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

오늘을 밝히는 등불/ 푸른학교 이신숙 교장

2007-09-19     관리자

아이들이 온통 신기한 세상을 만났다. 마을 할아버지의 밭에서 흙을 파기만 하면 하나둘 토실토실한 감자가 무더기로 나온다. 품에 한가득 안아도 남을 만큼 감자를 캐면 할아버지는 "허허, 그럼그럼"하시면 감자를 싸주신다. "와아!"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에겐 그뿐만이 아니다. 손바닥에서 느릿느릿한 넓적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와의 첫만남은 설레임 그 자체이다. 폭포 옆에 떨어진 힘없는 매미의 모습에서도 궁금함이 싹트고 한밤중 불빛을 찾아 날아드는 갖가지 풀벌레가 이상하기만 하다. 하여간 여기서 보는 것들은 모두가 신기하다.
여기는 바로 푸른학교(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 산 38, tel 02-932-1412)의 여름 계절학교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 횡성의 자연으로 열린 세상이다.
별다른 간섭도, 빡빡한 일정도, 숙제도 없는 자연을 선생님으로 모신 아직은 작은 학교. 이곳에서 아이들은 처음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화가아저씨와 민요선생님, 마을 어른들을 만나 그림도 그리고 민요도 불러보고 마을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러 간다.
이런 모습은 이제 아파트 단지나 문을 꼭꼭 걸어잠근 도시의 주택가와 학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10대의 무분별한 폭력과 성문제 등 갖가지 사건 . 사고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보면서 어른들은 할 말을 잊고 걱정과 한숨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고 크나큰 시름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성적 위주의 학교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 그에서 비롯되는 강제와 억압 등 제도교육의 문제점들이 때마침 한목소리로 터져나왔고 그 울림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사뭇 크게 들려왔다. 이제 어른들은 병든 교육 현실에 처방전을 내려야 할 때임을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 생각도 그렇지만 푸른학교의 기본적인 생각은 문제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해 부모들의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직 학부모들의 행동은 아이들을 상호존중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부모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모들이 모범적인 해답을 갖고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결론이 앞서고 아이들의 배워나가는 과정을 인정하기보다 기성의 틀에 맞춤으로써 아동이 진짜 배워야 할 것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다려줄 줄 모르고 지켜봐주지 못하고 성급히 기존의 틀에 꿰맞추려다 보니 그것에 맞지 않는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보는 것이지요. 우리가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또 그 아이들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굳이 부모들이 해답을 내리고 그것을 강요할 필요없이 아이들 스스로가 알맞은 결론을 유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교육방법은 정답을 미리 제시하기보다는 아이들의 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아이들이 직접 느끼고 바람직하게 결론을 유추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계발시키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배우게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이렇게 푸른학교로 나타난 것입니다."
푸른학교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확신에 차있는 이신숙 교장(41세, 법명 明本)이다. 그는 중등교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유치원 실습선생으로 출발하여 담임교사, 주임교사, 원감을 거쳐 원장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불교계 유치원에 종사하며 유아교육만을 고집해온 터였다.
푸른학교는 지난 5월 이신숙 교장의 오랜 계획에 뜻을 같이할 회원모집으로 시작하였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회원모집에는 많이 알리지 못했음에도 최근 그의 교육방법을 접해보았던 100여 명 가까운 이들이 참가해주었다. 이제 시작이기에 푸른학교는 아직 번듯한 학교건물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우선 500여 평 규모의 푸른학교터를 마련해두었고 급한 대로 주변 500여 평 정도의 땅과 봉복사 소유의 300여 평 정도를 더 이용가능한 형편이다. 때문에 아이들의 숙식은 현재 푸른학교의 뜻을 헤아린 인근 봉복산장농원 강치인 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미술작업을 하고 계신 손영익 씨가 그의 집 주위를 미술 실습공간으로 흔쾌히 내주셔서 이레저레 마을 분들의 너그러움이 고마울 따름이다.
푸른학교는 지난 6월 강치인 씨의 농원을 빌려 65명의 아이들이 참가한 1박2일간의 주말학교를 열어 호평과 함께 주위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아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푸른학교의 두 번째 행사인 이번 여름 계절학교는 참가자 신청을 48명 선에서 마감하려 했다. 일곱 분의 선생님에 알맞은 인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참가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희망을 저버릴 수 없어 56명으로 신청을 마감해야 했다.
