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현대 중국 불교

현대 중국 선원(禪院)의 수행체계

2007-09-19     관리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개원 6주년 기념, 조계종 교육원 개원 3주년 기념으로 공동주최한 [열린 세계에 있어서 세계 승가공동체의 현황과 전망]이란 제하의 학술회의 자료집에서 양해를 얻어 '현대 중국 불교 현황(정엄 스님)'을 발췌 초록, 3회로 나누어 싣는다. 현대 중국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조망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세계를 열어나가는데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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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현대 중국 선종 계보 약설
중국불교는 선종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근 .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선찰 (禪刹)은 상주의 천녕사, 양주의 고민사, 진강의 강천사등인데 이 사찰은 모두 임제종의 종지와 종 풍을 선양한 3대총림이다.
또한 절강성의 서천목산 선원사와 천동산 홍법선사, 복주의 고산사와 한양의 귀원사, 초산의 정 혜사도 임제종의 법맥을 이은 선찰이다. 한편 천동산의 밀운원오 선사는 묵조선을 주장한 조동종 의 선풍을 진작했다.
근 . 현대 중국 선사들의 수행가풍은 명대의 거장인 운서주굉이 정립한 선정일치(禪淨一致)의 수 행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당시 선사들의 공안은 대다수가 명대부터 전해내려온 '염불시수(念佛是誰)'를 참구하였다.
다음은 현대 중국 선불교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승 허운(虛雲) 선사와 래과(來果) 선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허운 선사(1840 - 1959)
호남성에서 12세에 출가하여 120세까지 교화한 허운 선사는 결코 명리를 탐하지 않았으며 자기 이익을 위하지 않고, 겸허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 57세에 양주 고민사에서 법인(法忍) 선사로 부터 인가를 받았다. 선사는 본래 임제종과 조동종의 법맥을 잇다가 뒤에 송대 이후 법맥이 끊겼던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의 법맥도 계승하였기 때문에 오종(五宗)의 선사로 통했으며 이는 선종 역사상 일대 사건으 로 기록되고 있다. 선사는 운남성 계족산 호국 축성사, 곤명 운서사, 운문산 대각선사, 운거산 진 여사, 곡강 남화사 등 전국적으로 선종 사찰과 총림의 복구에 힘썼다.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로는 백림사 정혜(淨慧) 방장과 진여사 일성(一誠) 방장, 본환(本煥) 선사 가 있으며 이외에도 대만에서 활동 중인 성일 선사등이 있는데 이들은 선사의 계율 엄수, 철저 수 행 가풍을 선양하고 있다. 선사가 저작한 [참선요지]에 의하면 참선하는 수도인이 갖추어야 할 선 결조건으로 ㉠ 인과를 깊이 믿어야 한다. ㉡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 부처님이나 조사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 참선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함을 설하고 있으며, 참선 방법에 대해서는 ㉠ 좌선에 전념해야 한다. ㉡ 수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화두를 참구하고 의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선사가 말하는 화두란 염불시수(念佛是誰)를 가리키며 이 화두야말로 가장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나는 누구인고' 하는 '수(誰)'라는 글자에 의문을 집 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하고 있다.

2) 래과(來果) 선사 (1881 - 1953)
선사는 호북성에서 출생, 7살 때 인근에 살던 스님이 반야심경의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이라는 구절을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12세에 출가를 결심, 15세에 대지(大智) 화상에게 염불 법문을 배우고 동시에 염불시수를 참구하기 시작했다. 24세에 금산사에서 출가, 수계하였다. 평생 고민사를 중심으로 선수행을 한 선사는 상주 천녕사와 영파 천동사에서 6년 수행한 뒤 복건 성 운봉암에서 7년간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하는 등 기이한 행적과 두타행으로 유명하였다. 30여 년 동안 선수행 지도를 통한 교화활동을 하였으며 당대에 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기백이 있었으며 허운 선사와 쌍벽을 이루었다.
저서로 [래과 선사 어록]과 [래과선사칠개시록(來果禪師七開示錄)], [자행록(自行錄)]이 있다. 현 재 고민사 방장 덕림(德林) 선사가 법을 이었으며, 선혜(禪慧) 선사와 서안 와룡사의 선 수행 가풍 도 선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3) 기타
19세에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으로 강사로 지내다가 참선 수행한 뒤 인가받은 월계(月溪, 1879 - 1965) 선사는 청일전쟁 후 홍콩으로 거점을 옮겨 법을 전했는데 도력이 매우 높았다. 입적 후 법 체가 썩지 않아 육신보살이라고 칭송받은 선사는 저서가 98종에 달하고 250회가 넘게 강설하였으 며 재가 출가를 포함하여 제자가 수십만 명이 넘는다.
한편 현대 중국의 선수행에는 재가신자인 거사들이 참가하는 거사선(居士禪)의 경향이 강하다. 성도에서 원환선(1877-1966), 매제도(1909-1994) 등에 의하여 1943년에 유마정사라는 거사들의 선 수행 단체가 창립되었다.
이 단체는 대학교수나 사회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불교의 정수인 참선에다가 서양철 학, 기공, 현대과학, 단도(丹道) 등과의 접목을 시도하여 '생활 속에서 참선수행할 것(生活中參禪)' 을 제창하였다. 특히 매제도 거사는 수십년간 생활참선을 지도해왔다. 여기에서 백림사의 생활선 과 대만에서 활동 중인 경운 선사가 주장하는 개인의 욕심을 줄이고, 모순을 없애고, 정신을 통일 하자는 '안상선(安詳禪)' 과도 상호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선원의 현황과 선원 생활
'근대의 고승이었던 래과 선사의 법을 이은 양주의 고민사(高旻寺)와 서안의 와룡사가 대표적인 양대 선 수행전문 도량이다. 또 하북성 백림사에서는 중국불교협회가 주창하고 있는 인간불교를 구현하면서 생활선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백림사는 근대의 고승인 허운 선사의 법맥을 잇 고 있으며 조주 선사의 수행가풍을 선양하기 위해 현재의 방장인 정혜 선사가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한 곳의 선수행도량은 여산에 있는 진여사로서 이곳은 허운 선사가 열반한 곳 이며, 현재 허운 선사의 법맥을 잇고 있는 제자들이 선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다음은 현재 중국 선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수행도량을 중심으로 선원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양주 고민사(高旻寺)
수대(隋代)에 창건된 고민사는 유서깊은 선찰대본산이다. 근대의 고승인 허운 선사가 이곳 선원에 서 생사대사를 깨달았으며, 래과 선사가 활연대오한 뒤 선풍을 드날리면서 후학을 제접한 곳이기 도 하다.
1966년 문화혁명에 의하여 일체의 종교활동이 금지되면서 사찰로서의 기능은 없어지고 대신 중 학교로 용도가 바뀌어 사용되었다. 1983년 다시 불교측에 반환되어 종교활동이 재개되었을 때는 폐사와 같았다. 이듬해 덕림 방장이 이곳에 와서 현재까지 고민사 재건에 진력하고 있다. 방장의 원력으로 총림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격(寺格)을 갖추었으며, 대규모의 선원을 복구, 선원을 개설하여 수행자를 육성하고 있다.
선원에 현재 30여 명이 정진하고 있는 고민사는 전문적으로 선수행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조석 예불이나 일체의 불공, 기도, 참회, 경전 공부는 하지 않는다. 래과 선사가 주석한 이래 수행에만 전념하는 전통이 생겨났으며 화두는 공통으로 '염불시수(염불하는 그대는 누구인가)'만 참구하고 있다.

