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답변을 위하여

빛의 샘 / 나의 길

2007-09-17     관리자

만화를 업으로 해서 20년 이상 살아오다 보니 그동안 늘은 푼수라고는 좋은 말로는 픽션이 고, 속된 표현으로는 거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나마 짜증스러운 일상에서 만화적 발상으 로 가끔씩 현실일탈을 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작금에는 현실이 외려 더 만화적이다보니 남다른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네 고단한 인간사에 대한 고찰이야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제 만점(滿點)으로 볼라치면 사람의 일생이란 어느 정도 언어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칠성판 베 고 무덤에 들어가 눕기까지 끝없는 질문과 답변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불가나 선가에서는 묵언으로도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하겠지만, 최소한의 객관적 의사소통의 시점은 언어의 성립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 경우 유년시절로부터 시작해 학창시절 지겹도록 따라붙던 '공부했냐? 에 이어 군 생활 에서는 '너 고향이 어디야?' '이 새끼 고문관 아냐?' 등의 원색적인 질문에 시달렸고, 여자를 알게 된 후론 '직업이나 취향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고 결혼 후엔 '자기, 나 사랑해?' 혹은 ' 이제 내가 싫어진 거지?' 등의 질문으로 이어졌고, 사회생활로부터는 '이것도 기획이라고 해 서 올렸냐?' '사람이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김형,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등 강요에 가 까운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늘 질문 쪽이 아니라 답변 쪽에 있는 것으로 생 각되어 집니다. 대개의 경우 합당한 답변을 한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진실성 여부는 답 변자 자신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검증을 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악의에 찬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평범한 사람의 사적인 답변 이 아닌, 공직자나 또는 사회적 공인들이 진실성이 요구되는 질문에 거짓 답변으로 일관하 고 있다면 이미 그 사회는 기만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 술 더 떠, 다수의 공직자들이 질문도 받기 이전에 거짓답변을 꾸미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보면, 그 구성원의 일원인 각 개체들도 이미 그런 허위 의식에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 직업도 직업이려니와 그동안 해 온 작업이라는 것이 주로 SF와 기(氣)에 관한 소재이 다 보니 SF는 무엇이며 기의 실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들을 심심치 않게 받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눈도 깜짝하지 않고, SF란 '대 우주적 인간존재 자세에 관한 정의'라든가, '기란 의식확장이 요구되는 비현실적 세계'라는 등의 제 자신도 검증할 수 없는 엄청난 대답을 앵 무새처럼 해대는 뻔뻔스러움을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제가 할 일이란, 어린 자식들과 어줍잖은 제 강의를 듣고 질문을 던질 젊은 후학들에게 덜 부끄러운 대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허구로부터 이탈된 좀더 진솔한 사람 사 는 얘기 거리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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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님은 '47년 서울 출생으로 '80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 주최 제1회 국제만화대상전 입 선, '95년 우리만화협의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겨레 문화센터 출판 만화학교 강사로 있다. 저서로는 『헬로 팝!』,『황색 탄환』, 『시간의 역습』, 『氣는 과학이다』외 다수가 있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