출발 당일(8월 4일)엔 며칠 전부터 온다던 태풍이 비를 몰고왔고 푸른학교터가 있는 강원도엔 호우경보까지 발효되어 있었다.
푸른학교의 선생님들도 혹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학부모들의 문의전화는 단 네 통에 불과했고 그것도 참가하기 어렵겠다는 전화가 아닌 걱정 정도의 확인 전화였다. 이신숙 교장 자신도 푸른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이 적잖이 놀라웠고 또 자신을 믿어주는 그 마음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 잘 다녀오겠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의 힘찬 목소리는 푸른학교의 여름 계절학교가 시작됨을 알려 주었다.
참가인원은 몸이 아픈 두 명을 뺀 54명. 출발 전부터 목놓아 울던 준수(6세)는 어느새 박미정 선생님의 품 안에서 잠을 쫓느라 눈을 가물거리고 빗속에도 아이들은 또래들과 함께 부르는 동요와 만화영화 주제가에 신이 났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도착한 푸른학교에서 아이들은 콸콸 흐르며 흙탕물로 변해있는 시냇물에 눈이 휘둥그레해졌고 저 멀리 태기산을 감싼 희부염한 산안개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첫날은 비록 비 때문에 실내에서의 행사였지만 또래들과 어울린 터라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며 연극 연습, 장구 배우기 등에 열심이었고 처음으로 해보는 새끼꼬기는 서툰 손놀림에도 앉은 자세며 초롱초롱 빛내는 눈망울이 숙달된 어느 마을 토박이 못지 않았다.
다음날, 언제 그랬느냐 싶게 활짝 개인 하늘을 먼저 발견한 아이들이 첫날 보지못한 주위를 살펴보느라 오솔길이며 마당 이곳저곳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녔고 자원봉사로 오신 다섯 분의 노보살님들이 정성스레 차려주신 아침밥을 거뜬하게 비워 낸 아이들은 이제 저마다의 선택활동에 돌입했다.
전날의 비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한 이신숙 교장의 손을 잡고 농원 아래 넓다란 원두막에서 경기민요 이수자인 김유선 선생님과 함께 민요 배우기에 열심인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냇물 건너 화가아저씨네 집에서 몸보다 더 큰 도화지에 마음대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거나 친구들의 얼굴에 붓으로 장난치는 아이, 염소네집에서의 비밀스런 연극연습에 열중인 아이 등 저마다의 선택활동이 즐거움을 더했다.
오후에는 이번 여름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계곡탐사 시간. 물놀이를 겸한 무공폭포까지 3,40분 걷는 길이지만 이 시간은 울퉁불퉁한 산길을 걷게 함으로써 쉽게 접하지 못했던 대상을 더 많이 보게 하고 아이들에게 극기의 한 방법이 되도록 한 것이다. 긴장된 표정으로 비 지난 뒤의 산길을 따라 걷는 아이들은 눈에 부딪치는 나무며 풀들, 곤충들의 이름을 묻느라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자연을 작은 가슴에 담아 보느라 더딘 걸음이었다.
'동네 어른 찾아가서 이야기 듣고 오기' 시간에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옥수수와 감자농사 등을 지으시는 마을 할아버지 . 아저씨 댁이며, 이장님 댁을 직접 찾아가 스스로 인사를 드리고 궁금한 것도 여쭈어 보았으며 마을 어른들은 일손이 바쁜 가운데도 손수 아이들을 감자밭에 데리고 가 감자를 캐주며 자상하게 이야기해줌으로써 이런 것이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임을 깨우쳐 주었다.
감자를 한아름 받아들고 공손하게 인사드리고 돌아서는 아이들, 그길로 또 가까운 봉복사까지 걸어가 마루에 앉아계시던 태허 큰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부처님께 절도 해보는 아이들은 분명 도시의 막무가내 아이들과는 또다른 모습, 어느새 자연 앞에 순화된 얼굴들이 분명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학교교육이 갖고 있는 병폐와 모순점에 대한 대안책으로 대안 교육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아직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며 푸른학교 역시 이러한 대안교육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푸른학교만큼은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살아있는 학교로서 훨씬 더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푸른학교는 올해 안에 우리 얼과 꼴을 바로 알고 찾는 박물관 학교와 역사기행학교를 통해 조상의 숨결을 느끼고 오늘의 우리 모습을 살펴보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이곳 신대리의 마을 아이들과 형편이 어려운 시설아동이나 결손가정 어린이와의 결연사업을 통하여 이러한 교육혜택을 나누고자 한다.
비록 현재는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 비상설 학교로 운영하고 있지만,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연계를 통해 상설학교를 도모하고자 한다. 푸른학교는 이를 위해 보다 많은 회원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자연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전인교육이라는 교육 본래의 기능을 다하고자 하는 푸른학교. 우리 것의 의미를 되짚어두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육이 특별하게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신숙 교장의 말처럼 푸른학교가 자연스럽게 그리고 튼튼하게 뿌리내려 우리 교육의 든든한 앞날을 열어주길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