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선(祖師禪)만이... / 이종린

2002-10-25     이종린

"조사선만이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유자재한 모습과 무한한 능력, 지혜, 복덕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지난 20 일 부산 해운 정사에서 열린 '국제무차선 대법회'에서 서옹 백양사 방장 스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신문에 실린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는 꽤 실망스런 마음입니다...

물론 조사선은 단숨에 진리를 꿰뚫어 보고 삼아승지겁을 뛰어 넘어 성불하는 방법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조사스님들이 그런 식의 말씀을 하셨기에 그것 또한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사선만이...'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씀의 이면에는 외람되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강한 아집, 법집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자기 인연입니다. 그랜드 캐년이 비록 웅장하고 알프스의 만년설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름 모를 초라한 포구의 바다 냄새와 단풍든 산하가 더욱 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이 곳이 내가 태어난 땅이요 내가 살아 온 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국인들은 냄새 난다고 다들 싫어하는 찌개와 김 서리는 뚝배기의 걸죽한 맛이 그 어떤 서양 음식보다 내 입에 맞는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내 인연' 입니다. 나에게 더 익숙하고 내게 더 정다운 모든 것들은, 내가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끼가 풀을 더 좋아하고 강아지가 고기를 더 좋아하는 것 또한 토끼와 강아지의 인연이 그러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도 마찬가지라, 아무리 뛰어난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내 인연과 맞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지를 못합니다. 저 분이 내 스승이 된 것은 저 분의 공부가 유독 다른 선지식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내가 저 분과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부모님들 제쳐 두고 내가 우리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부모, 자식의 인연을 지은 것입니다.(이런 이유로 불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완벽할 수 없는 부처님 가르침이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불경(?)스럽게 들리는가 봅니다. 즉 그 분들의 인연이 깨달음을 거부하기 때문에, 내게는 들리는 부처님 말씀이, 신을 통해서만 진리를 보는 그 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게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문화 환경, 살아가고 생각하는 개념이 다른 것입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쉽고 나에게는 이렇게 큰 법열을 주는 수행이 다른 분들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 수행법이 나에게 맞는 것이기에 그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갑돌이가 저렇게 화두 참구를 잘하고 더 크게 가르침을 얻는 것은 큰 분심으로 의심하고 끝장 내기(?)를 좋아하는 갑돌이 성격 때문이요, 갑순이가 그런 수행에 고개를 쩔레쩔레 흔드는 것은 갑순이는 그저 님을 사랑하듯 부처님을 사모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리고 고운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대장부 기개가 걸출한 갑돌이 보고 갑순이가 좋아하는 수행을 하라하면 도저히 못하고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듯, 갑순이 역시 그렇게 무섭게 달라 붙는 수행은 얻는 것도 없고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불교계에는 언제부터인지 내 스승이 제일이고 내 수행법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풍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스승 아닌 다른 선지식은 모두 엉터리(?)거나 법력이 떨어지는 분으로 폄하하고, 내 수행만이 가장 수승한 것으로 착각해 도대체 다른 분들의 수행은 인정해 주려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중생마다 근기가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른데, 이런 인연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내가 크게 얻은 바가 있다고 하여 내가 제일이고 남에게도 나와 똑같은 수행만을 요구한다면, 그리고 자신만이 가장 객관적이고 자신의 수행만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종교만이 영원한 삶이 있다는 일부 다른 종교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부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내 인연이요 사람마다 생명마다 인연이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나의 인연만이 가장 바람직하고 내 인연만이 진실이라는 생각을 떠나, 우리 모두가 성불하는 가르침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봅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아미타불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