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사회, 그 꿈과 현실

21세기 생활과학

2007-09-18     관리자


우리에게 21세기는 어떻게 올까? 요란한 팡파르로 올까, 아니면 저주와 공포의 불벼락으 로 올까? 세모만 되어도 야릇한 기대와 흥분에 젖는 우리네 삶에 세기가 바뀌는 시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사건이자 중요한 이정표로 느껴질 게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을 어느 만큼 살아본 사람은 안다. 새해 첫날에도, 10년대가 바뀌는 날에도 어 제와 똑같은 해가 또다시 떠오르고, 세상은 그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어제의 조건 속에서 새 로운 오늘이 시작된다는 것을.
21세기는 20세기의 달력에서 마지막 한 장을 떼어내면서 시작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 만, 21세기는 20세기와 아무런 단절이 없는 시간의 단순 연장일 뿐이다. 따라서 21세기의 전 망은 20세기의 굵직한 추세의 분석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굵직한 사건과 추세를 몇 가지만 들자면,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사회주의권의 등장과 붕괴, 동서냉전의 시작과 해체, 민족해방운동의 성장과 무장 해제, 복지국가 이념의 대두와 위기, 과학기술혁명과 정보통신 혁명의 가속, 문화와 오락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신자유주 의의 대두와 자본의 세계화 완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여러 차례 위기와 도전에 도 여전히 살아남아 새로운 자본 찬가를 지휘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손꼽을 만하 다. 19세기말에 독점화와 제국주의화의 길을 걸으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반체제 운동 을 제압한 바 있는 자본주의가 20세기말에도 흡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21세기에도 이 자본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사람들은 좋든 싫든 각 자가 최대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가운데서도 세상은 그럭저럭 굴 러갈 거라는 전망은 얼른 보아 무리는 아닌 성싶다. 거기에 자본주의가 인류 최후의 체제라 느니, 역사는 끝났느니, 자본주의 체제가 빚어내는 온갖 부작용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므 로 그에 적응하고 살아가면서 그속에서 작은 개선을 꾀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선택이니 하 는 말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기회조차도 차단해 버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21세기도 대체로 이런 것인 듯하다. 개인의 창조력에 힘입은 과학기 술혁명과 정보통신혁명이 더욱 발전, 그 혜택이 확산되면서 편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생산 력이 고도로 발달하여 생산을 담당할 사람은 소수로 충분할 것이고, 다수는 문화 창조나 오 락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여가 시간이 크게 늘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놀면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엄청난 속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이들에게는 그리 즐겁지 만은 않은 인생이 주어질 것이고, 늘 경쟁의 부담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인간의 삶을 다소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대신 승자에게는 전례없는 안락과 쾌락이 제공될 것이다. 승자 에게 그만한 혜택을 주지 못할 경우 사회의 발전은 정체될 것이고 그 여파가 만인에게 미칠 터이므로 그 정도의 불평등은 감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불가피하게 탈락하는 이 들에게는 다른 장치를 두어 최저한의 삶의 기회를 보장해 주거나 또 다른 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소간의 부작용과 무리는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설마 인류가 멸망하거나 지구가 무너지기 야 하겠느냐. 그런 부질없는 걱정일랑은 말고 어서 가서 너와 네 가족이나 챙겨라. 세상은 온통 장미빛만도 아니고 온통 잿빛만도 아닌 그저 그런 것이고, 가능성은 모든 방면으로 열 려 있으며, 어느 줄을 잡느냐에 따라 네 인생은 180도로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다소 낙관론에 치우치기도 하고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현실론에 치우치기도 하지만, 21세기의 자본주의는 대체로 우리에게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거나 덧없는 이상에 기대지 말 고 눈앞의 현실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자, 이제 그 주문대로 현실에 정말 한번 충실해보 자.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 이 체제가 우리에게 꽃 장미빛 미래는 아니라도 최소한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을 약속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최근에 자본주의의 새로운 구세주로 떠오르면서 나날이 그 기세를 더해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이념의 뿌리를 한번 보자.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의 공황을 맞아 국가의 강력한 경제 개입을 골자로 하는 케인즈주의가 파탄에 직면하면서 그를 대체하며 등장한 이념으로 서, '작은 정부'와 '자유경쟁'을 모토로, 노동자보다는 기업을 우선하고 경쟁력의 강화를 무엇 보다도 중시하며 그를 위해 사회보장과 공공 부문을 감축하면서 자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여 자본주의에 밀어닥친 새로운 위기를 돌파하는 것을 그 주된 목표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가 본래부터 안고 있는 무서운 독소인 무한경쟁에 따르는 독점과 불평등과 불안정성의 심화,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케인즈주의와 복지국가의 이념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태동한 이념이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야만성이다. 그 속에서는 경쟁이 최고의 가치 로 숭상받고, 탈락자는 가차없이 버림받으며, 어떻게든 타인을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려는 연 대와 협력의 정신은 타기의 대상으로 내몰린다. 즉,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야만성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전투가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지금까 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던 경쟁이 이제 잘 살고 못 사는 차원을 넘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차원으로 치닫는다. 사회 곳곳에 전투의 잔해가 켜켜이 쌓여가고, 그 틈을 타고 각양각색의 찰나주의, 한탕주의, 감각주의, 쾌락주의, 신비주의가 파고든다.
최근의 각종 통계수치는 이런 신자유주의 이념하의 자본주의가 가져올 21세기에 매우 우 울한 전망을 더해준다. 1980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 의 불평등이 2배 이상 심화되었고, 부국과 빈국의 경제력 차도 훨씬 커졌으며, 세계 곳곳에 서 사회보장은 후퇴를 강요당하고 있고, 실업도 거의 예외 없이 폭증하고 있으며, 환경 파괴 와 마약과 범죄와 난민은 계속 늘고 있다. 거대자본에 휘둘림 당하는 정부는 거의 예외없이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이렇듯 심각해지는 문제들을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
21세기는 이런 가운데에서 태동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제동을 걸 다른 강력한 힘이 출연 하지 않을 경우, 21세기는 이전 어느 시기에도 볼 수 없었던 정도의 심각한 계급간, 민족간, 인종간의 벽과 미증유의 혼란이 있게 될 것이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와 세계가 온 전히 보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조차도 불투명해진다.
물론 희망의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도, 그리고 정부들도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그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한데 모여 사는 것은 사회가 그 성원들의 삶을 보장해줄 때 에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고, 또 지금까지는 비록 오래도록 고통을 감수해왔다고 해도 자신이 딛고 선 땅이 무너져 내리는 것까지도 바라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아마도, 이제 넘쳐나는 부를 만인이 고루 향유하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쟁보다는 다른 사람과 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우선하는 사회, 탐욕스런 자본한테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빼앗아 인간 스스로의 통제 하에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생산을 실천에 옮기는 사회,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 속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꽃을 피우는 그런 사회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가오는 21세기는 그 벽두부터 우리에게 흥도 나고 한편 겁도 나는 일대 격변을 보여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새로운 자유주의'가 '새로운 반체제 운동'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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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 님은 58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였다. 타임-라이프 북스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러시아사 100장면」, 「그래도 사람은 하늘이다」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종원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