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키우기

지혜의 뜰, 삶의 여성학

2007-09-18     관리자


분주한 가운데 교보문고에 들렀다. 가끔 시간이 남거나, 누구와 만나려고 해도 장소가 마땅찮을 때면 주로 찾는 곳이 교보문고이다. 오늘은 책도 구경하고 친구도 만나기로 하였다.
유치원 겸 어린이집을 하는 친구이다. 이 친구를 만날 때 마다 나는 주눅이 들곤 하였었다. 이 친구는 얼굴은 그리 예쁜 편은 아니지만 큰 키와 원색의 의상, 첨단 헤어스타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옷차림도 수수해지기 마련이건만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에게서 나는 나름대로의 프로의식을 느낀다.
자기 취향에 맞는 차림으로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의 반응이 별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옷차림이 맘에 들면 그 선생님을 모델삼아 선생님의 행동을 모방하지만, 중년의 아주머니 차림으로 교육을 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을 쳐다보지 않거나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선생님의 외모나 옷차림에 따라 교육적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이 친구는 요즈음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를 탓하기도 한다.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한쪽에서 조용히 있기에 함께 어울리도록 하였으나 잘되지 않아 "그럼 선생님하고 정리 좀 할까?"하고 청소도구를 가지고 오도록 하였더니 그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뭐 파출분 줄 아세요?"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의 말을 얼른 받아서 "○○는 항상 깨끗하고 사물함 정리도 잘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같이 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였더니 그제서야 협조를 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유치원에서는 정리를 잘 하는 모양인데 집에서는 전혀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는 엄마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어머님께서 먼저 정리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시면 금방 배울 것이니 아이 걱정은 마시라"고 하였단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체로 학부모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칭찬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의 결점을 이야기하면 심한 경우에는 유치원을 옮기는 경우도 있다보니 완곡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유치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때도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엄마, 여기는 에어컨이 없어서 안되요"라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발을 돌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가정 소득을 상승시켰다. 반면 자녀수는 감소되어 온 까닭에 부모들의 귀한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와 함께 자녀의 발언권도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의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릴 적 습관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 친구는 "나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내용의 번역서를 골라들고는 유치원교육도 중요하지만 부모들의 교육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 부모를 통해 배우게 되는 행동양식이야말로 평생을 따라 다니는 습관으로 남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부모가 되기 전에 부모됨을 생각해 보는 일은 정말 필요할 듯 싶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즉각 들어주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성적이 오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요즈음 부모들은 과거에 비해 자녀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정신적 지주로 삼을 지침이 없기 때문에 고학력의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가정교육의 실종', '생활교육의 실종'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향교에서 지역주민을 직접 가르치며 생활을 하였는데, 그러한 내용 중에는 가정생활에 대한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것이 많았다.
그 중에 개로사상(皆勞思想)을 주장한 정약용이나 이덕우 등은 한솥밥을 먹는 구성원들은 누구라도 그 공동체를 위한 역할(노동)이 부여되어야 공동체의식이 확고해 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공동체의식은 바로 효(孝)로서 나타나게 되며, 그것이 이웃과 지역사회로 확산되면 광효(廣孝,愛國心)로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과잉보호 속에서 크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역할을 주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노동에 대한 신성함과 보람을 알게 해주자는 것이다.
"오늘 하루 일한 바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이라)"라는 스님들의 엄격한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자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주어 노동의 보람을 알게 하는 것은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삶의 방식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최나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