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미래 -일심동체의 가상현실-

21세기 생활과학

2007-09-17     관리자

새로운 체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인체가 느낄 수 있는 오감(五感)의 인조공간 (cyberspace)을 제공하려는 이른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통신기 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가상현실은 잠수용 보안경처럼 생긴 큼직한 안경과, 센서가 달린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의 사진이 여러 과학매체에 선보이면서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왔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컴퓨터가 연출하는 세계로 우리를 완전히 몰입시키는 중무장한 잠수용 금속 헬멧을 쓴 수중탐험가들이 보는 멋진 광경만큼이나 색다 른 영상과 가상의 체험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가상현실과 관련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효과를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보다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은 자신이 실제로 머물고 있지 않은 장소에 마치 자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장소는 다분히 하나의 계산적인 허구 (fiction)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재창조되는 환경이 될 수도 있 다.
가상현실은 시각과 청각, 촉감 등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이를 즐기는 사람의 동작에 따라 즉시 반응하는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실제 상황에 있는 것같이 그 사람의 인지상태를 전이시켜 준다.
이러한 환상을 연출하는 기법들은 장소에 따라, 그리고 사용자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모의 비행 훈련 장치 속에 있는 조종사에게는 동체를 좌우로 기울 이거나 급선회하는 모의 비행을 위해 수입형 액츄에이터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자간 결합상태를 관찰하려는 분자생물학자들의 경우 원자 상호간에 미치는 힘의 작용을 모의 실험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제작된 미세 위치센서가 달린 장치가 요구된다.
분명히 수십 년 내에는 보다 빠르고 정교한 컴퓨팅 능력과 향상된 인터페이스 기술에 힘 입어 종래의 애플리케이션들은 극적인 기능향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얼굴에 쓰는 투박한 입체 화면 장치들은 합성된 영상을 실제의 세계로 옮길 수 있는 사용이 간편한 경량의 안경 들로 교체될 것이다.
그리고 착용하게 되어 있는 추적, 감지용 장치들은 복장 속에 내장되고, 멀리서 이동상태 와 몸짓을 감지하는 비디오 카메라와 기타 센서들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한 힘과 저항, 감 촉, 냄새 등의 감각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도 적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초기부터 이들 새로운 장비들은 기존의 애플리케이션들을 훨씬 빠르고도 안락하게 가동하 도록 해 줄 것이다. 원자로와 같은 위험한 환경에서는 다루기 힘든 복잡한 일들이 이미 수 행되고 있다.
항공 및 우주비행사들은 3차원의 그래픽을 창 밖의 상황과 결합시킨 영상은 물론,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실감을 느끼게 하는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가상현실 조종석에서 비행술 훈련을 하기에 이르고 있다.
또한 건축설계사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건축물에 실제처럼 보행하면서 생활하거나 작업을 할 때 환경적으로 어떠한 느낌을 받게 되는지 미리 살펴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전자오락실에 가보면 알 수 있듯이 전투임무를 위해 날아다니거나 공룡과 혈전을 벌일 수도 있으며, 인체의 내부로 들어가 여행을 할 수 있는 등 가상현실의 응용분야는 무 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컴퓨팅 능력이 향상되면서 가상현실은 개인적인 투자에서 국제 경제까지, 또 미생물로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복잡한 역학계 모델들을 표현 하는 데도 응용이 가능해진다.
지난 10년 간 진행된 과학적 시각화의 성공에서는 적절히 표현된 데이터를 보고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머지않아서는 다 수의 감각을 부여해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일심동체의 가상현실까지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사회적인 이용 역시 가상현실의 발전에 주요한 원동력이 될 수가 있다. 복수 사용자 차원의 이른바 MUD(Multi-Dimensions)라고 알려진 단순한 텍스트 기반의 온라인 환경에서 조차도 연구가들은 공간적인 감각이 공동체의 통신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의 윈도우즈, 아키텍처, 인테리어 설계 등 대화를 위한 특별한 장소를 마련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가상공간에 그러한 많은 것들을 옮겨놓는 일이 가능하다. 가상현실은 가상공간들이 보다 풍부하고 복잡한 감촉을 갖기 시작함에 따라 컴퓨팅의 기조를 바꾸는 주 요 바탕이 되고 있다.
물질세계에서는 마음을 육체와 분리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람들은 지금까지 컴퓨터를 마음과 육체를 연결하는 최종적인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일 반적으로 감각기관이 없으며, 특히 인간의 감각은 더더욱 갖고 있지 않다.
컴퓨터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우리 인간들과 극도로 제한된 대화만을 하도록 만들어진 통 신장치를 갖고 진화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와 달리 가상현실은 몸과 마음의 차이를 못 느끼게 해준다. 대신에 가상현실은 새로운 상황에 대단히 훌륭하게 대처하도록 발달된 우리의 신체적인 감각들을 동원하고 있다.
즉, 가상현실은 어떻게 우리의 감각이 작용하고 움직이는지, 임의의 특정 장소에 있을 때 그 느낌이 어떤지, 그리고 존재감각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과 같이 신체의 본질과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가상과 현실 양쪽에서 사물의 본질을 함께 표상(表象)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지적 반응과 육체적 반응간의 교차를 항상 생각해야 하는 예술가들 은, 육체와 분리된 지적인 것만을 겨냥하고 있는 컴퓨터라는 매체와 경쟁을 해야 하는 기술 자들보다도 가상현실의 발전에 보다 중추적인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예술가들은 가상현실의 풍부한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들의 예민하고도 복잡한 체험을 보다 능숙하게 표상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상현실용 도구와 기술도 이와 함께 발 전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상현실은 인간의 기술적인 표현으로 표면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 때문 에 빼앗긴 세계로 되돌아 갈 수 있게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단절된 두뇌로만 생각했던 것에서 우리의 모든 것으로까지 확대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과 기술 모두가 자연 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해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절대로 가상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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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희 님은 '79년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81년부터 정보통신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92년부터 '94년까지 월간『정보기술』 주간 및 편집인을 역임한 바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