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태국 2 왓빠반탓

태국 우돈타니의 위빠사나 명상선원-왓빠반탓

2007-09-18     관리자

태국에는 국제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몇 개의 명상선원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법을 지도하 고 있는 사원들로서, 방콕에서 710㎞ 떨어진 북부 치앙마이의 람프엉 사원, 677㎞ 떨어진 남 부 수랏타니의 왓수안목, 그리고 동북쪽으로 500㎞떨어진 우돈타니의 '왓빠반탓' 등이 대표 적인 국제명상선원으로 이름이 높다. '왓Wat)' 은 태국어로 사원을 뜻한다.

왓빠반탓은 '마하 부와'라는 고승이 세운 명상수행 수도원으로 도심에서 약 2㎞ 떨어진 숲속의 사원이었다. 이곳에서 묵으려면 장로 스님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스님은 뜻밖에도 서양에서 온 노스님이시다. 부수도 원장으로 계 신 이 반야 스님은 도심지로 외출한 적이 거의 없이 이 곳에서만 약 30년간 수행을 하고 계 신다는 영국인 스님이다. 며칠동안 묵기를 간청하자, 수도원에서 요구되는 것은 명상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흔히 '보시'라는 명목을 제공할 기회도 없이 젊은 스님의 안내로 아담한 막사에 여장을 풀었을 뿐이다. 무엇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식마저도 버려야 하는 무소유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신 것일까?

벽에는 이곳의 원장이신 마하 부와 스님의 스승인 아찬 문 스님의 조각과 사진이 걸려 있 다. 사마타(선정)와 위빠사나(지혜수련)에 정통한 선사로 명성이 높으신 분이셨다. 마하부와 큰스님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 제자들에게 맹렬한 정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다.

'위빠사나'는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방법이며, 이것을 통해 깨달 음을 얻으셨다. 사념처인 몸, 마음, 느낌, 법으로 수행을 한다.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하고, 호흡의 들어가고 나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을 관찰하는 내적 명 상 관찰법이라고 한다.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인식하여 보고 파악하는 것이다.화 두선이 일순간 깨달음에 이르는 고속통행로라면, 위빠사나는 자신이 한 단계씩 그 경지를 스스로 터득해 나가도록, 말하자면 계단식으로 수행능력을 쌓아가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한 다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초보자인 경우에도 약 10일 정도 교육을 받으면 단계적으로 명상의 경지를 느 끼게 된다고 한다. 각 개인의 막사는 숲 속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서로 수행생활을 방해 받지 않도록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승려는 영국에서 온 세분의 스님을 포함하여 약 30명쯤 된다. 한 미국청년도 여행 중에 이곳에 들러 수행을 하고 있었다. 물질문명의 극치를 이룬 서양에서 온 이들은 무엇을 얻고자 이곳까지 왔을까? 어쩌면 이들은 모든 것을 이 숲 속에 버리러 왔는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에는 점심이 없다. 오전 10시쯤 아침을 먹고 나면 음료수로 대신하고, 저녁도 없다. 허기를 달래보려고 차를 한 잔 마신 후, 찻잔을 씻으려 하자 소년들이 달려와 대신 씻겠다 한다. 스님이건 속인이건 수행자들은 오직 수행만 하라는 뜻이다.
해가 뜨면 새벽부터 스님들은 탁발을 나선다. 공손한 수양의 의미로 맨발로 걷는다. 황색 치온의 가사를 걸치고 바릿대를 옆에 끼고 하루에 한 번 줄지어 탁발을 나간다. 69세의 마 하 부와 큰스님도 넉넉하고 여유롭게 길을 걷는다. 평생을 저렇듯 길을 걸었으리라…. 그 뒤 에는 사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따른다. 발우에 음식이 넘치면 이들이 큰그릇에 담아 온다.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미 사원 앞에서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받는다. 신자들의 극진한 공양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만 스님들은 고마워하는 표정이 없다.

