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도(道)와 정신치료

지혜의 뜰, 열린 상담실

2007-09-18     관리자

모처럼 정신치료를 공부하는 동료들과 함께 스승이신 이동식 선생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4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팔공산 산자락을 타고 올라 가서 은해사(銀海寺)와거조암을 둘러 보았다.

거조암은 고려시대 때에 보조 국사 지눌 스님께서 혼란에 빠진 불교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을 발표하셨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글중에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 10명과 함께 평생을 열심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였지만, 10년 만에 다시 모여보니 죽거나 앓기도 하고, 혹은 명예와 이익을 탐하여 흩어져서 겨우 3, 4명만으로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필자가 속해 있는 한국정신치료학회의 지난 날을 보는 것과 같아서 모두들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치료란 쉽게 말하자면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 정신과의사가 인생상담을 해주고, 그 고통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정신치료는 프로이트나 융과 같은 외국의 정신과 의사들의 이론을 추종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전통적인 것은 무시하고 외국의 것을 무조건 숭상하는 풍조가 의사들 사이에도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 쐐기를 박으신 분이 바로 필자의 스승이신 이동식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미국에서 공부를 하시면서 서구 문명의 위기와 모순점을 일찍이 간파하시고, 그 해결은 결국 동양의 지혜에서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셨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셔서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에, 어느 날 30년 간이나 불교를 신행하던 분이 우울증으로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대혜선사의 서장(書狀)을 펴놓고 선생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그 질문에 답하는 동안에 부처님으 가르침이야 말로 최고의 정신치료이며 그 핵심은 집착을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셨던 것이다.

그 후부터 선생님께서는 "도(道)에 바탕을 둔 정신치료"를 확립하고 그것을 펴시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안 외국의 이론에만 길들여진 의사들이 아무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작은 연구 모임을 만드셨으니, 그 모임이 바로 지금의 한국정신치료학회의 전신(前身)이 되었던 것이고 그 당시의 심정은 바로 보조국사가 정혜결사문을 만들 때와 같은 비장한 것이었다.

그러기를 어언 25년, 그 동안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1994년도에 국제정신치료학회가 한국에서 열렸던 것이다.

전 세계 각국에서 내노라 하는 정신치료자들이 국내에서는 무시당하고,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던 바로 그 '도(道)에 바탕을 둔 장신치료'를 배우기 위하여 모였던 것이다. 그때의 열기는 아직도 필자의 마음에 가슴 벅찬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제 이동식 선생님의 연세가 어느덧 여든을 바라 보신다. 두 번에 걸친 암(癌) 수술을 크게 받으셨지만, 후학들을 가르치시는 열정은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어 보이신다.

그때문인지 공부모임의 일을 맡고 있는 필자에게 어떻게 하면 함께 참여를 해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잇는지 묻는 전화가 부쩍 빈번하다. 아마도 삶과 죽음에 대하는 선생님의 경건한 태도가 알게 모르게 전달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우리가 그 동안 지향해온 목표는 '도(道)를 바탕으로 하는 정신치료'다. 즉 동양의 좋은 전통인 도에 서양의 정신치료를 접목시켜서, 서구의 정신치료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 즉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골수(骨髓)와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문제는 깨달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말이나 이론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과연 얼마나 도의 경지에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몸(욕망)과 마음(탐·진·치:貪·瞋·癡)에 자문해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보이는 태도를 보면 평소의 수양의 정도가 잘 드러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신치료를 받으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문제에 대한 작은 깨달음(통찰)을 얻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유지하여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치료라는 것도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잘못된 삶의 습관을 바로 잡자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을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실천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선이나 백팔 배도 좋고, 독경이나 진언을 외우는 것도 좋다. 무엇이든지 반복해서 실천할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보림(保任)이 될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깨달음은 한갓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최나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