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을 바라보는 제 3 의 눈

특집 - 늙음

2007-09-19     관리자


흔희 '늙음'이라고 할 때 우리는 우선 세상을 살아온 나이를 연상하게 됩니다. 육체의 성장 이 멈추어 지고 일정기간을 지나 쇠락의 시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늙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일정한 기간을 지 나면서 이렇게 늙기 마련입니다. 누구도 영원히 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한 늙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또한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습니 다. 그 변화의 한 과정이 늙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늙어가지는 않습니다. 비록 우리 의 육체적인 세포가 하나씩 둘씩 그 기능을 쉬고 역할을 제대로 못해간다 하더라도 곰곰히 들여다보면 부처님 무한공덕생명력인 우리의 생명은 새록새록 진화 발전해가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가 이생에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할지라도 이는 보살도 성숙의 한 과정일 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 보살들입니다. 수행 정진 기도하는 사람은 이것을 바로 봅 니다.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수행자에게는 세속적인 나이도 늙음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 로지 깨달음의 빛, 부처님의 광명을 더해가는 영원한 선재동자, 행자들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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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가 계속 내린 후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기도 하고 저 흘러가는 물소리 가 마치 이 지구덩이가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들리는가 하면 온 우주가 진동하는 흐름으로 내 귓가에 크게 들려오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름답고 정답게 들리던 물소리였지만 '늙음'이 란 제목의 글귀를 염두에 두고 귀를 기울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늙어 가는 모습을 마치 폭류와 같다고 한 비유는 참으로 그렇게 신속하게 변 화해 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 다. 내가 늙어간다는 사실, 또 죽음이 닥치는 현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눈을 부릅뜨고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해도 모자랄 것 같은 마음인가 하면 자다가도 깜짝 놀라 일어나 자신 을 살필 때도 있다.
결국 늙음이란 죽음과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안게 하는 진행일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늙음을 네 가지 고통 중의 하나로 보셨다.
그러나 이 늙음의 굴레에 휘말리지 않고 늙어 가는 자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육체의 늙음과는 상관없이 정신적 자아를 개발하는 제 3의 눈을 뜨게 한 사실이 경전에 나 온다. 아주 드라마틱한 이 이야기는 『능엄경』 2권에 담긴 내용으로 다음과 같다.
부처님 당시 코살라 국에 통치권을 잡았던 파사익왕은 부처님과 같은 날 태어났다고 한다.
정치를 하면서 부처님을 만나 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날 파사익왕은 기원정사에서 다른 많은 대중과 함께 법문을 듣다가 문득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부처님 저는 지금까지 사람이 죽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 곧 열반이라고 말하는 다른 학파들의 말을 신봉해 왔는데 부처님은 왜 아까부터 자주 불생멸(不生滅)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까.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어째서 생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합 니까?"
이 물음에 부처님은 "왕이여 당신의 그 몸이 금강처럼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느냐?"
왕은 "아닙니다. 이 몸은 반드시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네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없어질 것을 미리부터 알 수 있느냐?"
왕이 말하길 "부처님 제가 젊었을 적엔 건강하여 젊었었고 지금은 늙어서 살결도 주름지고 기운도 쇠하여짐을 보고 앞으로 점점 쇠하여 없어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늙어 가는 것은 10년, 20년 만에는 그 달라짐이 확실하게 나타나지만 찰나찰나에 변해가는 모습은 너 무나 미세하여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은 "자 그러면 그대가 변하는 모습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보 여주겠다. 왕의 나이가 몇 살 때 저 갠지스 강을 보았는가?"
"세 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저 강을 보았지요."
"그러면 왕이여, 그대가 세 살에서 스물, 서른, 마흔을 넘어 이제 육십이 넘어서 백발이 되 었음을 슬퍼하고 있는데 그대의 몸은 예전보다 주름지고 늙었지만 그대가 지금 갠지스 강을 보는 것과 예전에 저 강을 보는 것에도 젊고 늙음이 있는가?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은 비록 주름지고 늙었지만 저 강을 보는 견정(見精, 마음)은 주름지 고 늙는 것이 아니다. 늙고 주름지는 것은 변하거니와 늙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생멸이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생멸함이 아니다. 본래 생멸이 없는데 어찌하 여 그대의 몸이 태어나고 죽는다 하여 그대의 마음도 모두 다 없어진다고 믿고 있는가?"
파사익 왕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지금까지는 죽은 다음에 몸도 마음도 다 소멸 해 버리는 줄 알았다가 이 몸이 늙고 죽음에 상관없이 죽은 다음에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나는 이 능엄경 이야기를 동학강원에서 20대 나이에 처음 읽고 감동한 적이 있어 두고두고 생각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결국 늙음이란 천류하는 속의 흐름에 불과하고 우주자연의 운동과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진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물리학에서도 물질이란 본래 에너지의 진동일 뿐이라고 했다.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 라서 개체적인 존재가 이루어지므로 그것도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다.
우주는 성·주·괴·공(성·住·壞·空)하고 인간은 생·노·병·사(生·老·病·死)하고 우리들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해가고 있다. 그 속에서 변하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또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변하는 것 을 거슬러 변하지 않으려는 것은 고통이며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늙어 가는 현실을, 지구가 항상 돌고 있지만 당연한 현실로 직시하고 돌아가 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늙어 가는 몸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늙지 않는 마음을 위해 서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자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배가 부르지만 정신적인 안정감이 없는 현대인들이 과연 어디에다 초점을 두 고 살아갈 것인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순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제 3의 눈이 열려야 할 것이다.
제 3의 눈이 열리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값을 하는 것인지를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늙음이 고통의 하나가 아니고 인생을 회향하기 위한 준비 로서 아름다운 결실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려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노력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노력이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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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스님은 1947년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 1965년 충남 계룡산 용화사에서 원담스님을 은사 로 출가득도.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에서 묘엄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 동 승가대학에서 강 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동학사 승가대학 학장겸 동학사 주지 소임을 맡아 후학을 양성 하고 계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나현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