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상(相)을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본래 마음을 깨닫는 게 근본종지입니다."

선지식 탐방 / 덕숭산 수덕사 응담(應潭) 스님

2007-09-17     관리자

법명은 덕수(德修), 응담(應潭)은 법호이다. 스님은 1914년 충남 서산군 운산면 고풍리에서 출생하여 열일곱 살에 수덕사로 출가하였다. 1933년 법천용음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42년 금오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정혜사 만공 스님·범어사 동산 스님·오대산 한암 스님을 비롯하여 전국 각처에서 참선 수행을 하였다. 서산군 대산면의 망일사 주지를 1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수덕사 서당(西堂)에서 주석 하시면서 사부대 중을 깨달음으로 이끌어주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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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과 아파트 숲, 수없이 많은 자동차들…가끔 도시에서 숨쉬고 산다는 게 신통하게 여겨 질 때가 있다. 그러다 도심을 떠나 조금이라도 한적한 시골에 이르면 가슴이 확 트인다.
산사를 찾아갈 때의 기분은 또 얼마나 상큼한가. 깊은 산중에서 수행하고 계신 선지식을 뵐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선지식의 그 청정한 수행의 물길이 우리들의 마음을 시공을 초월하여 맑혀주신다는 것을 어슴프레하게나마 알고 나서부터 탈속의 복마저 누린다.
덕숭산 수덕사에서 주석 중인 응담(84세) 큰스님. 덕숭산 호랑이요, 괴각으로 유명한 스님 은 따뜻한 분이었다. 얼핏 엄해 보이시는 그 모습은 큰 자비에서 우러난 것, 좋은 스승은 엄 하다고 했던가.
"수고스럽게 이 먼 데까지 오셨는데 잘못 오신 것 같습니다. 이 산골 중이 뭘 알겠습니까.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대웅전 참배하고 공양이나 들고 가십시오."라고 하시면서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는 스님은 오로지 '마음공부' 할 것을 강조하셨다. 이틀 동안 몇 차례를 들락 거리며 겨우겨우 채록한 것으로 스님의 살림살이를 엿본다는 것이 솔직히 힘겹고도 죄송스 러웠다.

스님 , 빗자루질을 일러주실 정도로 자상하시면서도 손톱만큼이라도 어그러진 꼴을 못 보시 고, '도(道)도 대신 닦아주겠느냐'고 호통치시며 평생 빨래며 바느질이며 손수 하신다고 들었 습니다만.
"일거수 일투족이 다 수행 아닌 게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고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일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남을 의존하다 보면 못된 습이 배어 못씁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편하고 싶은 마음, 게으른 마음으로 어떻게 도를 닦습니까? 자성자리 찾겠다고 출가한 이가 제 몸뚱이 하나 스스로 건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속가에서 살아야지요.
만생만사(萬生萬死), 만 번 죽고 만 번 태어나는, 세세생생 윤회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에 서 열이 나지 않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 만나는 것은 아주 희유한 일입니다. 이 생에 닦지 않으면 내생에 또 그 업 따라 육도윤회를 해야 합니다.
모쪼록 공부하세요. 공부도 한참 때 해야지 만시지탄으로 늙어서 깨닫고자 하면 몸뚱이가 말을 안 듣습니다. 수레는 깨지면 다니지 못하고 사람은 늙으면 닦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죽고 사는 것을 큰일로 알고 위법망구(爲法忘軀)하여 이 놈 하나를 잡아들여야 합 니다. 촌음을 아껴서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라는 것이 쉽사리 되는 것은 아니니까 자꾸 자꾸 해야 합니다."

