생(前生)에서 배웠다고 답한다. 아니 배운 것이 이니라 그저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면 그들은-`학바라'라는 이름의 운전수와 두 명의 조수들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묻는다.

한국에도 활불(活佛)이 있느냐면서 대접이 달라진다. 여행 중 난관에 봉착하였을 때나 의기투합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가끔 써먹는 방법이다. 고의성은 없더라도 구업(口業)을 진 셈이다. 옴 마니 반메훔.

각설하고 티벳은 아직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가 그러하고 작명법이 그러하다. 그들은 한문화권과 달리 혈통주의가 아니기에 성(姓) 씨가 없다. `학바라(水)'는 수요일에 태어났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만약 그가 금요일에 태어났다면 `바싸(金)', 토요일이면 `벤바(土)'가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더 들자면 대낮에 태어나면 `니마(日)라'이고 달밤에 태어나면 `다와(月)라'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셈이다. 여기서 `라'는 접미사로서 존칭을 의미한다.

티벳인들은 우리 한민족과 혈통이-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나는 몽고리안 계통이다-같을 뿐만 아니라 언어 또한 우랄알타이어계여서 유사점이 많다. 그중 존칭어가 발달된 점도 좋은 예이다. 티벳어를 공부하는데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그 많은 존칭어를 외우는 것이다.

존칭어가 없다시피 한 외국인들이 우리 한글을 배울 때 무엇이 제일 어렵냐고 물으면 존칭어라 대답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티벳 땅에 들어섰으니 티벳어 한마디 배우고 저 푸른 잉크빛 하늘 아래로 달려가 보기로 하자.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류기송(柳基松)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