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첫걸음은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선지식 탐방, 대구 비슬산 법왕산 화주 정무 스님

2007-09-18     관리자

봄 가물로 많은 이들이 애태우고 있을 때 홀연 단비가 내렸다. 감로수 같은 봄비였다. 푸릇푸릇해진 산하는 봄비를 머금고 더욱 싱그러워 보였다. 정무 큰스님을 뵈러 가는 날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환희심이 일었다. 마치 기우제를 지내고 나자 비가 내리니 천지신명의 가피라고 기꺼워하는 옛사람처럼 큰스님 친견하는 날 비가 내리다니 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며 홀로 미소지었다.
그러한 상념속에서 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오산 세마대 보적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빗줄기 속에 우산을 쓰고 스님께서 마중을 나오신게 아닌가. 평소 많은 분들이 스님을 찬탄하는 인연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스님, 우중에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건강은 좋으신지요? "아직 건강이 뭔지 모르고 사니 건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람이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한 건강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건강하지 못하면 수행하기도 힘듭니다.
요즘은 공해도 심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시점인지라 건강관리법(한국 자연 건강회 일급지도사 교육수료)을 배워서 신도들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스님을 일러 자비롭기가 부처님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그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스님, 대중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불사를 주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출가하고 나서 사교, 대교 다 마치고 은사스님(전강 스님)을 모시고 안거를 하면서 참선의 맛이랄까 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범어사 선방으로 가던 도중에 영주 포교당에 들렀는데, 대처승이 객승을 안 받는다고 해서 근처의 신심 깊기로 유명한 안약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사님이 '포교당 정화하려고 비구스님 일곱의 뒤를 대주었는데 정화는 하지 못하고 다 가버리니 속상해서 종교를 바꿔야 겠습니다.'하시는 겁니다. 원체 영주라는 곳이 안대근, 김상호, 최성업 등 유명한 대처승들의 터전인지라 당시 전국적으로 불고있었던 정화운동의 여세오도 버거운 지역이었지요. 포교당의 법당은 빈 채로 남아있고 요사채는 대처승측 신도들이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었는지라 절을 절답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방 가는 것이 일단 밀어두고 법당 곁에 딸려 있는 방 한 켠에 연탄 난로 피워놓고 공양 끓여먹으면서 사분 정근기도를 하고 영주시내를 돌며 관음정진을 했습니다.
신도회를 만들고 청년회, 학생회도 만들고, 또 초파일에는 극장을 빌려서 법요식을 했지요. 밴드를 불러서 시가 행진을 하는 등 초파일을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 분위기를 만들자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 이후로 점차 비구니 대처니 하는 갈등도 없어졌지요. 다 기도정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장애를 기도의 힘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로 헤쳐나가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요. 보통 기도를 타력신앙이라고 말하는데 실로는 타력이 아닙니다.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일념으로 하면 자기안에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일념은 자기 자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불성을 완전히 깨치면 불자들의 근본목적인 부처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불자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기도든 참선이든 수행을 하면 설사 힘든 일도 힘들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을 부딪쳐도 그 난관을 헤쳐나갈 힘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원력을 세워 일념으로 하면 뜻대로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저희 불광에서 펴낸 '친구여, 우리 붓다가 되자(김호철 지음)'라는 책 내용이 떠오릅니다. 그 내용 가운데 스님께서 지은이의 의문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면 길을 열어주시면, 심지어 여러 선지식들을 참배케 하여 지도를 받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가 약간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호철 불자 스스로 찾은 것입니다. 자신이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른 것처럼 수행도 포교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가자이건 출가자이건 성불을 하기로 작심하고 원력을 세워 정진해야 합니다. 자잘한 세상의 작은 욕심은 버리고 큰 욕심, 큰 서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하는 불자들이 많을 때 한국불교의 앞날은 맑아지고 아울러 이 나라가 바로 세워집니다."

