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비교하는 마음

열린 상담실

2007-09-17     관리자

"선생님! 억울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 동안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까지 참으면서 돈을 모았는데, 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손해를 보고 말다니…."

이렇게 넋두리를 하는 중년부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그 옆에는 칠순이 넘은 친정어머니가 나이도 잊은 듯 오십이 다 된 딸을 걱정스러 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남편 몰래 돈놀이를 하다가 돈이라도 떼였나?' 하는 생각이 얼핏 머리 속에 떠오른다. 가 끔 그런 문제로 찾아오는 주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연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다음 과 같았다.

그 동안 알뜰살뜰하게 돈을 모아서 10년 동안이나 살던 정든 아파트를 팔고, 큰 평수의 아파트를 새로 계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 값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다른 사람이 오후에 계약을 하러오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집을 서둘러서 계 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서 다른 복덕방에 전화를 해보았더 니 약 5천만 원 정도를 비싸게 주고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큰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애써 괜찮다고 자위를 했는데, 자 신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신보다 더 크고 좋은 아파트를 장만한 것을 보고는 갑자기 억 울한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산 가격에서 몇 천만 원 만 더 보태면 자신도 그런 집을 살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을 못 자고 계속 그 생각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까 매사가 귀찮아지고 우울해져서 심지 어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어 할 수 없이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친정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 부인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하나 사오더라도 그냥 쓰는 법 이 없었다고 한다. 꼭 친구들이나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한번쯤은 가서 바꾸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고 한다.

심지어는 결혼식을 할 때에도 신랑을 잘못 골랐다고 한참이나 결혼을 망설이면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옛날에 사귀던 사람과 비교하면 남편감이 훨씬 뒤지는 것 같 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부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얼핏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흔히들 자신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의 이 면에는 남이 가진 것과 자신이 가진 것을 비교하는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숨어있는 경 우가 많은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다 나오신 분이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이분은 젊은 시절에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계에 계시면서 청운의 꿈을 품고 미 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벌여서 성공을 하였는데, 하필이면 세 들어 있던 건물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되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많았기 때문에 그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할 수 없이 파산선고를 받게 되었다.

미국사회에서는 파산선고를 받게 되면 일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 에 개인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2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나오 게 되었다.

오랜만에 돌아와 보니까 고국의 모습은 엄청나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옛 친구들 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재계나 정계의 거물들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이 친구들이 뜻을 모아서 직장도 알선해주고 임시거처도 장만해주어서 생활은 안 정이 되었지만. 자신의 처지와 친구들의 위치를 비교해보니까 억울한 생각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분의 경우도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만 없었다면 미국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안 정된 자신의 처지를 고맙게 생각했어야 할텐데, 그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자책감 이 앞섰던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가정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 거나 혹은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마음이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일체의 유위법(一切有爲法)은 꿈 같고 환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如夢幻泡影〕,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如露亦如電〕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如作如是觀〕."라고 설하시지 않았던가.
우리의 인생살이가 마치 한 편의 영화 속의 스크린을 보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과 같 다는 말씀이리라.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커튼을 젖히면 스크린에는 아무런 영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보철강의 부도사태 이후 어제까지만 해도 위세가 당당하던 은행장을 비롯한 고관대작들 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처음에 남들을 제치고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 들이 그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었을까? 그러나 잠깐의 세월 동안에 등을 돌리고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