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태국 6 영원한 불국토를 꿈꾸는 타이

불국토순례기 / 태국

2007-09-19     관리자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해가 긴 남방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은 만나면 미소를 지었다. 따스한 마음을 느꼈고,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 는 경건한 자세를 배웠다.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와 방콕의 거리에 섰을 때,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그들과 다름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돌아오는 미소는 아침이슬처럼 싱그러웠다.

방콕의 아침은 차오프라야 강에 햇살이 빛나며 시작된다. 나룻배를 닮은 길죽한 배들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오토바이 같은 엔진소리가 아침 정적을 깨운다. 도시를 거미줄처럼 흐르는 클롱이라는 운하 사이로 분주하게 다니는데, 방콕을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부를 만했다. 군함과 화물선등이 정박할 정도로 넓고 깊은 이 강은 물류교역을 통해 오늘의 방콕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작은 수로 를 따라 목재로 지은 가옥들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다. 이름하여 수상가옥이랄까? 깨끗하다는 느낌 이 들지 않는 강물을 떠올려 양치질하는 모습, 목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진정한 생활모습 이 관광상품이 된다니 놀랍다.

조각배에 몸을 싣고 탁발을 나선 스님의 모습이 이채롭다. 주름진 얼굴, 흰 머리카락을 보니 연 세가 지긋하신 것 같다. 검푸른 강물에 반사되는 황금빛 가사는 마치 연못 속에 연꽃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을 연상시킨다. 스님의 옆을 지날 때 사공은 엔진을 멈추고 순간 합장하며 흘러간다.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한폭의 수채화 같은 정경을 잡아두지 못하고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 강가 사원 앞에 나이 어린 사미승들이 눈에 뜨인다. 사람들이 운집한 도시 속에 사원들은 저마다 생활 포교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듯싶다.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톤부리 지역에서 가장 유서깊은 사찰인 왓아룬, 일명 새벽의 사원이 라는 뜻으로 방콕을 대표하는 사원의 하나이다. 출렁이는 물결 위에 우뚝 솟아 오른 불탑, 높이가 74미터의 대프랑이 햇빛에 반짝인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차크리 왕조(라마 왕조)가 세 운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인 왓프라케오가 위치한다. 아유타야 멸망이후 톤부리 왕조의 탁신 왕이 세웠다고 전하나 라마 5세 때인 1909년에 완공되었다 한다. 왓프라케오의 에메랄드 불상도 예전에 는 이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앙코르 양식의 불탑으로 중앙탑 주위에 높이 30미터의 프랑 4개에 배치되어 있다. 다분히 힌두교 의 양식 조각이 보이고, 부처님의 탄생, 선도, 초전법륜, 열반의 불상들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탑 의 표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은 채색 도자기 조각들이다. 마치 모자이크를 연상케하는 이 깨어 진 도자기들은 예전에 중국의 도자기 무역선이 이 강에서 침몰하였는데, 이를 인양하여 사원 건축 의 재료를 활용했다는 이야기이다. 형형색색 중국풍 양식의 색채는 왓아룬을 더욱 빛내준다. 중앙 불탑은 3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탑 50미터쯤까지 올라갈 수 있어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차오프라 야 강 건너의 왕궁과 방콕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이 지역은 최초 왕조의 도읍지인 수코타이, 2대 아유타야, 그리고 18세기 아유타야가 버마에 함 락될 때 중국계의 파야 탁신 장군은 이 곳 톤부리를 수도로 세 번째 톤부리 왕조를 열었던 곳이 기도 하다. 그러나 탁신 장군은 난폭하고 교만한 인물로서 타이불교에 있어서 부처님과 동일한 위 치로 군림하려고 그에게 예배하지 않는 승려들을 탄압하는 악정을 펼쳤다. 결국 내란에 의해 살해 되자 차오프라야 차크리 장군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왕궁을 톤부리에서 강 건너편의 방콕으 로 옮겨 1782년 새로운 차크리 왕조(방콕 왕조)를 열었다.

방콕에서 가장 큰 사원은 1788년 라마 1세가 건립한 왓포, 와불사원이다. 왕궁 옆 남쪽에 자리잡 은 이 사원은 태국에서 최초로 대학이 설치되었던 곳이며, 현재 경내에는 국민학교와 도서관, 그 리고 마사지 학교도 있어 타이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한다. 여러 형태의 뾰족한 불탑들이 아득 한 하늘을 찌르며 시야를 넓혀준다. 모두 95기의 체디(탑)가 도처에 서 있었다. 거대한 본당을 들 어서니 어딘지 모를 꽉차 있는 답답함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천장쪽을 바라보고야 이유를 알았 다. 팔을 괴고 누워 있는 불상의 얼굴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길이 49미터, 높이 15미터나 되는 거대한 모습의 와불상이 놀랍기만 하다. 오른손은 머리를 받치고 발꿈치를 괴고 누운 모습은 깨달 음에 이르러 열반의 경계에 달했음을 뜻한다. 와불의 발바닥에는 검은 바탕에 진주조개로 구성한 수미산도 있는데, 공물, 신들과 동물 등 우주의 모든 것이 108격자 속에 묘사되어 있다.

