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25.키질 38굴

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의 역사- 중국편(25)수다나태자 본생도-키질석굴 제38굴의 벽화-

2007-09-19     이기선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 또한 부처님의 본생도 가운데 하나인 「수다나태자 본생도」로서 「육도집령」제2권 「수다나경(須大 拏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은 본래 키질석국 제38굴의 주실굴정(主室窟頂)에 그려져 있었는데, 20세기초 독일의 중앙아시아 조사단에 의하여 절취(切取)되어 현재는 서베를린에 있는 인도미술관(Museum fur Indische K -unst, Staatliche Museen Preussischen Kulturbesitz)에 소장되어 있다.

  옛날에 엽파국(葉波國)에 살사(薩 ?)라는 이름의 왕이 있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니 백성의 원망이 없었다. 왕에게는 수다나(須大拏)라는 태자가 있었다. 태자는 용모와 위의(威儀)가 세상에 빛나고 자비와 효성이 뛰어나 그와 짝할 이가 없었다. 왕에게는 하나 뿐인 아들이어서 그 사랑은 끝이 없었으며, 태자는 어버이를 섬기되 하늘과 같이 하였다. 또한 철이 든 이래로 항상 보시하여 뭇 생명을 건지기를 원했다. 

  하여 태자가 마침내 보시를 널리 행하니 그 혜택이 중생에게 두루 미쳤다.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구하는 바에 따라 베푸니, 금·은 등 진귀한 보배를 비롯하여 수레·말·전답·주택 따위 등 원하는 바를 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렇듯 태자의 보시는 그 빛과 향기가 두루 퍼지어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태자의 부왕(父王)에게는 흰코끼가 한 마리 있는데 그 뛰어남이 60마리의 코끼리를 당해내고도 남음이 있어 다른 나라가 쳐들어 와도 이 코끼리로 해서 모두 물리쳐 이기곤 하였다.

  엽파국의 코끼리에 대한 여러 나라 왕들이 모여 꾀를 내었다. 즉 「태자가 어질고 거룩하여서 구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하니 사람을 보내 태자에게 가서 그 흰 코끼리를 달라고 하자」고.

  그리하여 왕의 명령을 받은 바라문은 짐짓 거짓으로 꾸며 수타나태자에게 나아가 마침내 그 용맹한 코끼리를 빼앗아가 버렸다.

  이 사실을 안 엽파국의 여러 대신들은 원수나라가 탐내는 그 코끼리를 주어 나라를 위태롭게 한 죄를 물어 태자를 10년 동안 전야(田野)에서 스스로 근신하며 뉘우치도록 할 것을 왕께 아뢰었다. 이에 왕은 사자를 태자에게 보내어 궁성을 떠날 것을 명하였다. 

  태자는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렸다. 수다나태자의 아내는 이름을 만지(曼坁)라 하며, 왕의 딸로 얼굴이 한 나라에 둘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데다가 늘 머리에서 발끝까지 일곱 가지 보배로써 장식하니 그 눈부심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태자비는 오직 마땅히 뜻을 세우고 산택(山澤)에서 성도(成道)할 것을 맹서하는 서원을 세우고는 궁중의 안락함을 버리고 수다나태자를 따라 나섰다.

 『태자님의 보시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입니다. 마땅히 큰 서원을 마치기까지 삼가 게으름이 없이 하오리다. 백천만세에 당신과 같은 이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중한 임무를 나도 감히 어기지 않으리라.』

  마침내 수다나 태자는 아내와 아들딸을 데리고 궁성을 나서 여러 날 만에 단특산(壇特山)중에 이르렀다. 오는 동안 지니고 온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어 남은 것이 없었다. 나무와 풀로 얽어서 집을 짓고 풀잎으로 옷을 해 입고 실과를 따서 배를 채우고 샘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산중의 덕 높은 이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산속의 나날은 이렇게 계속되었다. 

  그때 한 늙고 가난한 바라문이 한창 나이에 얼굴이 곱고 아름다운 아내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물을 길러 가다가 어느 젊은 남자를 만나 꾐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와 남편을 졸랐다.

 『내가 들으니 보시하는 보살이 있는데, 이름은 수다나로서 넓은 자비로 중생을 건지는데 그 나라 재물을 보시하느라 다 허비하여서 임금님과 여러 신하에게 쫓기어 산중에 산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두 아이가 있으니 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할 터이니 당신이 가서 데리고 와 우리의 종으로 삼아 부리면 좋지 않겠오.』

  이에 늙은 바라문은 조르는 아내의 등살에 못 이겨 마침내 거짓으로 엽파국의 왕을 속여 태자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그곳으로 갔다. 이 때 태자의 남매는 이 늙은 바라문이 오는 것을 보고 서로 무섭고 두려움에 떨면서 「우리 아버지가 보시를 숭상하여서 이 사람도 온 것이다. 재산이 다하여 줄 것이 없으니 반드시 우리 남매를 줄 것이다.」고 생각하고 손을 붙들고 도망치니 그 어머니가 그들을 숨겼다. 이윽고 바라문이 태자에게 당도하여 자기를 봉양하게끔 어린 남매를 달라고 하자, 태자는 숨어있는 아이를 찾아내어 무서움에 떨며 울부짖는 남매를 아이의 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늙은 바라문은 자기는 늙어서 기운이 없어 아이들이 도망하면 붙잡을 수 없으니 아이들을 서로 붙여서 묶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태자가 아이들을 새끼줄로 묶으니 남매는 몸부림치며 슬피 울부짖었다. 한편 아이의 어머니는 과일을 따다가 왼편 겨드랑이가 가렵고 두 젖에서 젖이 자꾸 흘러내림을 괴이한 일이라 여기고 곧 아이들에게 변고가 생긴 것으로 짐작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자 했다. 때에 제석천이 보살이 서원을 이루고자 하는데 아내의 방해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가 생각하여 여러 맹수로 화하여 그녀의 길을 막았다. 

  뿐만 아니라 『태자의 도를 넓히는 보시가 다함이 없으니 그 아내로써 시험하여 마음을 떠보는 것이 어떨까』하고 태자에게 아내를 달라고 하니 태자는 망설이지 않고 바라문으로 변한 제석에게 아내의 손을 이끌어 주려했다. 이에 탄복한 모든 하늘사람이 태자의 보시의 마음을 찬탄하고 그의 원하는 바를 물었다. 이에 태자는 『원컨대 큰 부자가 되어서 항상 보시를 좋아하되 지금보다도 탐함이 없도록 하고, 나의 부왕님과 나라의 신민(臣民)들을 서로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하였다.

  한편 남매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바라문이 아내에게 종으로 부리라고 하자 아내는 이 아이들은 손발이 고와 노비로 적당치 않으니 팔아서 딴 노비를 데려오라 했다. 해서 바라문은 남매를 팔러가다 길을 잘못 들어 엽파국에 가니, 백성들이 이를 알고 『이들은 태자님의 아이들이다. 임금님의 손자다.』하고 궁문에 나아가 외치니 마침내 임금님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님은 마침내 사자를 보내어 수다나태자를 왕궁으로 다시 모셔 오게 하였던 것이다.

  그림을 보자. 늙은 바라문이 수다나태자에게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끔 끈으로 묶어줄 것을 요구하니 태자가 자기 자식들의 두 손을 함께 묶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는 아이들을 묶어 보내는 그 애끓는 어버이의 마음과 그러한 육친의 정을 억누르며 아낌없이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이 극적인 장면을 우리네 행하는 이 극적인 장면을 우리네 범인(凡人)의 눈에는 어찌 눈물겹다 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