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 한담

2박3일 여행기 3

2007-09-19     관리자

건너편 부두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무려 네 사람이나 붙잡고 계속 길을 물어 물어 갔다. 산길을 내려가 마을을 지나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가니 금산정사 팻말이 길가에 보인다.
좁은 마을 길을 지나 밭 사이로 난 길을 조금 가니 웬 가건물 하나가 나오고 간판도 없이 금산정사라고 페인트로 써 있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그리던 아름다운 산사는 어디에 있는가?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꿈에 속아 사는 것인가? 꿈에서 깨어나 우리는 가건물을 돌아 입구를 찾았다. 한쪽에는 임시법당이 마련되어 있고 한쪽에는 부엌, 한쪽에는 집으로 말하자면 거실 같은 공간이 있었고, 한쪽에는 스님이 쓰시는 방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부처님께 삼배(三拜)를 하고 기다렸다. 연담 거사는 나에게 참선하는 자세를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나도 한번 해 보려고 자세를 취하니 우선 가부좌를 틀고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참선의 목적은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게 그렇게 쉬울리가 없지. 연담 거사는 금방 선정에 빠져 들었다. 연담 거사는 꼼짝도 안 하고 눈을 감고 앉아 있다. 흡사 한 개의 바위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있다가 다리가 아파 일어나 슬그머니 빠져 나와 절 주위를 돌아 보았다.
혼자서 한참 쏘다니다가 절에 돌아오니 웬 찬송가 소리 같은 것이 나지 않는가? 이상하다. 절에서 웬 찬송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참선을 끝낸 연담 거사는 나지막하게 찬불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찬불가가 찬송가와 비슷하게 들렸다. 불교의 현대화 작업으로 교단에서 찬불가를 만들었는데, 피아노 반주에 곡조 자체가 서양식의 찬송가 같단다. 그래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찬불가를 만들려면 국악 반주에 국악풍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정 스님은 아직 안 오시고 마침 절 아래에서 밭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니 스님은 가끔 조금 떨어진 숲 속의 평상에서 참선을 하신단다. 우리는 풀밭을 지나 평상까지는 찾았으나 스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우리는 평상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스님을 기다렸다.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한가한 오후였다.
연담 거사는 기다리기가 지루했나 보다. '노느니 염불이라' 고 스님은 오시지 않고 시간이 있으니 진언(眞言)을 가르쳐 주겠단다. 우리가 몸을 씻을 때에 똑같은 물방울로 계속 씻듯이, 영혼을 씻을 때에 쓰는, 말하자면 영혼의 목욕물 같은 것이 진언이라고 한다. 연담 거사는 염주를 꺼내더니 108개 염주알 하나하나에 '옴마니반메훔' 이라고 외치면서 천 번까지만 하잔다. 어떻게 천 번을 세느냐고 물어보니 염주가 한 바퀴 돌아가면 큰 구슬이 나오므로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가 다 펴면 염주가 열 번 돌아간 것을 쉽게 알 수 있단다.
나는 속으로 잠깐 망설였다. 아무리 내가 개방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독교 신자로서 진언까지 외운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는가?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건대 나는 다른 종교를 대할 때에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을 찾는 습관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불교와 천주교는 특히 공통점이 참 많다. 스님들이 입는 장삼은 신부님들이 입는 검은 제복과 비슥하고, 염주는 묵주와 비슷하고, 제사의식에서 향을 피우는 것도 비슷하다. 절에 있는 보살의 입상은 성당에 있는 여러 성상(聖像)들과 비슷한 느낌인데, 신도들이 동상 앞을 지나며 절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천주교와 조계종 성직자 독신제도 비슷하고, 성직자 지망생이 나날이 줄어드는 추세도 비슷하다. 불교의 명상은 천주교의 묵상, 또는 요즘 개신교에서도 유행하는 '큐티(Quiet Time이라고 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 와 비슷하다. 또한 교리적으로도 불교신자들이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는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열심히 기도하는 것과 비슷하며, 미륵불사상은 메시아사상과 통하는 면이 있다.
어쨌든 나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힘입어 용기를 내고서 연담 거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두 사내는 진언을 큰 소리로 외우기 시작하였다. 말이 천번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진언을 시작하였으니 끝을 내기로 결심한 나는 행여 질세라 눈을 감고 큰소리로 '옴마니반메훔!'을 따라 외치는데 잠시 연담 거사가 진언을 멈춘다. 웬일인가 하고 눈을 떠보니 현정 스님이 와 계시지 않는가? '와' 진언이 효과가 있기는 있네!' 나는 감탄했다.
