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선 고백

이남덕 컬럼

2007-09-18     관리자


동안거 해제날(음 정월보름날)을 앞두고 갑사 대자암 선방에서는 정영 큰스님을 모시고 열 이튿날 저녁 참선시간에 자자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 시방당 선방에서 네 번째 안거를 마치는 셈인데 큰 스님을 모시고 하는 자자회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자회란 안거 석달동안 겪은 각자의 참선 공부, 기타 자기 심성의 현주소를 반성, 점검하여 대중앞에 공개보고하는 모임이다. 넓다란 선방에 전후 석줄로 앉았던 보통때와는 달리 빙 둘러 방석이 놓여졌다.
스님들과 거사, 보살님들이 앉은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 발언하는데 그 차례도 보통때의 줄서 앉았던 순서를 일사불란하게 한줄로 원형을 이룬것이니 나는 우선 이런데서부터 감탄스러웠다. 겉보기에는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도 내면세계는 질서 정연한것이니 말이다.
또 진술하는 내용의 진지성이나 발표하는 이의 태도같은 것을 보면서 배울 것이 많았다. 참선 경력이 얕은 사람들은 열선적인 것이 특징이고 연조가 긴 분들은 표현을 적게 하려는데 하심의 노력이 역력하다. 이러한 각자의 진술에 대하여 큰스님께서는 일일이 각 사람에게 적절한 가르침을 주신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되도록 간결하게 요점만 분명히 말하고 싶었으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요즘 참선 공부하는 중에 마음을 집중하는 점은 불광법회에서 매 법회때마다 맹세하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의 앞부분 즉 내 생명과 부처님의 생명이 일치하는 그 대목을 간절히 염하면서 진여불성(眞如佛性) 즉 부처님을 실감하려는 노력을 참선의 첫머리에 호흡을 가다듬는 상태에서 도입시키는 것이다.
이미 내 몸, 내 마음, 내 생명이 우주법계 가득한 부처님 생명, 진여불성 속에 들어가 있거니 환희심이 솟구치는 속에 입정으로 직결되면 나는 다른 이들이 화두(話頭 )들 듯이 '아미타불'하나로 집결시키는 것이니 이것은 나름의 '염불선(念佛禪)'의 방식이다. 그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만 한정되어 계시는 부처님이 아니고 진여불성 부처님의 총 명사임은 물론이다.
우리 불교는 유신론(有神論)이 아니고 대우주의 도리인 진리 그 자체를 부처(佛·Buddha)로 표현하고 그 명칭도 '여래(如來), 진여(眞如), 법성(法性),실상(實相), 보리(菩提), 진아(眞我), 열반(涅槃), 극락(極樂), 주인공(主人公), 중도(中道), 묘각(妙覺), 일물(一物)'등 그 이름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진리의 자성공덕이 무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미타불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일불(三身一佛)로 가르쳐주신 청화(淸華) 큰스님은 그 스승이신 금타(金陀) 대화상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우리에게 설해주셨는데 우리가 참선 첫머리에 이 관법으로 인도되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함을 금할 수 없다.

'마음은 허공과 같을새 한 조각 구름이나 한 점 그림자도 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허공같은 마음세계를 관찰하면서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이러한 허공 같은 마음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하는 금색광명을 띤 한없이 맑은 물이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품바다를 관찰하면서 원만보신(圓滿報身)인 노사나불을 생각하고,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형체없는 중생(衆生)과, 밖으로 일월성신(一月星辰)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무정중생(無情衆生)과 사람과 축생과 꿈틀거리는 뜻이 있는(有情) 중생 등의 모든 중생들을 금빛 성품바다에 바람없이 파도가 스스로 뛰노는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천 백억 화신인 석가모니불을 생각하고,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 마음 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空)과 성품(性)과 현상(相)이 본래 다르지 않는 하나라고 관찰하면서,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생멸하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 지니라."
(金陀 和尙 『金剛心論 』「菩提方便門」과 淸華 禪師 法語集 Ⅰ 『正統禪의 香薰』, Ⅱ『圓通佛敎의 要諦』 )

이러한 보리방편문으로 인도된 나의 참선 공부는 이제는 처음 한 줄 '마음은 허공과 같을새'만 생각해도 우주 전체 생명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한 마디로 환희심이 솟구치는 것이다.
내가 불광법회에 다닌 것이 대각사 시절부터니까 20년 전이었고, 태안사 정중당(淨衆堂)에서 참선을 시작한 것이 꼭 10년 전 일이다. 나는 광덕 큰 스님과 청화 큰스님의 덕으로 우주생명을 실감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참 승복을 많이 타고 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84년 어느 봄 날 나는 불광법회에 나갔다가 이층 광덕스님 방에 문병 차 들렀었다. 그때 큰스님은 말씀하시기도 힘드실 만큼 편찮으셨는데, 옆에 있던 종이 쪽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셨던 것을 나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구체적(具體的) 실존진리(實存眞理)를 관념적(觀念的)으로 파악(把握)할 때 진리(眞理)가 추상진리(抽象眞理)가 된다"
내가 얼마나 진리생명이신 부처님을 실감하지 못하고 관념적으로만 겉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으면 그 편찮으신 중에 이렇게 적어주셨을까. 금년 새해에는 '은혜의 새해가 열렸다'는 광덕 큰스님의 글을 불광사 남동화 기자님이 연하장으로 보내주셨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자비하신 부처님 은혜가 온 누리에 새롭게 부어지는 새 아침이다. 기뻐하자. 감사하자. 밝은 새해가 다시 열렸다. 우리는 진리 속에 살고 진리로 가호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자. 부처님께 인도되고 은혜받고 있는 것을 깨닫자.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원래로 청정하고 안정되어 있다. 우리 앞에 가로 놓인 고난이란 원래로 없다. 부처님이 가호하시어 무한 위력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햇빛을 이기는 어둠이 없듯이 부처님 위력 앞에 고난이란 없다.
마음에서 생각함으로써 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처님은 설파하셨다. 마음에 있는 것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해 동안 불행, 불안, 병고, 재난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 성취, 돕는 기쁨만을 언제나 생각한다. 이래서 밝은 운명이 우리를 따른다. 이래서 이 한 해는 다시 밝은 해다.
환희, 성취가 너울치는 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온 천지 형제들 감사합니다."

나의 '나무 아미타불!의 염불선의 밑뿌리는 바로 '마하반야바라밀!'의 염송에서 자라나온 것임을 생각하며 자자회에서 무어라 간단하게 감사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요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것이 올바른 참선의 길인지 알 수가 없으나 나는 이 지복(至福)의 정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날 밤 문정영 큰스님은 내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지복의 정서에만 잠겨있지 않도록, 깨달음의 체험을 향해서 힘을 모으라는 가르침인 것으로 받아들여 졌으나 아직 나는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안거 중 내가 제일 나이 많은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노인불수(老人不修) 파거불행(破車不行)인가" 아니다. 78세의 새 출발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최나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