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진실생명은 찬란한 금싸라기

불광법단

2007-09-19     관리자

이 글은 광덕 스님께서 불광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녹음, 편집부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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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산 스님, 사명 스님과 동시대 때 진묵 스님(1562-1633)이라는 스님이 계십니다. 진묵 스님은 소석가,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신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진묵 스님과 곡차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지요. '곡차'라는 말은 아마 그 때 처음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곡식을 쪄서 가루를 만들어 띄워서 반죽을 해 따뜻한 데 놔두면 차가 되지요. 떫고 신 차가 됩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 곡차를 좋아하셨습니다.
전북 전주에서 나신 스님은 그 쪽에서 제일 오래된 절인 봉서사로 7세에 출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누님이 그 아래 동네에 사셨습니다. 하루는 들에 밥을 가지고 나가던 누님을 만났습니다.
"스님, 바빠서 저는 그냥 가야겠습니다만 부엌에 가보면 곡차를 한 양푼 걸러 놓았습니다. 우리 집에 들러 들고 가십시오."
집에 가서 보니 한 동이의 물이 있어 들어마시고 갔습니다. 누님이 돌아와 보니까 곡차는 거기 그대로 있고, 스님이 마신 것은 잿물이었습니다. 큰일이다 싶어 당장 쫓아 올라가 보니까 스님이 절에 앉아 계신데 얼굴이 불그레해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분명 잿물을 마셨는데 스님께는 곡차가 된 것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에 불이 난 것을 물방울을 튕겨 불을 껐다던가 하는 등 스님에 관한 신이한 얘기들은 퍽 많습니다.
하여튼 신기한 것은 스님은 세속에서 그냥 흙에 묻히고 대중에 묻혀서 수기설법을 하며 수행을 하셨습니다. 한 번 삼매에 들어 앉아 계시면 하루 이틀, 한 달이 예사였습니다. 그래서 무릎에 먼지가 몇 치가 보이고 거미줄이 끼었다 할 정도로 스님은 자재하셨습니다.
그림자의 그림자보기
그런데 스님이 돌아가실 때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실 무렵에 머리를 깎으시고, 목욕하시고, 새 옷을 갈아입으시고, 시자를 데리고 개울가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주장자를 드시고 물가에 서 있으니까 그림자가 그 안에 비쳤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그림자가 보이느냐?"
"네."
"저 그림자가 석가모니의 그림자다."
"어디 석가모니 그림자입니까. 스님의 그림자지."
"네가 네 스님의 가짜 그림자만 봤지 진짜는 못 보는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돌아오셨습니다.
돌아오신 뒤 시봉한테 몇 가지 문답을 하시고는 열반하셨습니다.
이것이 연루가 되어서 "진묵 대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후신이다."라고 지금도 그렇게 말이 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 법문은 그런 얘기보다는 보다 깊은 법문이 거기 담겨져 있습니다. 물 속에 들어있는 그림자 그것을 보고 "저것이 석가모니 진신이다. 진석가다."하는 이 말을 우리 불자가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물 속에 던져진 그림자,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나는 여러분의 눈 안에 들어 있는 그림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던져진 하나의 그림자 형상입니다. 서로가 모두가 물 속에 있는 그림자 같은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그림자로 알고 모든 상에서 상을 보지 아니하며 형상에서 형상을 보지 아니하면, 여기서 그림자의 그림자를 참으로 알아서 집착함이 없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인 것입니다. 즉견 노사나(盧舍那)입니다. 곧 부처입니다. 진석가를 거기서 보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니 만약 형상을 보대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즉 부처를 보리라."했던 이 대목, 이것이 바로 물 속에 있는 그림자를 보고 "진신석가다."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형상을 여의었을 때 모든 형상을 즉해서 형상 속에서 진불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상 그대로를 보면서 그대로 진불소식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진묵 대사는 진불소식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불가사의 세계에서 불가사의 도리를 쓰고 산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진묵 스님은 우리가 알고있는 생사의 언덕 위에서 떠돌다 가신 분이 아닙니다. 생사길 밖에 계셔서 능히 우리가 보기에 생사의 세계에 출몰하셨지만 당신은 생사 없는 세계에 계셨습니다.
말하자면 "저것이 진석가다." 이렇게 말했을 때 일체 세계가 바로 진석가 대지이고 일체 국토가 바로 진석가 소식으로 그분은 사신 것입니다. 나는 그분은 생사 없는 데로 향했다고 생각합니다.
금강경 제일 사구게의 본뜻
만약 우리가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는 금강경의 제일 사구게에서 그 뜻하는 바를 얼마라도 살필 줄 안다면 바로 진묵 대사가 말한 물 속에 있는 그림자를 향해서 "진석가다."하신 그 뜻을 알 것입니다.
우리들이 비록 허망한 이 세상을 살고 고난 많은 세상을 살고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사는 듯이 보여도 사실인즉은 부처님의 불국토에서 불국토의 역군으로서 광명을 안고 살고 있다는 이러한 자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우리의 삶은 바로 세간에 살고 있되 불법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미혹한 몸으로 보여질지라도 우리 진실생명은 미혹한 몸이 아니라 찬란한 금싸라기 같은, 참으로 부처님의 광명으로 자기 생명을 사는, 참으로 존귀하기가 말할 수 없는 권위스런 존재인 것입니다.
여기 금강경 제일 사구게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 대목은 참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법신을 올바로 회향하고 처처에 진불인 법신도리를 알아서 법신을 발효 활용하는 큰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 많고 고통 많은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뜨고 있을 때 바로 이곳이 불국토입니다. 불국토의 주인으로서 이 땅에 부처님의 광명을 안고, 스스로 권위를 지키고, 스스로 삶의 바탕에 참된 진리를 충만시키도록 하자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겠습니다.
말인즉 퍽 어려운 말을 합니다만 우리 불광 불자들이 생활규범으로 법등일송을 외우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소식을, 이러한 청정한 자기 권능을 생활 가운데 나타내는 말입니다.
법등일송에는 부처님이라는 말이 한 마디도 안 적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 그 자체에서 진리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을 썼고, 특히 불법에 대해서 저항감을 느끼는 분에게 불법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입니다.
사실인즉은 청정법신인 우리의 무한공덕장 세계를 어떻게 내어쓰느냐 하는 얘기를 그저 쉽게 쓰자고 해서 그렇게 썼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생활을 통해서 이러한 기쁘고 맑고 참으로 덕스러운, 그리고 행복스러운 진리세계를 나타내 쓰도록 해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회가 함께 밝아지도록 다 함께 뜻을 자비로이 합시다.

