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고체험(至高體驗)과 의식변혁(意識變革)

이남덕 칼럼

2007-09-19     관리자

요즘 항간에서 가장 신나는 뉴스를 보면 미국 야구 다저스 팀의 박찬호 선수가 연전연승으로 14승까지 해낸 얘기나, 우리 축구 팀이 내년에 열릴 월드컵 세계축구전의 아시아 예선 경기에서 일본 팀을 경기 최종 막판에 2대 1의 역전승으로 패배시킨 통쾌한 얘기가 우리 국민감정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휩쓸고 있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있는 관람객이나 뉴스를 보고 있는 TV시청자나 한국인으로서 긍지와 환희심을 느끼게 하는 점에 있어서 만일 이 시점에서 분단된 북한의 동포들이 이 광경을 본다 해도 그 감격은 똑같으리라고 생각된다.
20세기 막바지 최고로 혼란된 사회상 속에서, 그리고 최고로 긴장된 남북간 대립상태 속에서도 한순간에 지순한 민족적 감정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런 지고체험(至高體驗)이 인간에게는 가능하겠구나 하는 감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야구에서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져서 타자를 삼진으로 물리치는 그 순간의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모든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는 멋있는 연기의 순간의 기분이라든가, 노래나 춤, 연극 등의 무대예술의 클라이맥스의 연기자의 기분 등등은 직접 경험자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경험한 스타 자신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지고체험의 의식상태에 대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 앞서 인간의 욕구 충족과 쾌감을 바탕으로 한 제3의 심리학으로 불리우는 인간성 심리학의 제창자 매슬로우였음을 상기하기 바란다.('97년 불광 3월호 참조)
인간성 심리학의 특징으로서는 종래의 프로이트심리학 등에서 정신의 병적 상태만을 대상으로 취급한데 반하여 건강한 상태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인간정신을 일종의 단계적인 것으로 생각한 점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리적 욕구로 공기나 물, 음식물, 수면욕, 성욕 등이며 그 위에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지적인 욕구, 심미적 욕구, 성장의 욕구) 등의 필요성의 단계가 있고 개개의 단계의 필요성을 밑에서부터 채워나가면서 자기 내부에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개발해 나갈 때 본래의 자기를 개화(開化)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한 건전한 사람들의 지고체험은 앞에서 말한 운동선수의 절정적 성공 순간의 기분이라든가 기타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들의 만족·행복·쾌감·기쁨 등 자연스럽게 얻어진 감정 등, 또 더 나아가서는 자연발생적인 초월체험이나 엑스터시 등을 한 사람등을 대상으로 연구하였지만 그 지고체험은 어떤 사태에 임해서 저절로 얻어진 수동적인 경우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능동적으로 불러 일으키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한 것이 제4의 심리학이라고 불리우는 초개(超個 Transpersonal) 심리학의 등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학파의 등장은 서양심리학에서의 발달이라고 하기보다 실천적 동양사상이 그 토양이 되어 있음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60년에서 70년대는 서양사상의 의식변혁에 중요한 시기로 꼽히고 있는데, 온 세계에서 우리의 4·19운동을 필두로 하여 미국·불란서·일본 등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의 거센 바람이 부는 가운데 특히 미국은 월남 전쟁의 격화와 함께 전쟁은 장기화되고 왜 이런 먼 타국에서 타인을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지, 또는 왜 자기(서양)들의 문제를 동양이라는 장소에서 전쟁이란 모양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미국 청년들의 내부갈등은 극도에 달했고 개적인 사회적인 위기감과 아울러 현실생활의 풍요의 반면에 정신적 문화적 결여감이 드러나게 되어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른바 