스님, 그놈 하나를 잡아들이라고 하셨는데 그놈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받아쓰고 있는데 그 글씨를 어떤 놈이 쓰는지 아십니까?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입이 말하는 것입니까? 그놈이 없으면 말도 못하고 글씨도 못씁니다. 그놈은 마음이라고도 하고 반야라고도 하고 불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 법입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실로 학문적으로나 숫자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다만 알지 못하는 그놈을 알아야 하고 그놈을 알면 한 걸음도 옮길 것 없이 성불해버립니다. 그 놈이 뭐냐하고 알라고 묻는 그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의심하고 궁구해서 그 도리를 알면 그대로 열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놈만 아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열반으로 들 어옵니다. 이 세상의 풀, 꽃, 바람, 구름, 돌 등 천지만물까지 열반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불법에 대해 좀더 소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금강경 사구게 중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相)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상에서 상 아닌 그것을 보아야 여래를 보느니라.'라는 말씀 속의 그 것, 또한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면서 우레처럼 터뜨리셨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탄생게를 눈 물겹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다고 흔히 풀이되는 그 말씀 속에는 부처님뿐 아니 라 사람 사람마다 천상 천하에 다시없는 유아독존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불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종(宗)으로 삼고 오직 그 자리하나를 떠나지 말아야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른 것은 일체 눈 돌리지 않았지요. 바른 길을 찾았으면 그 길로만 계속 줄기차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깨닫는 것 자체가 불교라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지요. 가만히 내 마음 관(觀)하고 깨닫는 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마음을 깨닫지 않으 면 실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날만날 팔만사천대장경을 앞으로 외우고 거 꾸로 외워도 깨닫지 않으면 다 도로아미타불인 것입니다. 불생불멸한 마음자리, 영원히 밝은 그 자리를 깨달아 생사해탈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십 년 동안 난행고행을 하시면서 일러주신 것이 그 진성(眞性) 자리를 알라 는 것입니다. 무릇 상을 다 떨쳐버리고 참으로 마음 부처가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도 (邪道)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리(自利)만 하고 이타(利他)는 언제 합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건 모르는 말씀 입니다. 마음을 깨달아야 진정한 의미의 자비가 생깁니다. 참자비는 참지혜에서 나오는 것입 니다. 마음을 깨치면 자비롭지 말라고 해도 자비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 닌 연기의 이치를 아는데 어찌 남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중생인지라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생이라는 말 그렇게 함부로 쓰지 마세요. 범성(凡聖)이 동원(同源)이라, 범부와 성인이 하 나라고 하였습니다. 범부와 성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천만 억 종이 있지 만 그 근원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 본래 부처자리를 갖고 있으니 수행해서 그 자리를 보라고 역설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 다.
우리 사바세계가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의 오탁악세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 지만 마음자리는 오탁악세에서 하나도 물든 것이 없습니다. 연꽃이 높고 마른 땅에서 피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피는 것처럼 오히려 번뇌망상이 넘나드는 오탁악세가 부처 되기 쉬운 땅입니다."

