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을 극복한 사람

특집 / 어리석음

2007-09-20     관리자

어리석음이란 존재론적 과대망상증이다.
1백미터를 20초에 겨우 달리는 사람이 올림픽에서 1 등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불행의 씨앗인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존재의 현상만 보고 듣는 사람이 존재 자체의 신비를 전부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과대망상증 환자들은 환경을 변화시켜 주거나 약간의 치료를 받으면 다시 정상적으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환경의 변화가 와도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앞에서 어리석은 사람을 그냥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니라 `존재론적'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존재론적 과대망상증 환자의 증상은 그가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착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착각을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까지 미혹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이 돈이나 명예만 얻으면 행복하게 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스스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죄를 짓도록 하는 마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면 어리석음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아(眞我)를 망각하고 가아(假我)에 탐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델피 신전에서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바로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너무 기가 막혀서 너털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참으로 미친 사람이군.
도대체 내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도 되지 않는다. 나야말로 진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결국 그 사람의 신탁내용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무지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진리를 탄생시킬 수 있는 은총을 신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무지에 대한 자각,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를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다른 것들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말고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면목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as it is)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우리들의 양심의 소리, 진아의 부르짖음, 존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육체보다는 정신, 가짜보다는 진짜, 이 세상보다는 `먼저 그 나라와 그 나라의 의(義)'를 추구하라는 우리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육체·가짜의 넓은 문보다는 정신·진짜의 좁은 문을 향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독배를 마시기 직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인들에게 남긴 유언의 외침을 다시 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인 아테네 시민이여, 나의 존경하는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지성과 권력의 획득에 있어서는 정말 훌륭합니다. 여러분은 돈을 벌고 명성과 특권을 신장시키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진리와 지혜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의 향상을 위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우리가 진정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극복하려면, 우리는 먼저 정보나 지식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진리와 지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육체와 보이는 것들의 가치만 쫓지 말고 영혼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외침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그의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라는 성서의 구절을 연상시킨다. 일부의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외침을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리석음을 극복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한용운 선사는 그것을 한마디로 `감사를 느끼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감사를 느끼는 이만이 유연한 마음을 가진 이다. 유연한 마음을 가진 뒤라야 비로소 삼독(三毒)을 여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탐적(貪的) 생활을 버리고, 귀적(鬼的) 생활도 버리고, 축적(畜的) 생활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 - 거기에 이해도 있고, 존경도 있고, 만족도 있고, 평화도 있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류기송(柳基松)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