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기고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우주의 근원을 두드리는 예술가 김대환

2007-09-19     관리자


"타악기 연주가 힘을 최대로 쏟는 것이라고 한다면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이름 포함 283자)을 새기는 것은 힘을 완전히 빼는 작업입니다.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힘을 들이는 것보다 빼는 일이 오히려 더 힘듭니다."
서예와 미각(微刻) 분야에도 이미 기인이라 불리울 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한국을 대표하는 타악기 연주자로서 널리 알려진 흑우(黑雨, 혹은 默雨, 如水) 김대환(66세).
그는 여러 번에 걸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겨넣어 영국의 기네스북에 오른 적이 있고, 한 손에 세 자루씩 서로 다른 타입의 스틱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로토톱(핸들을 돌리며 음악이 변하는 작은 북)과 징을 두드리는 발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스승도 악보도 없고 따로 익힌 박자도 없다. 그저 무대에 오르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고 신들린 것처럼 크고 작은 소라, 빠르고 느린 리듬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얼마전 '가장 작다. 가장 가볍다'라는 문구와 우주를 진동시키 듯 쳐대는 타악기 연주모습이 함께 실린 모토로라 휴대폰 광고를 통해 한국의 혼이 담긴 그의 소리가 세계 18개국에 소개되어지기도 했다.
50년 이상 음악을 해왔고, 30년을 넘는 세월을 해온 미각이지만 그 길이 다른 길이 아니라고 한다. 미각을 통해 음악을 배우고, 음악을 통해 미각의 길을 찾는다고.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해왔던 그는 해외공연 중이던 1968년 홍콩에서 한 노인이 상아에 미각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신의 길과는 다르다싶은 새로운 미각(微刻)에 눈뜨기 시작, 일체의 활동을 중단한 채 한동안 서예와 미각에 몰입했다. 미각이라기보다 극미각(極微刻)이라고 해야 맞을 듯,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겨 넣는 일이 어찌 사람의 손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의 말대로 신심의 힘을 다 빼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글자를 새겨넣지만 그 자신도 글자가 새겨진 것을 촛불 그을음과 같은 가는 먼지가 떨어지는 것으로 감지할 정도다. 그리고 그 글자를 한 자 한 자 새긴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반야심경 전문을 단숨에 외우듯 그렇게 단 한 번에 새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글자의 크기는 물론이려니와 위 아래 상 하 좌우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굳이 그가 쌀에 반야심경을 새기고자 한 것은 쌀 한 톨에 대한 개념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그 크기의 개념이 설 뿐만 아니라 쌀은 그 재질 때문에 서각이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새겨진 반야심경은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인간의 무한가능성에 도전하는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과 같은 경전말씀을 어찌 제가 감히 쓰겠습니까. 금강경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듯이 경전을 수지 독송하고 전하는 공덕이 얼마나 크다고 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능하면 수지하기 좋도록 작게 새겨서 간직하고 전하는 것도 불자된 도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가로 1.8센티미터 세로 3센티미터 크기, 그러니까 보통 어른의 엄지손가락 반만한 면적에 5300자나 되는 금강경을 새겨넣는 일이나, 가로3.6미리미터 세로 3미리미터의 팥알만한 공간에 반야심경을 새겨넣는 일도 그의 손 끝에서 이루어진다. 상아나 금, 혹은 은에 이렇게 새겨진 금강경과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 등은 불자들 간에 호신용으로 간직되기도 하고, 목걸이로 만들어 걸거나 혹은 수첩에 끼워다니기도 한다. 우리의 소리 아리랑과 주기도문도 자주 새기는 문구 중의 하나다.
"보세요. 직선을 긋는데 자를 대고 그을 수도 있고, 시간은 걸리지만 이렇게 손으로 그을 수도 있어요. 자를 대고 긋는 선은 딴 생각을 하며 좍좍 그을 수도 있지만 손으로 긋는 선은 한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그 선은 조금은 비뚤어져 보여도 정성과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지요. 요즈음 세상이 이처럼 혼탁해지고, 어려워진 것도 다 이렇게 자로 줄을 긋듯 편리만을 위주로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명성에 걸맞게 한 해의 절반 가량을 해외공연으로 보내야 하는 그이지만 매일매일 사경과 음악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는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종의 명상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이 시간을 통해 그는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사경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좌서와 우서로 쓴 반야심경이 수북히 쌓여 있다.
반야심경을 사경하지 않은 날은 그렇게도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그는 거의 무심의 경지에서 신들린 듯이 쳐대는 타악기의 박자도 반야심경으로 맞춘다. 관념 때문에 버릴 수 없는 고정적인 박자를 탈피하기 위해 반야심경을 외우며 박자를 카운트하는 것이다.
얼마 전 홍대 앞 록카페인 명월관(明月館)에서는 Free Music Concert가 열렸다. 주로 젊은층의 관객들과 평론가, 음악인들이 빼곡히 자리를 메운 가은데 열린 음악회는 그야말로 그 열기로 터져나갈 듯 했다. 특별출연한 흑우(黑雨) 김대환. 그는 우주를 진동시키는 듯한 연주 중간 보는 사람을 위해 비치는 천 뒤에서 반전된 글씨로 금강경 사구게를 일필휘지한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금강경 사구게가 물로 쓰여지고, 그 위에 역시 금강경 사구게 중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 새겨진다. 먼저 쓴 사구게 덕분에 먹으로 쓰여진 여로역여전은 자연스레 번지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연주회를 끝낸 흑우 김대환은 이렇게 말한다.
"조금 전에 물로 쓴 금강경 사구게는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 흔적은 이 여로역여전의 글씨와 함께 남아 있어요. 역시 마찬가지로 조금 전에 여러분은 연주회를 통해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그 소리가 지금 남아 있습니까. 그렇다고 아주 사라진 것입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은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은 겁니다." 김대환, 그는 보면 볼수록 참으로 불가사의하고 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사고와 발상은 보통사람의 상상을 불허한다. 열 개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여섯 개의 스틱으로 인해 폭풍과도 같은 연주가 끝나면 그 사이사이에서 피가 묻어날 정도다. 굳은 살이 되다 못해 손가락 사이 살가죽이 늘어나 있고, 평생 거친 밭을 맨 농부의 손보다 더 마디가 굵어져 있고 거칠어져 있다. 그런데 그 손으로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듯 싶은 극미각(極微刻)을 하는 것이다.
예술은 순수한 영혼에 의해 더욱 승화된다고 했던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무한가능성의 세계를 두드리는 김대환 그의 말대로 부처님 마음, 불심(佛心)이 아니면 어찌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 또한 노력하면 누구나 다 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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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 서울 인사동 사거리 근처 인사마트 2층에는 흑우 김대환 선생을 위하여 30여 년간 끈질기게 후원한 유재만 사장(53세)의 사재로 한국문화예술의 발전과 개발을 목적으로 한 아주 작은 규모의 개인박물관이 있고, 이곳에서 가끔씩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김대환 선생의 작품 중 일부는 제주도 탐라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전화 544-7084)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이석우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