출가 인연 이야기가 궁금했었는데 그 말씀 속에 다 들어 있는 듯합니다.
"내가 출가할 당시는 자유당 시절이었는데,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첨예했습니다. 혼탁한 사회현상을 보면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평생 후회하지 않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한참을 고민하다 전강스님을 뵙고 그 자리에서 발심, 출가를 했지요."

은사스님(전강스님)을 한동안 시봉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지요?
"은사스님과 금오스님께서 싸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월산 스님 제자중에 저희 은사님께 계를 받은 법성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하루는 법성스님이 금오스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답니다.
금오스님께서 '전강이 계를 주었다구, 전강이 파계승을 계 설할 자격이 있느냐?'하고 말씀 하셨고, 법성스님은 은사스님께 그 얘기를 전하자, '금오, 요새 잘 지내는가. 중앙종회에서 율사시험을 보는데 사진이 한 장 있어야 한다네. 자네는 파계승 아닌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주시며 대중방에 가서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편지를 읽은 금오 스님 이하 월탄스님, 탄성스님, 월만스님이 흥복사에 왔지요. '내가 파계한 것 봤느냐'고 다그치는 금오스님과 '못댄다'는 은사스님, '못 대면 너는 예사날에 사람 죽인 놈 아니냐'는 금오스님 말씀에 '너 같은 놈 많이 죽이고 다녔다'고 하시는 은사스님께 '입만 살아가지고 입방아를 찧는다'며 껄걸 웃으시던 두분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두 분의 허심탄회하고 활발발한 선담이 그리워지는군요.
우리 은사스님은 만공 스님으로부터 한국 조사선의 77대 법맥이라고 인가받으신 대선사로서 그 지견과 정진력은 아무도 못 따라올 정도였지요. 김제 흥복사 선원에서 한 철 날 때였는데 그때 선방 입승을 보셨던 덕현스님이 은사스님께 인가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가라는 것이 예쁘다고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라고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진리를 깨쳐야, 법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당시 세수가 66세이셨던 은사스님께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지 여름 석달 동안 저녁에 딱 두 시간씩만 주무시면서 용맹정진을 시키고, 낮에는 밭에 가서 일을 시키시는 겁니다. 당신도 대중과 함께 하시면서 무섭게 길들이셨습니다.
그렇게 백일 동안 죽을 힘을 내서 정진했지만 그때 그토록 인가를 받고 싶어했던 덕현스님은 인가를 받지 못 했습니다. 인가를 받고자 하는 그 마음이 집착이 되면 결국 본말이 전도되기 때문에 마음공부는 진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집착을 버려야 진실로 마음을 허허롭게 비우고 용맹정진해야 자성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은사스님의 선맥을 잇기보다 여러 법회의 지도법사를 하시면서 주로 포교에 힘쓰셨고 특히 신도수련을 철저하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영주포교당과의 인연으로 신도들에게 바른 불교관을 심어 주는 것이 제 화두가 되었습니다. 기복불교라고 헐뜯는 이가 종종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사찰을 수호하고 스님네들을 공양해온 분들은 신도님들입니다. 불교계의 공로자인 그분들의 기복에만 머물게 지도해온 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신도들은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수련에 관심을 갖고 프로그램을 직접 고안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좋은 것은 역시 전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절에서 스님네들이 하는 수행을 2박3일이나 3박4일동안 잡약시켜서 체험케 했지요. 새벽 3시 기상, 4시 예불, 5시 좌선, 6시 청소, 7시 공양, 8시 교리공부, 11시 헌공, 12시 공양, 1시 청소 등 사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하는데 다만 그 의미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예를들면 청소에 대해서도 청소의 다섯가지 공덕을 얘기해주면서 청소가 곧 수행임을 일깨워 주면 다들 기쁘게 청소에 임했습니다. 나 자신도 신도들과 똑같이 2박3일 동안 수련을 했지요. 그렇게 수련을 하고 나면 신심이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매사 생활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불자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신도들 외에도 경찰대학, 세무대학, 사관학교 생도, 교사, 대학생들을 직접 지도해 주시는 한편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법은 출가한 스님네나 재가불자나 모두가 함께 이루어야 할 불사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누구든 먼저 안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제가불자를 먼저 이끌어서 그분들로 하여금 불법을 전하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청소년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분은 바로 학교 선생님들입니다. 그리고 죄짓고 경찰서에 들어온 이를 교화시키는 데 최일선에 서신 분들은 경찰관입니다. 그렇듯 각계각충에서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모범을 보일 때 사회가 자연히 맑아 지리라고 봅니다."

