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다훈, 이 태란 커플의 결별

2003-04-28     관리자

[윤 다훈, 이 태란 커플의 결별]

한창 다정한 모습을 보이던 윤 다훈, 이 태란 커플이 최근 종교적인 문제로 헤어졌다고 합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불교 집안의 윤 군은 기독교 집안의 이 양을 위해 집안 모르게 이 양과 같이 교회를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양 집에서 신랑 될 윤 군만 아니라 윤 군 집안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주장하여 마침내 헤어지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니, 두 사람의 이별의 원인이 그런 것이라니... 한 편으로는 어이없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생사의 근원을 다루는 것이라 종교적 견해가 다르면 삶 자체가 조화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내 종교를 주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더구나 가장 순수해야 할 젊은 남녀의 결혼 자리에서 내 종교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개종을 강요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종교가 다르면 결혼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갸륵한 자비심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결혼을 전도의 도구로 삼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안타까운 일입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종교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저는 종교란 결국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이끌어 주는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진리란 것이 신(神)일 수도 있고 일체 중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어느 것이 궁극의 진리인지는 사실 현재의 우리로서는 100 % 완전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다만 자기 인연, 자기 업연 따라 지금 내가 믿는 이 종교가 진리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뿐인지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믿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가장 훌륭하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한 마음이란 겉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어제 사랑하던 마음이 오늘은 원한으로 변하고, 오늘의 나의 종교적 환희가 내일은 환멸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재를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내일 모레도 절대적으로 그렇다,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10 년 연애 끝에 결혼해도 배우자를 폭행하고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유독 신앙만 그렇지 않겠다고 주장한다면, 그 역시 너무 어린 생각이 아닐는지요? 안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견해일 뿐,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데 내 마음은 절대 안 변한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 자체가 아직 덜 성숙하다는 증거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기 신념에 충실해 남에게 자기의 신념을 강요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나만 옳고 내 믿음만 진실한 줄 아는 그 마음이 평지풍파를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굳이 과거의 역사를 들출 것도 없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 비극들이 종교적 신념의 강요와 차이로 나라 간, 민족 간, 심지어 한 가정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까? 생명을 살리고 영원한 삶을 주자는 뜻에서 시작한 거룩한 가르침이,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오히려 생명을 죽이게 만든다면 얼마나 통탄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지로 우리 주위에 흔히 일어납니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종교가, 나의 맹신적 신앙 강요에서 그런 비극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숭산 큰스님은 77년 미국 강연에서 어떤 교수가 "제 정신과 미친 것의 차이"를 묻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착을 하면 미친 것이다. 조금 집착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하나도 집착하지 않으면 제 정신이다!"


큰스님의 제자이신 유태계 미국인인 대봉 스님(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은 "다른 종교와 화합하지 못하면 자기 종교 또한 바르게 믿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이 출가의 길을 걸을 때 어머니와의 일화를 말씀합니다. 완전 삭발을 한 자신을 보고 어머니는 대학 시절 히피 스타일로 다닐 때 아들의 머리가 좀 짧아졌으면 했는데 너무 짧아진 것 같다며, '네가 가는 길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 역시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로 화답했다고 하지요...



진정한 종교라면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압니다. 종교란 모든 생명을 살리려 나온 가르침이기에 내 종교만 옳다, 인간만 훌륭하다고 주장할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가르치는 수행자, 성직자들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지만 그 가르침을 전달하는 분들은 욕망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이 아무리 뛰어난 학자요 승려요 신부요 목사라 하더라도 그 분들의 말, 그 분들의 가르침에 오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믿음은 필연코 한계를 초래합니다. 성철 큰스님이 '내 말에 속지 마라"고 하신 것 역시 그런 기우에서일 것입니다.



어제의 불교인이 오늘의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기독교인이 내일의 불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상전벽해가 되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러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진리, 진정한 구원은 닫힌 마음으로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중생의 인연이 다르므로 종교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한테 맞는 음식이 다른 이에게도 언제나 맞는다고 할 수 없듯(참새가 좋아하는 먹이를 호랑이가 좋아할 리 없지요), 내가 환희를 느낀 종교라고 반드시 다른 분에게도 그럴 것이라 단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전법, 전도는 나의 불성(기독교는 신성이 되겠죠) 이 더욱 원만하고 더욱 넉넉한 모습으로 성장하게끔 도와 주는데 그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을 전할 때에도 다른 분들에게 설명은 하되 강요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믿음 때문에 다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어찌 그것이 참된 종교이겠습니까 ?


또한 구원, 해탈은 나의 종교에만 있지 다른 종교는 없다거나 나만 옳다는 식의 편협된 사고에서도 벗어났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함부로 개종을 강요하는 공격적 전법, 전도를 삼가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고 서로를 인정하여, 우리 모두가 화합하고 번성하는 그런 종교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