새 시대 운동(뉴 에이지 무브먼트)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지역을 유명하게 한 것은 저 마약(드럭) LSD나 대마초 같은 환각제가 등장하고, 로크(로큰롤) 뮤직이니 히피니 하는 단어들이 멀리 동양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들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청년층의 불안심리에서 사용한 LSD 등의 환각제는 미국인의 정신과 의식에서 이제까지 몰랐던 희한한 의식의 국면을 체험하게 하였고, 또 히피들의 탈사회화의 흐름으로 번지니 근대적인 자아의 확립만을 중요시하고 그 이외의 의식상태는 광기(狂氣)로 소외시 했던 서양의 정신전통에서 보면 우려와 비난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청년들의 탈사회화 경향은 1970년 대 후반의 불황(不況)의 물결 속에서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시대의 고통을 겪은 청년들 가운데서 여러 가지 학문 분야의 신 기수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 기억할 만한 소장학자들을 상기한다면 「도(道)와 물리학(The Tao of Physics)」 「터닝 포인트」 등의 저자 푸릿쵸프·카프라(F. Capra)가 비일상적인 의식체험을 하고 난 뒤 자신의 학문영역인 물리학에 돌아가서 최초의 성과를 올린 사람인데 그는 노장(老莊)철학에 심취하고 태극권(太極拳)을 익히는 등 동양사상의 기반을 통과하고 있다. 초개심리학을 체계화한 켄 윌버(Ken Wilner, 1949년생)도 일본 조동종(曹洞宗, 默照禪系)에서 로스엔젤레스 선(禪)센터로 파견한 선사의 훈련을 거치고 있다.
윌버의 초개심리학 체계(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에서는 다음과 같이 마음(心)의 레벨, 초개적 레벨, 실존(實存)레벨, 생물사회적 레벨, 자아의 레벨, 철학적 레벨, 그림자의 레벨로 분류, 인간의 의식을 다차원적인 것으로 보고 크게 나누어서 서양의 접근은 개인의 자아(自我)를 보수(補修)하는 면을 주안점으로 한다면 동양의 접근은 개아(個我)라고 불리우는 자기를 넘어서는 면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중에서 첫번째 마음(心)의 레벨은 신비적 의식아라고 불리우는 의식 상태로 자기가 근본적으로 우주와 하나라는 감각을 가진다. 여기에서 인간은 절대적이며 궁극적 실재인 우주와 하나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고 불교의 유심(唯心)의 자리이니 유물론·유심론과 같은 이원론적 개념은 아니다. 이는 진여불성의 자리이니 의식의 이상한 상태도 아니고 의식의 '유일한 진실' 상태라 하여 대문자로 'Mind'라고 명명한다.
다음 초개적 레벨을 그는 융의 집합적 무의식, 초감각적 지각, 초월적 목격, 성체(星體) 투사, 신체이탈체험 등 설명하기 어려운 의식현상인데 대승불교에서 아라야식이라고 불리우는 대역이라 했다. 이것은 초개인적인 의식의 창고라 할 것이며 인간의 전행동의 현상적인 종자가 수장되어 있어서 인간 행동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치는 대역이다.
세번째 실존레벨은 절대적 주체성에서 주체와 객체의 이원적 단계로 하강하는 영역이다. 이하 상대성 차원으로 내려가는 4, 5, 6, 7의 영역은 서양심리학에서 지금까지 주로 다루어 온 부분이다.
인간의식의 지고체험 중에서 가장 최고의 지고의식 체험은 종교적인 명상에서 오고, 명상 중에서도 불교의 참선에서 얻는 체험이라는 것은 오늘날 정설로 되어 있다. 불교 아니라도 동양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니 범아일치(梵我一致)니 하여 대아(大我)와 소아(小我)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일컬어왔지만, 불교에서 우주는 진여불성이라는 참다운 생명자체로 이루어져 있으니, 모든 존재는 불성 소유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생명 -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 한 생각으로 본래 부처의 무아상태를 체험하는 것이 참선이다.
이 무아·무심의 지고체험을 구경각(究竟覺)까지 높여 해탈에 이르기까지 수도의 단계는 한없이 높다.(화엄경에서는 50단계를 설한다. 얼마나 아득한 길인가!)
그러나 우리는 수도의 위차가 이처럼 계단이 많고 높은 데 대하여 겁에 질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의 가능성에 찬탄과 기쁨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모든 것에 대한 깨달음이 수반할 것이니까.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며, 가치관의 전환·의식의 변혁이 일어날테니까 말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