우리는 현정 스님께 합장한 후 모처럼의 만남을 반가워하였다. 인연이란 끈질긴 것인가 보다. 그러니까 8년 만에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속세의 나이로 보면 이제 스님도 많이 늙었으련만 삭발한 스님들은 흰머리가 안 보이니, 늙는지 안 늙는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현정 스님은 오후에 마침 고등학교 동창생 몇 명이 찾아왔단다. 우리와의 약속 때문에 할 수 없이 전화를 신도회장집으로 돌려 놓고서 안심하고 친구들과 지내다가 이제 돌아왔다고 미안해 하신다. 우리는 평상에 가부좌하고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한담을 나누었다. 나는 평소에 느끼던 불교에 대해 역지사지(易之思之)의 심정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첫째, 불교의 경전에 문제가 있다.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나무아미타불' '수리수리마하수리'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이 무슨 뜻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 왜 어려운 한자로 되어 있는 불경을 쉬운 한글로 번역하고 일상 불교의식도 한글로 하지 않는가? 한자로 된 불경도 실제는 인도말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 아니고 음역한 것이라는데, 음역한 어려운 한자어의 뜻을 일반인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공부한 스님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불교가 민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종단차원의 역경사업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 아닌가?
둘째, 일반인은 일 년에 세 번 절에 간다고 한다. 즉 부처님 오신날, 성도하신 날 그리고 백중날(음력으로 칠월 보름). 개신교인은 일요일의 예배참석이 신도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이며, 천주교인은 일요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대죄(大罪)라고 선언까지 했다. 불교에서는 그에 상응하여 새벽예불이나 저녁예불, 또는 일주일에 한번씩의 어떤 의식에 참석할 것을 불자로서의 의무라고 강조해야 할 것이 아닌가?
셋째, 개신교에서는 십일조(수입의 10분의1을 교회에 바치는 것)를 의무화하고 또 천주교에서도 교무금이라고 하여 매월 일정액을 헌금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어째서 절에서는 시주를 의무화하지 않는가? 그것은 혹시라도 사찰의 입장료 수입이나 사찰 소유의 부동산 수입으로도 충분히 유지관리가 되기 때문이라는 안이한 경영방침 때문이 아닌가?
현정 스님도 나의 지적에 대해서 공감하였고 한국불교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현정 스님은 앞서 가시는 분이었다. 스님은 금산정사에 오신 후에 모든 의식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사용하신단다.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소수의 선각자들은 항상 고민하지만, 언젠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즉 "그러니까 세상에는 할 일이 많고, 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만일 이 세상에 문제가 하나도 없다면, 그야말로 더욱 문제가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할 일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우리는 평상에 앉아서 서쪽 바다로 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 버리니 주위가 성큼성큼 어두워져갔다. 조용한 산사에서 현정 스님처럼 사람 대신 나무와 대화하며, 컴퓨터와 텔레비전 대신 달과 별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워 보인다. 여기에 앉아 있는 나의 과거는 무엇인가? 스님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윤회라는 것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나는 직장동료이며 독실한 불교신자인 장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언젠가 나더러 전생에 수도승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쨌든 나는 전생이 존재한다면 중이었을 확률이 1/2이 넘는다고 생각된다.
어두워진 후 우리는 절로 내려와 저녁공양을 하였다. 절 음식이야 나물 몇 가지가 전부이니 영양으로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스님들을 보면 모두 혈색이 좋으니 영양과 건강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는가 보다. 나는 사실 먹기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먹고 생선과 고기도 가리지 않는데, 베트남 사람처럼 홀쭉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