2) 서안 와룡사
중국불교 전래 초기인 한나라 건녕 원년(168)에 창건된 1,800년 고찰이다. 처음에는 복응선원이라 불렸으며 당대에는 관음상이 있었기 때문에 관음사라 불렸고, 송대에 이르러 유과(維果) 법사를 사람들이 와룡이라 불렀던 것이 계기가 되어 송 태종이 와룡사라는 편액을 내린 데서 와룡사로 고쳤다.
명대에는 시방총림(十方叢林) 겸 섬서성 수찰(首刹)로 알려졌으며, 이후 성쇠를 거듭하다가 민국 10년에 대대적인 수리로 선사들이 주석한 유명한 선원이 되었다.
와룡사는 문화혁명 이전부터 지식인들의 출입이 잦고 진실한 수행자가 많이 살았던 관계로 사회 주의자들로부터 탄압의 표적이 되었으며, 문화혁명 당시에는 거의 모든 당우가 파괴되는 등 심한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당시 방장이었던 낭조(朗照) 스님과 지객이었던 원철(圓徹) 스님은 심한 고 문으로 인해 입적했다고 한다.
1984년부터 경내지를 정부로부터 돌려받았으며, 대웅보전 등 전각과 당우가 복원되어 규모있는 사격(寺格)을 갖추고 있다. 문화혁명 때 파괴된 선원도 신축, 현재 30여 명의 납자가 수행하고 있 다.

3) 하북성 백림사(栢林寺)
조주 선사의 고향인 하북성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조주 선사가 주석한 이 절의 옛이름은 조주관 음원이었다. 유명한 화두 중의 하나인 '뜰앞의 잣나무'의 주인공들이 1,200년 수령의 나무 26그루 가 예나 지금이나 조주가풍은 변함없음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문화혁명때 다른 당우들은 다 파 괴되었어도 국가적으로 조주 선사를 국사로 추앙하는 뜻에서 건립된 조주진제국사탑(趙州眞際國師塔)과 전나무만은 화를 면하였다.
백림사 정혜(淨慧) 방장은 폐허가 된 백림사 복원불사와 도제양성, 생활선 보급에 힘쓰는 한편 국제교류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생활선 보급운동은 조주 선사의 평상심시도(평상심이 그대로 진리이다)라는 가르침에 근본을 두 고 있으며 1993년 7월에는 선학연구소를 개설하였다.
이 연구소의 설립취지는 선(禪)은 스님들이나 특정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심성을 개 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실천방법이라고 정의, 젊은이들이 선을 체험할 수 있도록 여름철을 이용하여 매년 생활선 하계 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생활선 수련대회에서 연구, 발표된 자료를 정리하여 [생활선]을 발간하고 계간지인 [선(禪)] 과 [허운 선사 어록], [조주 선사 어록], [지장경], [아미타경], [금강경] 등 불서를 출판하고 보 급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4) 강서성 진여사(眞如寺)
진여사는 송대의 고승이었던 조동종 제2대 도응(道膺) 선사와 임제종의 원오극근 선사 등 수많은 고승이 주석한 유서깊은 선수행도량이다. 최근에는 허운 선사가 수행하다 이곳에서 입적했다.
이 절은 문화혁명 때 별로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그 당시 수상이었던 주은래가 홍위병의 파괴를 막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운 선사가 주석할 때부터 시작되었던 선농(禪農兼修)의 가풍이 활발하게 전해오고 있다. 선원 에는 5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는데 반은 농사일에 전념하고, 반은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진 여사는 고민사와 함께 현재까지 중국 선수행 사찰의 표본이 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