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瞋心)의 정신의학적 고찰

특집 / 진심(瞋心)

2007-09-19     관리자

IMF 한파로 온 국민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실직자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에 가득하다. 신경정신과 진료실에 실직자나 부도기업주, 그들의 배우자들이 불만과 공황장애, 홧병증후군,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빈도가 배로 늘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 온 사람일수록 정부나 재벌에 대한 분노가 크고,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여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마약이나 알콜에 의존하고자 하는 사람도 늘고 있고 도둑이나 강도와 같은 사회범죄도 증가할 전망이다.
진심(瞋心)은 분노, 화, 적개심, 증오심 등과 동의어이다. 심리학적으로는 공격성에 대응되는데 공격성은 공격적 욕동(욕구 또는 충동), 공격적 본능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격성은 인간정신 깊은 곳(무의식)에 본래부터 갖춰진 공격적 성향을 말한다. 불교의 본유종자(本有種子)의 하나인 셈이다.
공격성은 모든 폭력과 살생의 뿌리이며 집단살육이나 전쟁의 원천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공격성은 죽음과 통하여 있다고 해서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이라고 부르며 생의 본능(에로스)인 성적 욕동과 더불어 양대 본능으로 분류한다.
프로이트는 초기에 공격적 본능은 성적 본능의 배출 억제나 좌절에 뒤따르는 이차적인 본능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들러는 열등감과 권력에 대한 추구로부터 공격성이 뿌리한다고 보고 성적 본능과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프로이트도 일차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에 공격적 본능의 존재를 성적 본능과 대등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정하였다. 융도 공격성은 인간이면 누구나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에 원형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에서 공격성이 시작된다고 보기도 한다. 어머니에게서 적절한 충족을 받지 못한 좌절감이 공격적 충동을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적절한 좌절을 맛보게 하는 적응적인 환경에서 아이는 건전한 공격성인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반면 어머니가 아이를 귀찮아하거나 미워하고 때리는 부적응적 환경에서 부적절한 좌절감을 경험한 아이는 부정적 공격성인 적개심과 파괴적 성향을 강화한다.
공격성이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논쟁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이 대변하듯이 본래 내재된 욕동이 좌절상태에서 분노로 표현된다고 보면 되겠기 때문이다.
좌절 상황이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상대방(부모)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인정이나 칭찬을 해 주지 않는 경우, 의존하고 싶은 상대가 의존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거나 거절하는 경우에 아이는 분노하게 된다.
성인의 경우도 동일하다.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좌절상황에서 분노가 발생한다. 시부모님이나 남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나 일방적 희생을 요구당하는 주부들, 비민주적이고 언로가 막힌 독재사회에서 억압당하는 민족들도 동일한 홧병증후군을 앓는다. 힘있는 자나 윗사람의 경우도 유사하다. 자신의 마음대로 아랫사람이 움직여주지 않는 좌절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위치에서 화를 적절히 표현하는 경우는 병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분노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억압상황에서 쌓이는 분노는 병이 된다. 우울증이나 홧병으로부터 고혈압, 뇌졸중, 심장질환, 소화성 궤양, 기관지 천식, 심지어는 암에 이르기까지 분노가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성 질병은 다양하다.
긍정적인 공격성은 자기 표현이나 창조적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생존경쟁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공격성은 인간성을 상실케 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만다. 이러한 부정적 공격성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우선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공격적 요소를 자각하는게 중요하다. 자신을 화나게 만든 환경이나 대상만을 탓하면서 해결책을 밖에서만 찾는 외향적 태도는 분노의 불을 끌 수 없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여 유아적인 의존욕구와 자기 중심적인 요소들을 깊이 통찰하는 내향적 태도가 중요하다.
다음으로 적절한 자기주장이 필요하다. 적절하다는 말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러려면 우선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는 자세를 갖춘다는 말이다.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을 표현하되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배려한다.
그러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고 보챌 때 부당한 요구이지만 안쓰러워서 들어줘버린다면 그 행위는 고정이 되어 버린다.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달래고 알아 듣도록 설명해 주면서 적절한 좌절을 경험시켜주어야 한다. 적절한 좌절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상대를 성숙시키는 것이면서 또한 나 자신을 성숙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이 부단하게 계속될 때 자기 실현과 함께 너그러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야말로 불국정토가 아닐까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불자님의 보시행으로 입력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