용주사에 부모은중경탑을 세우기도 했고, 법회를 통해 은혜사상을 간절히 전파하시는 뜻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65년도 대불련에서 펴낸 팔만대장경을 여러번 정독했는데 팔만대장경 전편에 흐르고 있는 거르침은 구구절절이 자비로운 보살의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스님들에게도 중 되려고 도인 되려고 하지말고, 사람되고 보살되라고 합니다. 그 보살마음, 보살도를 행하는 불자의 첫걸음이 바로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불교의 네가지 은혜(불법승 삼보의 은혜, 부모의은혜, 국가의 은혜, 동포의 은혜)를 철저히 아는 사람은 절대로 나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삼보를 비방할 수도 없고, 불효할 수도 없고, 국가에 해될 일을 할 수도 없고, 남을 못살게 굴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문제가 많은 것이 다 이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불효하지 않는데 노인문제며 청소면 문제가 왜 생길 것이며, 국가의 은혜를 아는데 어떻게 어떻게 국토를 오염시킬 것이며 사리사욕으로 국가의 경제를 흔들 수 있겠습니까. 동포의 은혜를 아는데 어찌 노사간 계층간 갈등이 첨예해 질 수 있겠습니까.
현재 우리 교육이 기술자 만드는데 급급하고 서양인들의 폐습을 뒤뒤쫓아 가는 듯한 양상이라 큰 문제입니다. 은혜알고,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중한 인연법 아는 착한 사람 만들기가 교육의 지상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스님, 끝으로 좌우명이랄까, 생활의 지표가 될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대로 완전함, 내 인생의 모든 일이 나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사랑 받는 사람, 나는 보살입니다.'라는 암시문과 건강가훈 다섯가지
(1.깨끗한 공기, 일광, 생수 밑에 산다.
2.본성을 해롭게 하는 직업은 버린다.
3.시간과 돈은 일의 가치 순위로 쓴다.
4.음식은 합리적인 오행식으로 한다.
5.취미생활은 고적답사가 제일이다.)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이 시대는 건강하지 못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정신건강은 부처님 법만 제대로 알면 저절로 해결되겠지만 육체적인 건강은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소음과 매연과 분진 등의 불이익을 얻는 대로변에서는 떨어져서 주거하는게 좋습니다.
또 술 담배 아편을 파는 등 자신과 남을 타락하게 하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됩니다.우리 모두 성불을 목표로한 불자인데 자신의 본성을 모질게 하는 직업을 가지면 그 업이 점점 무거워져 불법과는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한편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에 두루 좋고, 조상님들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까지도 길이 그 향기가 남을 만한 취미로는 고적답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생활, 보살도를 실천하는 원융무애한 불자가 되시길 빕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고 포교를 하는 모든 불사가 다 자기와 이웃과 나아가 이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밝은 사회 곧 불국토로 일구리라는 서원과 사명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불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을 거울삼지 말고 사람을 거울 삼으라(불경어수 이경어인)"는 글귀가 적힌 액자에 스님의 맑은 얼굴이 포개져 있는 듯 싶었다.
스님을 닮아가는 불자들, 그 포교원역의 삶에 훈습되는 불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돌아왔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최나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