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가 암자를 불태운 까닭은

열린 상담실

2007-09-19     관리자

얼마 전에 어는 정신과 의사가 자신을 찾아온 여자 환자와 사랑에 빠져서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개 환자들은 의사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에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대신 받으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의사가 이것을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을 하면 문제가 커진다.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치 성직자와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만큼 의사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환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난 성직자들도 때로는 돈이나 여자,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나게 된다. 욕망은 억지로 참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몇 년 전에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도 명 설법으로 이름을 날리던 승려가 여자 신도와 불미스러운 관계 때문에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는 홍콩의 흥등가를 들락날락 거렸다는 사실까지 들통이 났고 결국 종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평소 그가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태도를 취하였기에 그를 따르던 신도들의 충격이 켰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공안(公案) 가운데 '노파, 암자를 불태우다(婆子燒庵)'라는 내용이 있다.

어느 노파가 장래가 촉망되는 스님 한 분에게 초암을 제공하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참선수행에만 전념을 하도록 한다. 그 스님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10년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하였다. 이 보습을 본 노파가 아름답고 젊은 자신의 딸을 보내어 그 스님을 껴안도록 하고는 스님에게 그 느낌을 물어보도록 한다.

이때 스님의 답이 아는 바와 같이 '고목이 찬 바위에 의지하니 삼동(三冬)에 난기(暖氣)가 없도다!" 하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색(色) 따위의 유혹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노파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발대발했다. "내가 이런 속물을 10년동안이나 공양을 하다니!" 하면서 승려를 때려서 내쫓고는 초암을 불살라 버렸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나의 가슴에 딱 와 닿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러나 공안은 원래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고 백성욱 선생님(초대 동국대 총장을 지내셨고 오늘날의 금강경독송회의 시조)의 가르침을 그 제자가 맡아 적은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칙을 보았다.

그중에 당나라의 유일한 여자 임금인 측천무후에 대한 글이 눈에 띄었다.

측천무후는 훌륭한 남자를 곁에 두고 국정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주위의 눈총이 두려웠다. 그래서 좋은 꾀를 생각해 냈는데 당대에 덕망이 높기로 유명한 두 스님을 궁궐로 초대한 것이었다. 한 분은 국사(國師)로 있던 충국사(忠國師)였고, 또 다른 분은 신수(神秀) 대사였다. 함께 있으려면 여식을 탐해서는 안 되겠기에 두 스님 가운데에 좀더 여식에 초연한 스님을 고르려는 것이었다. '스님들도 때로는 여자 생각이 나십니까?" 측천무후가 두 스님들을 떠보았다. 이에 대해 충국사는 "우리는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신수 대사는 "몸뚱이가 있는 한 그 생각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다만 방심치 않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두 스님의 얼굴 빛을 보고 느끼기에, 충국사는 분별심이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없다하고 신수 대사는 분별심이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있다 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측천무후는 두 스님을 목욕탕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반반해 뵈는 궁녀 몇을 알몸으로 홀딱 벗겨서 스님들 때를 닦아 드리게 했다. 그래 놓고 자신은 목욕탕 꼭대기 유리문을 통해서 스님들을 관찰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절대로 여식에 동하지 않는다던 충국사는 몹시 흥분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몸뚱이 착이 없을 수 없다던 신수 대사는 여여(如如)하여 조금도 달아짐이 없었다.

이를 본 측천무후는 "물에 들어가니까 길고 짧음을 알겠더라(入水에 見長)"고 하는 시를 짓고, 이후 신수 대사를 곁에 늘 모시고 국정을 의논하였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젊고 아름다운 여자 환자가 상담시간에 사랑을 고백할 경우는 솔직히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원래 상담을 하는 방은 방음이 잘 되어있고 조용하기 때문에, 치료자가 자제력을 잃는다면 보호해줄 장치가 없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면에서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욕망을 극복하기 힘든 것은 몸뚱어리에 대한 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색욕(色慾)은 수행자가 넘어야 할 관문 가운데 가장 힘든 유혹에 속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색(色)과 같은 것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도(道)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