법등일송(法燈日誦)
생명은 밝은 데서 성장한다. 인간은 밝은 사상에서 발전이 있다. 우리의 본 면목이 원래로 밝은 생명이기에….
어둠을 찢고 솟아오르는 찬란한 아침 해를 보라. 거침없는 시원스러움이, 넘쳐나는 활기가, 모두를 밝히고, 키우고, 따뜻이 감싸주는 너그러움이 거기 있다.
이 한 해를 결코 성내지 않고, 우울하지 않고, 머뭇대지 않고, 밝게 웃으며, 희망을 향하여 억척스럽게 내어닫는 슬기로운 삶으로 만들자.
빛을 향하는 곳에 행운이 있다. 성공이 온다.
오늘 우리는 몇 번 남을 칭찬하였던가. 오늘 우리는 몇 번 남의 허물을 말하였던가. 칭찬하면 태양이 나의 주위에서 빛나고, 비방하면 어둠이 나를 감고 돌아간다. 칭찬하는 마음에는 천국이 열려가고, 비방하는 발길에는 가시덤불 엉기나니….
입은 진실과 광명을 토하는 문이다. 언제나 찬탄과 기쁨을 말하도록 하자.
쾌활은 빛이고 우울은 어둠이다. 쾌활과 우울은 공존하지 못한다. 쾌활해지면 우울이 사라지고, 우울해지면 쾌활이 사라진다. 쾌활하게 살자. 크게 웃고 살자. 우울해지면 웃음을 터뜨리자. 마음이 밝을 때 건강과 행운이 오는 법이다.
사람들 중에는 말과 표정과 몸가짐 전체로 밝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는다.
설사 초청받지 않은 자리라도 마치 겨울의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초청받은 사람이라도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사람이 우울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음 밝은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라 붙고, 어두운 사람에게는 불운이 따라 붙는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였을 때 불행한 일은 찾아든다. 그러니 결코 근심스러운 표정이나 성난 표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이것이 하나의 조각가와도 같다. 사람의 용모 위에 재주를 부린다.
사람을 미워하면 주름살을 나타내고, 슬퍼하면 얼굴 위에 슬픔을 그려낸다. 따뜻한 자비심은 보살을 나타내고, 근심 걱정할 때에는 용모를 어둡게 만들어 간다. 용모가 어두울 때, 어두운 운명이 오는 법이다. 마땅히 모든 근심 걱정 털어버리고 밝은 행복을 생각할 것이다. 평화롭고 만족스런 표정, 희망에 넘치는 미소는 그 사람에게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아무리 어두운 구름이 덮여 오더라도 태양은 거침없이 찬란한 빛을 부어댄다. 아무리 고난과 불안이 밀어닥쳐도 우리의 희망,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구름을 벽으로 아는 자에게 길이 막힌다. 구름을 두려워 떠는 자에게 불행이 온다.
고난과 불행은 움직이는 필름의 영상과 같이 나타났을 때 사라진다. 그것은 그림자다.
두려워 말고 흔들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희망과 용기와 자신을 더하고 성공을 꿈꾸자. 영겁의 생명, 진리의 태양은 지금 우리의 가슴을 뛰고 시시각각 우리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로 보름달과 같이 원만한 우리 마음인데 이를 가로막는 것은 번뇌망상이다.
원망, 질투, 시기, 분노, 복수심, 슬픔, 삿된 욕망, 쓸쓸한 생각, 또는 무거운 죄의식-이런 것들이 우리의 밝은 마음을 흐리게 한다.
흐린 마음, 어두운 마음에서 불행과 병고가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밝고 맑은 마음이어야 하고 결코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여서는 아니 된다. 어두운 망상이 나면 털어버리고 나쁜 마음이 들면 참회하여 맑혀야 한다. 참회는 망념을 정화하는 최상의 영약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