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가는 또 하나의 길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 범패 공부하는 가수 김태곤

2007-09-19     관리자

"우리의 범패는 우리의 산세와 닮았습니다. 장인굴곡(長引屈曲)하여 웅혼, 우장, 심오하며, 음악적인 완성도도 높아요. 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 같기도 하고, 그 선율이나 장단, 가락에 있어 기존의 음악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심묘한 기운을 얻게 됩니다. 마치 우리 몸 속에 조상의 피가 면면이 흐르듯 알든 모르든간에 범패 국악의 선율이 우리의 심성에는 흐르고 있어요."
틈틈이 익혀왔던 범패를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봉원사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보존회 부설 범음대학(4기)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과정(5기)에서 범패를 공부하고 있는 가수 김태곤(49세)씨, 그는 유발제자로는 유일하게 박송암(84세, 인간문화재 50호) 스님께 범패를 이수 받고, 동국대학교 홍윤식 교수님과 법현 스님께 범패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송학사, 망부석, 아야 울지 마라 등 그동안 불러온 노래들이 자신의 음악인생에 있어 제 1기라고 한다면 범패로 인해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요즈음 그는 나이도 잊은 채 범패에 흠뻑 젖어 하루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모를 지경이다.
범패는 불교의 의식음악으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로서 신라 진감 국사가 당나라에 유학 후(830년, 흥덕왕 5년) 하동의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대략 7·8세기에 발생한 이후로 범패는 우리의 정악, 아악, 민속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대개 49재의 소상(小祥)과 대상(大祥)때 영가를 위하여 행해지는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와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로 저승에 있는 10대왕에게 자비를 비는 의식, 죽어서 극락왕생을 위해 생전에 미리 지내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수중고혼을 위해 지내주는 수륙재(水陸齋),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큰 재로 국가의 안녕과 군인의 무운장구와 영가를 위해 지내는 영산재(靈山齋)가 있다.
영산재를 지내는 데는 보통 하루가 거리고 길게는 삼사 일이 걸리기도 한다. 1968년 5월 13일에서 16일까지 올려졌던 영산재는 3박 4일 동안 142곡이 불리워졌다.
염불에 해당하는 안채비소리, 7언 4구 혹은 5언 4구의 정형시로 된 홋소리, 그리고 범어의 사설과 산문으로된 짓소리는 주로 30∼40분이 소요되며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불리워진다. 재의 마지막 끝부분에 불리워지는 화청은 불교포교의 한 방편으로서 대중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 사설을 민속적 음악에다 붙여 교리를 쉽게 이해시키는 곡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일반적으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것은 안채비소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이 간소화된 것이다.
"문화는 종교의 배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범패는 불교의 의식곡으로 전통국악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어요. 현재는 박송암 스님을 중심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나 많이 간소화되고 있고, 소멸된 것도 많아요. 우선은 송암 스님께 범패의 전통 원형을 그대로 전수받고, 그 위에 현대음악의 옷을 입히고, 대중음악 속에서 그 원형을 차용해 살리고, 그 이후로는 신국악으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범패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현대 대중들이 동음창화(同音昌和)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범패가 그동안 제대로 전승되지 못해온 것은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로 재를 올릴 때 쓰는 의식음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禪) 중심의 한국불교가 불교의식을 멀리하였고, 불교의식의 현대화라는 관심이 오히려 재래의 전통적인 의식을 멀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범패를 현대화 대중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김태곤 씨는 그 기간을 10년으로 잡는다. 그리고 범패의 세계화를 위해 어지 보면 뒤늦다 싶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국제포교사 자격증도 취득하고자 한다. 한국의 불교를 범패를 통해 세계인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스님께서 범패나 염불도 참선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자신도 오랜동안 음악활동을 했지만 범패를 통해 무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했습니다. `오오∼오오∼∼' 처음부터 끝까지 물흐르듯 막힘없이 계속되는 송암 스님(84세)의 범패소리를 듣다가 온 몸이 두 번이나 용솟음치며 진동하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저 길을 가련다.' 범패하시는 스님의 그 길이 부처님이 가시는 그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사설조나 게송으로 된 가사전달없이도 그 선율을 따라 소리를 내다보면 온 몸 가득 우주의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송암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듯 범패는 다른 음악과 달리 신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자칫 범패하면 무겁게 느끼는데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영가천도뿐만 아니라 산천초목과 미물의 혼까지 달래주는 범패는 우리나라 산세처럼 굴곡이 뛰어나고 심오하면서 신명나는 곳도 많아요. 불교문화는 불자들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 가는 또 하나의 길이기에 많은 사람이 듣게 하고 부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저 소리로 전승되어오던 범패의 선율을 악보화하고 있는 김태곤 씨.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편곡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재미를 느낀다. 가야금병창이 있듯이 범패병창은 어떨까. 째즈와 범패를 접목시켜보면 어떨까. 우리의 사물놀이를 무대예술화했듯이 범패의 무대예술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서양음악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미사곡 그레고리안 성가 (Gregorian Chant)가 대중음악화하여 성공을 거두었듯이 범패의 대중화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범패도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변천되어 왔고, 화석처럼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분명 현대음악에서도 충분히 맞을 수 있고, 그 범위는 무한한 것이리라.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일컫는다. 우리의 문화가 무엇인가. 불교문화가 그 중심이다. 그런데 범패는 불교음악의 진수 중의 진수가 아닌가…. 그것은 분명 현대인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1900년대부터 국가정책으로 키운 중국의 범패는 전통악기를 개량, 스케일이 커지고 웅장해지면서 많이 서구화되고 현대화 되었으나 우리의 범패는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된 가운데 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 그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 발표한 `공 그리하여 열반' 이라는 곡은 징과 요령, 드럼, 신디사이즈, 베이스키타를 동원하고 범패를 삽입한 곡이다. 범패의 대중화, 현대화를 몹시 조심스러워하시는 송암 스님이지만 CD에 담긴 그 곡을 들으시고는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우리의 얼을 노래하는 가수 김태곤 씨의 법명은 만(卍)결이다. 무진장 스님께서 지어주셨다. 그는 그것을 바람결, 숨결, 물결로도 풀이한다. 그렇게 자연의 숨결처럼 흐르며, 1977년 망부석과 송학사를 불러 우리 국악의 대중화에 성공했듯이 범패의 대중화에 그 숨결을 불어넣고자 공부해가고 있는 그는 요즈음 새봄을 맞은 듯 행복하기만 하다.

_____________________ 김태곤 / 법명 만(卍)결. 경희대학교에서 요업공예를 전공.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 작사,작곡, 편곡, 노래, 60여 종의 국악기와 서양악기연주뿐만 아니라 악기개량 등 음악에 있어 만능을 갖춘 그는 연예인 중에서는 처음으로 강석주 스님으로부터 전법사(傳法師) 품수를 받았고, `송학사' `망부석' `아야 울지마라' `아리 아리 아라리오' 등 한국적이며 불교적인 수많은 곡을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 불교의식곡인 범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 악보화하고, 이것의 현대화·대중화에 심혈을 기울이며 노래하는 전법사로서의 제2의 음악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불자님의 보시행으로 입력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