이곳 본당 이외에 또다른 법당이 있는데 아마도 대웅전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외부 규모는 비슷 하나 안에 좌불상이 모셔져 있다. 약 15미터나 되는 단 위에 선정에 든 부처, 아래부터 위까지 온 통 황금 빛으로 빛난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가장 화려한 불단의 모습에 합장할 줄 모르며 서 있 었다. 부미볼 국왕의 사진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과도 관계가 있는 듯싶다.

태국의 조상은 중국 남부에서 기원하였지만 중국인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오늘날 방콕의 경제권 은 중국계 화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일명 차이나타운은 세계의 도처에서 불려지는 쉽게 찾 을 수 있는 지명이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위력은 대단할 수밖에 없겠다.

차이나 타운을 지나 찾은 곳은 왓트라이미트, 황금불사원이다. 사원입구는 좁은 골목으로 얼핏 보면 유명세와는 다르다. 황금불은 2층의 10여 평 남짓한 자그만 불당에 모셔져 있었지만 그야말 로 금빛의 찬란함으로 인하여 눈이 부셨다. 1953년 5월, 방콕항의 공사로 폐사에 있던 불상을 왓 트라이미트로 옮기던 중 예상보다 너무 무거워 들어올리던 크레인이 부서지고 불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날 큰비가 쏟아져 씻겨진 불상을 보니 표면의 석고가 깨져있는 틈으로 금빛이 흘러나와 황금불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수코타이 시대 제작되었다가 후에 버마의 침공으로 약탈을 방지키 위하여 석회로 위장을 해 두었다고 추측을 한다.

높이 3미터에 무게가 5.5톤이고, 황금의 순도는 60%, 당시의 기술로는 99.9%는 불가능했단다. 황 금의 시기를 따져 봄직했지만, 무게로 환산해내는 일이 석연치 않아 포기했다. 문화재적 가치로 따지기 이전에 이것은 신앙의 결정체이다. 최초의 국가를 세운 후 타이인들이 불은에 보은하는 마 음으로 조성한 불상이다. 그 염원으로 침략자들의 약탈을 벗어난 영험있는 불상인 것이다. 당시 표면의 석고의 파편들을 한쪽 벽면에 자그만 사진과 함께 전시해 놓고 있다. 태국의 사원중에서 가장 작은 법당, 아주 초라한 모습의 사원이었지만 어찌 보면 가장 값어치 있는 장소였다.

왓 벤차마 보피트, 현재 국왕이 거주하고 있는 치트라댜 궁전 남서쪽에 자리잡은 일명 대리석 사 원의 명칭이다. 방콕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절이며 기존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로 설 계되었다. 1899년 라마 5세의 명에 의하여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대리석으로 건립하여 대리석 사원 이라고도 한다. 일반 절에서 보이는 금빛으로 빛나는 프랑이나 체디 등의 탑들이 없다. 입구 정면 에 흰 대리석 기둥 4개와 2마리 사자상이 참배객들을 맞이한다. 본당의 내부에는 타이식 좌불상이 모셔져 있고, 본당 뒤로는 사각형의 복도에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53체의 청동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이중에는 싯다르타 보살이 출가수행하는 고행상이 보인다. 본래의 불상은 파키스탄 의 라흐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것은 모조품이다. 해골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에 실핏줄 이 얼기설기 보인다. 부처님 고행상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역시 부처님 은 인간이 아니셨다.

아쉽게도 버마, 캄보디아, 일본 등의 불상은 있었지만 우리 것은 없었다. 우리 불교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본당 건너편에 전국신도회장이었던 이후락 씨가 희사한 한국의 범종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입구로 돌아나오니 후끈거리는 열대의 더위에 이제는 지치는 듯 싶다. 손수레 과일장수에게서 시원한 망고쥬스로 목을 적시니, 길 건너 총을 메고 도는 보초병이 교대를 한다. 저곳이 새로운 왕궁이구나 싶었다.

입헌군주제로 여전히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국왕, 타이의 전통과 국권을 수호하는 현장에서 그 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수코타이, 아유타야, 그리고 방콕, 모든 곳에 사원이 있고 불상이 있음 을 보았다. 어제의 태국과 오늘의 태국을 보았다. 다음 날 다시 찾게 된다면 아마도 불국토를 순 례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타이의 불자들은 영원한 불국토를 꿈꾸며 오늘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