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촌

보리수 그늘

2007-09-19     관리자
 

 옆집 C씨네가 이사 온 것은 우리보다 서너 달 후였던 것 같다. 강원도 Y읍에 살다가 직장관계로 우리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된 그들 부부는 특히 금슬이 남달리 좋았다. 동물을 어찌나 좋아 했던지 강아지뿐만 아니라 토끼, 거위, 고양이, 새 등 이름 그대로 그 집은 마치 동물농장과도 같았다. 마침 우리 집과 나이가 걸맞아서 가끔 휴일이면 담 너머로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음식도 나누어 먹고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애가 서로 친하게 오가며 사귀다 보니 어른들도 퍽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 집 부인은 동네일이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내일이나 마찬가지로 남을 도와주었으며 이에 못지않게 평판 또한 좋았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라서 모두 학교에 출근하고 나면 집안이 텅 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라도 내리면 그 부인은 우리 집의 빗 설거지도 해주고 장독도 덮어주는 등 궂은일을 보살펴 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얻어다 기르는 강아지이지 아예 그 강아지는 우리 가족보다 그 집 식구들을 더 잘 따른다.

  언제나 신세를 지는 쪽은 우리 쪽이었다.

  그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믿음 그대로를 실천하는, 요즈음 보기 드문 종교생활을 하는 분이다. 그 분의 남편 되는 분도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휴일이면 집안에서 무엇인가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데 그 근면함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렇게 근면하고 부부가 모두 성실하다보니 그 집은 항상 활기가 넘쳐 흘렸으며, 화기애애한 것이 글자 그대로 「스위트 홈」이었다.

  항상 신세만 지는 우리 쪽에서 뭔가 조그만 보답이라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니 별로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좀체로 집에 과자 하나 사들고 들어가는 일이 없는 내가 어쩌다 집 앞 골목의 구멍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라도 한 게 사게 될 경우에는 우선 그 집 아이들도 생각하는 습관이 붙었다.

  금년 여름이었다. 집에 조그만 수리를 할 일이 생겼다. 화장실도 뜯어 고치고 마당에 등나무 받이를 해야겠는데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먼 친척인 되는 분을 모시고 와서 그것도 당연한 일인양 도와주시지 않는가? 일을 했으면 당연히 우리 집에서 식사대접을 해야 되는 게 도리인데도 그 일을 하신 분은 한사코 그 댁에서 식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모두가 교인이라서 약주대접도 할 수 없고 고작 음료수나 커피 한잔이면 족했다. 응당 내가 잔손을 거들어야 하는데 그들 부부가 도맡다시피 했고 우리 부부가 아무리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집수리를 하느라 생겨난 잡다한 것들을 치우느라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벽 한쪽을 헐어서 나온 붉은 옹기벽돌 치우는 문제가 생겼다. 다른 시멘트 벽돌은 담 밖의 빈 공터에 버리면 되겠는데 다시 쓸 수 있는 벽돌을 버리기가 좀 아까워서 어쩔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고 그들 부부는 좋은 생각이 있노라고 했다.

  마당가의 조그만 화단 둘레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며 마당을 파기 시작했다. 평소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던 내게 그 일은 중노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불과 2m도 파지 않아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저려온다. 담 너머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분들이 또 삽과 호미를 가지고 왔다. 겉치레로 한 두어 번 사양하다가 힘도 들고 하여 그대로 그분들이 하는 대로 두었더니, 두 부부가 마치 자기네들 화단처럼 파고 돋우고 심지어는 자기네 화단의 꽃까지 옮겨다 심어 주는 게 아닌가. 일이 끝난 다음 그 댁 남자분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아예 양쪽 집 사이에 있는 담을 헐어버리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우리 부부는 쾌히 승낙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내가 먼저 서둘러 일어섰다. 쿵쿵 해머소리와 함께 담이 무너졌다. 아니 담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집 가족과 우리 식구들 사이의 가슴과 가슴이 무너졌다. 불과 1m 남짓한 담이 무너진다는 사실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였던 담을 헐어낸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우리 두 집은 매우 귀중한 일을 해내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이라고는 해도 아침저녁으로 까치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들리고 갖가지의 새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서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골 어느 조용한 곳을 생각나게 하는 도봉산 밑 우이동 125번지에 살면서 언제나 처럼 생각해오던 「이곳은 서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이웃집과 담을 헐어버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실감나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