스님, 출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출가하려고 하던 차에 부모님께서 장가보내려고 해서 부랴부랴 열일곱 살 때 집을 나왔습 니다.
서당에 다녀왔는데 친한 동무가 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습니다. 왜 그리도 허 망하던지…. '남의 목숨 잡는다고 설치더니 저렇게 일찍 가는구나. 그 과보로구나'하는 생각 이 들면서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친구가 죽은 뒤부터는 공부고 뭐고 세상사가 다 시들해졌 습니다. 그럭저럭 살다가 죽을 세상인 것을 생각하니 참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다 니는 중인데 장가를 가라하니, 속절없이 꽉 붙들어 매이는 게 아닌가 싶어 출가하게 된 것 입니다.
죽지 않고 사는 법이 있는가 여기 저기 수소문하러 다니다가 신선공부를 했는데 허무하고 시답잖았습니다. 그래 절에 가서 어느 노장님께 여쭈었더니,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 듣고 귀가 번쩍 뜨여 '어떻게 공부하면 됩니까'하 고 여쭈니 '수덕사에 만공이라는 도인 스님이 계시는데 그 스님이 죽지 않는 도리를 확실하 게 알려주실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만공 스님을 뵈러 수덕사에 왔는데 만공 스님의 제자인 용음 스님을 먼저 뵙게 되었습니 다. 급한 마음에 용음 스님께 그 동안의 고민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중이 되어 견성하면 된 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왜 그리도 믿음직스러웠던지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겠다고 했지 요."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된 생사문제, 그를 해결하고자 한 초발심 때의 간절한 마음, 수행의지 가 남달랐을 듯 싶습니다.
"수덕사에서 공양주 5년, 채공 5년을 하고 나니 선원에 가서 참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참선을 제대로 해서 마음이라는 놈을 잡으려면 먼저 3자재를 얻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용을 썼지요.
첫째 식자재(食自在), 하루에 한 번도 먹고 이틀에 한 번도 먹고 열흘에 한 번도 먹는 등 먹는 것에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며칠을 굶어도 보고, 생식만 해보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입이라는 놈이 간사해서 힘들었는데 하다보니 되더군요.
둘째 식자재(息自在), 호흡을 자재로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코끝에 가벼운 솜뭉치를 붙 이고 숨을 조절했지요. 숨을 확 들이쉬면 솜뭉치가 콧구멍으로 쑥 들어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가만히 내놓는 연습을 했지요. 그렇게 해서 식자 재에 능하게 되면 한 시간에 숨을 한 번 쉴 수도 있고 두 번 쉴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수자재(睡自在), 공부하는 데 수면만큼 큰 장애도 없습니다. 몇날 며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밤에도 잠 안 자고 성성하게 눈뜨고 정진할 만큼 의 경지를 얻기는 했는데 그 또한 집착해서는 안 되지요. 3자재에 조금 능하게 되자 자꾸 그 맛에 빠져들어 궁핍해서 못쓰겠더군요. 그래 그냥 다 놓아버렸습니다.
그 후도 방한암 스님회상에 가서 한 철 나고, 남한 일대는 물론이고 북한 전역에 이르기 까지 다 다녔습니다. 오대산, 묘향산, 백두산까지 올라 다니면서 그저 앉고 싶은 자리가 있 으면 그 자리에 틀어 앉아 참선을 했습니다. 그리고 만공 스님, 한암 스님, 전라도 백양사의 장석상 스님 등 당시에 내로라 하는 도인 스님들을 다 찾아뵙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여 쭈었습니다.
대략 하시는 말씀이 옷 입을 적에 옷 입는 데만 정신 팔지 말고 옷을 입는 놈이 무엇인가 참구하고, 밭을 맬 때도 풀을 뽑을 때도 풀을 뽑는 그놈이 무엇인가 참구하라는 것이었습니 다.
역시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그놈 하나 관하는 것임을 깨닫고 일구월심 그놈만 찾았지요. 행주좌와 어묵동정, 행하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서거나 오매불매 그놈을 화두 삼아 참선 수 행했습니다. 그런데 참선이라는 것도 많이 해보니까 터득이 나서 그런지 싫증이 나서 그런 지 이제 어지간히 됐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신체를 조복받고 자유자재한 마음을 얻은 뒤부터는 잡을 줄도 알고 놓을 줄도 알게 되었 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돌아다닐 것도 없고, 남의 말들을 들을 것도 없고, 물어볼 것도 없고, 딴 생각 가질 것도 없고, 여기저기 속을 것도 없이 지금까지 이곳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스님, 바야흐로 세기말인데, 현대인들을 위해 한 말씀 더 해주십시오.
"내 말은 그만두고, 부처님께서 '어떤 것이 장사냐? 누가 부자냐? 수명이 얼마나 되느냐?'하 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힘으로 산봉우리를 뽑을 만한 이를 장사라 생각한다'는 제자 의 대답에, '아니다. 인욕이 장사니라. 안이비설신의 육근에서 한 가지만 참아도 천하장사요, 인욕을 할 수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지요. 또 '동서남북에 칠보가 구족하고 노복 전답이 사해에 꽉 찬 이가 부자'라는 말에 '오직 족한 줄을 알아야 부자니라. 족한 줄을 모 르면 금의옥식에 파묻힌다 해도 부자라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명은 얼마나 되는가? 일생 사는 것이 오로지 호흡지간,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이 호흡지간에 있을진대 무얼 해야 가장 보람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눈 한 번 깜짝할 순간에도 마음자리를 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체가 다 마음이 지은 것입니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마음, 제 안에 부처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수행입니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수행해서 본래 간직한 마음을 보면 죽음도 두 렵지 않고 활활자재롭게 대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 사는 게 어디 진짜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산업 재해로 죽은 사람, 심지어 카드 빚을 못 갚고, 장가를 못 가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 각 국에 있는 핵무기가 터뜨려지면 한순간에 멸망할 수도 있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부처님 법 하나를 알면, 내 마음속에 본래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생사를 초월하여 그대로 극락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과 바깥경계에 젖어 울고 웃고 사는 우리네의 삶이 안타까우신 듯 시 종일관 오욕락(五慾樂)에 속지말고 맑고 밝은 본래 마음을 보라고 당부하시는 응담(應潭) 스님, 그 맑은 못에 응하여 모두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불국토에서 사는 날을 발원하며 산 문을 나섰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