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약속 하나

빛의 샘, 기분 좋은 약속

2007-09-18     관리자


화사한 봄날 길가에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서러움에 눈물 흘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세상사에 마음먹은 대로 되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해도해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상처입고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피폐할 때면 어딘가에 더욱 의존하고 싶어진다던가. 나는 그 시기에 처음으로 자진해서 부처님께 찾아가에 되었다. 물론 집안의 영향이었겠지만...
한가지 소원만 빌라고 하시던 스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의 소원을 잡으려고 하니 욕심이 많아서인지 무엇을 소원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념이 많아 기도가 되질 않았다. 난 잡념을 없애려고 부처님의 상을 필사적으로 마음에 새기며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부처님상이 내 마음에 자리잡는 걸 느끼고 그 상을 다시 지우라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그 상을 애써서 지운 순간에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특히 내 번민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환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들 또한 나와의 인연으로 얼마나 가슴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했겠는가 하는 생각에... 비로소 나는 많은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부처님과 약속을 하면서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될테니제가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난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살고있는 삶이 억울하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세상의 전부인양 과장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하찮고 이기적인가를, 얼마나 사치스러운 고민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 31살의 여인을. 그 여인은 일찍 시잡을 와서 31살의 나이에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는 남편이 놀고 먹고 자신을 때리고 바람을 피워서 형제들로부터도 멸시를 받아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어 몇번의 자살을 시도했는데 너무나 똑똑하고 예민한 아이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 있단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마음을 잡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어 볼려고 왔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나와 나란히 앉아 기도를 하던 그 여인은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남편을 비롯해 언니, 친척,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저주하고 몸부림을 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죄가 무엇이 그렇게 많냐교.... 짐승 같은 그의 울부짖음이 나에게 고통스럽게 전해지며 그가 너무나 가엾고 안타까워 나는 더 이상의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간절하게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의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나에게 선뜻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소원을 포기할 것인가를 ...
그런데 나의 신기하게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다. '부처님, 제 소원은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니까 이 옆의 여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같은 소원입니다. 그러니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나는 그 여인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자꾸 그 여인에게로 쓰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를 기도를 했을까? 그 여인은 울면서 평정을 되찾았고 나도 기도를 마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인이 누군가 기도하는 동안 자기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았다며 혹시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 쑥스러웠지만 웃으며 고개르 끄덕였다. 그에게 혼자가 아니고 함께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기에...
나는 다음날 아주 밝은 마음으로 세상에 돌아 올 수 있었다. 내가 부처님과 한 약속을 부처님께서 항상 들어주실거란 예감을 느끼며...
하지만 오늘도 나는 부처님께 면목이 없다. 부처님과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최나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