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본래 없는 것

특집 / 병

2007-09-19     관리자

환자 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진통제 주사와 수면제를 투약하고 잠들어 있는데 병실 창 밖에는 연두빛 잎새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덕암 거사, 그와 결혼한 지 24년이 되었지만 그 3분의 2는 병치레를 하며 살았다. 언제나 그는 스스로 병든 사람이었고 실지로도 그랬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항상 병을 앓는 사람으로 기억했으며 그는 몸이 아프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해 보일 정도였다.
그는 안 먹는 음식이 더 많았고 한번 식탁에 올랐던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고 김치도 갓 담궜을 때 딱 한 번 맛보듯 먹으면 그 김치가 다 끝나도록 다시는 먹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 냉장고에 넣었던 음식도 먹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 삼복더위에 냉장고에 넣었던 냉수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항상 배가 아팠고 체중은 과미달이어서 바람불면 날아갈 것같이 몸이 깡말라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다반사였었고 병명도 그 때마다 다양했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약봉지가 즐비했으며 이러다가 언젠가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 살았고, 심장 압박을 느끼고 호흡곤란을 겪을 때는 유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친척들의 안부인사도 그의 건강여부부터 시작하여 심지어는 그의 누님이 가끔 그에게 농담 반으로 머리털은 아프지 않느냐고 물을 정도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병치레로 살아온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했듯이 그의 일상생활은 매사에 까다롭고 신경이 예민하고 독선적이며 권위적이고 아무튼 유난스러워 주위사람들을 지치게 했었다. 그에게는 이 세상에 몸 아픈 자기만 존재하는 것같이 오로지 자기 몸에만 철저히 집착하고 살았으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허용되지 않았다. 결혼 후 그와 함께 살면서 그런 그에게 실망하고 지쳐갈 때 나는 나대로 사는 방식을 모색해야 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 속에는 상대적인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어야 했다. 그것은 불법에 귀의하여 기도하며 터득한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일찍이 법당 언저리를 서성대며 오늘날까지 살면서도 사람이 변변치 못해서인지 그런 그의 건강에 대한 발원 한번 제대로 못한 채 기도생활을 하며 내 삶을 부처님께 모두 믿고 맡기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거사가 위중할 때마다 대수술을 받을 때마다 나는 불보살님이 보살펴 주시는 꿈을 꾸고 그러고나면 여지없이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겨 그때마다 또 완쾌되는 체험을 했다.
그렇게 그의 병고를 계속해서 겪으면서도 그에게 병은 본래 없는 것이라느니 몸의 병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한번도 해볼 염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의 마음 속에 그런 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뀌기를 바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기다리기는 더더욱 하지 않았고, 그는 그인 채 그대로를 인정하고 살아야 했다. 나의 모든 삶은 불법에 계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도 역시 불법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업은 본래 없는 것이기에 병도 본래 없는 것이라고 믿었고, 고통이 와도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미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고 염하고 관하며 마음 편히 임원수행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거사의 생각이, 그의 생활이 조금씩 바뀌어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확실히 바뀌어지고 있었다. 안 먹던 음식을 먹고 냉장고에서 나온 음식을 먹고 냉수를 마셔도 그의 배는 아프지 않았다. 모든 집착이 바로 병고라는 것을 오랜 병고 끝에 그가 스스로 체험하며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자기 생각들을 조금씩 놓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의식이 바뀌고 마음의 문이 열려 매사에 권위적이던 그가 가끔 농담도 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달라져 갔다. 무엇보다 입맛이 좋아 식사를 잘 했고 그러자니 자연히 체중이 늘어 체중미달이었던 깡마른 몸이었다는 것이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건장한 몸이 되어 이제는 더 이상 그 지난 날의 병든 사람이 아니다.
올봄에 그는 또 수술을 받았다. 삼십삼 년 전 그는 시골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좌측 발목에 장애가 있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걷는 데 무리를 느끼게 되자 그 장애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수술을 받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 때문에 당황하며 의사가 우려된다고 기도하라고 했다. 나는 또 그날밤 불보살님의 도움을 받는 꿈을 꾸었다. 평소 때 꿈을 중요시 하지도 않고 꿈을 잘 꾸지도 않지만 이렇게 어려울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려주시는 생생한 체험을 잊을 수가 없다.
수술을 두 번, 세 번 거치면서 환자가 드디어 관세음보살 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흐를 정도로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는 예전처럼 짜증내는 일 한 번 없이 잘 참아 주었다. 참 마음 편한 간병생활이었다.
우리는 지금이 업장소멸하고 있는 소중한 순간임을 자주 일깨우며 부처님께 감사하고 의사 부처님께 감사하고 간호사 보살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우려했던 것보다 잘 완쾌되어 정상생활로 돌아와 있다.
우리의 육신은 물질에 불과하며 물질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하다는 것은 무한히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무상함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중생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병이 오면 그 병과 함께 살면서 육신이 무상함을 알아 욕심과 성냄과 미움과 대립을 버리고 또 버려서 내 생명이 정말 불생불멸하는 찬란한 진리생명임을 깨달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은 기쁨으로 오늘날 우리 앞에 성숙된 삶이 되어 현존하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권창선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