마땅히 공양 받을 만한(은공)의미도 있겠고, 오히려 공덕을 쌓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탁발이 끝나면 공양법문을 듣는다. 음식을 먹으며, 맛과 느낌을 관찰하라. 먹는 행위 그 자체도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탁발해 온 음식들은 모두 모아서 먼저 승려들이 공양하 고, 여행자, 신도들, 모두 모여 함께 공양한다. 음식을 모두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한가지 맛에 집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 한다. "이는 맛을 즐기고, 배불리 먹고, 몸을 튼튼히하 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이 아니나이다. 다만, 이 몸을 유지하여 청정수행을 돕기 위함이나 이다. 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을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고자 함이나이다. 이처럼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 수행 관찰을 하기 위함이나이다." 이 시간이 하루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가 된다. 숟가락, 젓가락 없이 오른 손으로 공양하 고, 남는 음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한다. 과일, 과자, 국, 쌀, 달걀 등 풍부하 지는 않지만 다양하며, 때로는 고기도 공양의 대상이 된다. 남방불교의 계율의 특징으로, 사 람, 개, 말, 코끼리, 뱀, 악어, 사자, 늑대, 호랑이, 곰 등 10가지 고기 이외에는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먹을 수 있는 고기 중에서도 나를 위해 죽인 동물이라는 의심이 들거나, 동물이 죽는소리를 들었거나, 죽이는 광경을 보았을 때에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한다.

공양이 끝나자 마하 부와 큰스님께서 법문을 하신다. 말문을 열기 전 스님은 가래침을 뱉 어 내었다. 얼핏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더러운 육신을 가진 자신을 존경하 거나 자신의 말에 집착하지 말며 다만 법에 의지하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 았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솔직함이 오히려 숭고함으로 우러나온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어떤 특별한 순서에 따라 개발하지 말고,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동시에 사용하시오. 자신의 개성에 맞는 대상을 골라 집중하시오. 그러나 이 선정삼매에 집 착하지 말고 지혜를 갖고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 몸을 관찰하시오. 그러면 모든 현상은 변하 며 그 가운데 나라는 현상 그 자체일 뿐인 것을 알 것이오. 무지에서 깨어나 실재를 보면 일체가 평등이며 곧 해탈인 것입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침을 뱉었다.

자연 속에 묻힌 사원은 아늑하다. 한낮의 숲길을 동자승이 쓸고 있다. 이것도 수행의 하 나이다. 책을 펼쳐 몇 장을 들척이다가 궁금증이 들어 부원장이신 반야 스님께 찾아갔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왜 12시 이후에는 먹지 않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인도는 더운 나라였기에 공양한 음식을 발우 안에 오래 보관할 수 없었 던 것이고, 또 하나는 배부르고 몸이 편하면 수행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대중포교를 어떻게 합니까?

"포교자는 먼저 욕망, 증오,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 수행에 힘을 씁니다. 대중들은 좋은 말보다는 청정한 생활을 통하여 부처님의 법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 니다. 승려들은 행동으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청정한 수행을 하도록 합니다.이것이 설법보다 더 효과적인 포교입니다."

어떤 이들은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듯이, 깨닫고 난 후 계율을 거슬리기도 하는데, 왜 그러한지요?

"미묘한 문제입니다. 수행은 방법이기 때문에 만약 깨닫고 나 후라면 이론적으로 사소한 계율 그 자체에 집착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깨달았다는 승려가 살인을 하거나 여자를 취한다면 이해할 수 없지요. 그것은 여전히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그러한 행동을 하면 다른 수행자들은 어찌 됩니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 계율을 어길 경우 스스로 옷을 벗습니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요. 승복을 입고 계율을 어 기느니, 속인으로서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체제가 오히려 승가의 정화작용을 합니다."

마하 부와 큰스님은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칩니까?

"그냥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들이 명상할 때 생기는 여 러 문제들을 물으면 정확히 문제점을 지적해줍니다. 공식적인 가르침은 없습니다. 수행은 각 자 개인이 하지요. 다만 수행하다 문제점이 생기면 가서 묻습니다."

여러 대화를 나눈 끝에 스님은 덧붙이며 말씀하셨다.

"세계는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세계는 혼란스럽습니다. 매스컴(대중매체)의 발달 로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인간은 쉽게 타락하고 물질에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럴 때일 수 록 수행에 더욱 정진해야 합니다."

노스님의 눈빛은 더없이 맑았다. 청정함과 소박한 구도자의 은은한 미소가 노을 속에 선 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종원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