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十牛圖] 코끼리象를 길들이는 9가지 마음의 머무름 단계

티벳불교의 목상도

2024-02-22     불광미디어
쎌까르 사원의 목상도 벽화, 사진 차상엽
코팬 사원의 목상도 벽화, 사진 차상엽

어릴 적 사찰 앞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유독 대웅전 외부를 감싸고 있던 빛바랜 벽화인 ‘목우도(牧牛圖)’가 눈앞에 아른거리곤 했다. 그 벽화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단지 소 치던 동자승의 한가한 모습에 매료돼 간혹 내 자신이 벽화의 주인공인 양 착각하기도 하면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러한 꼬맹이 적 기억이 내 뇌리에 똬리를 틀어서 인지는 몰라도, 인도-티벳불교의 명상 수행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오래된 고전문헌에서 언급하는 실제 명상 수행의 과정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뿐만 아니라 벽화 등의 그림으로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는 도상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운 좋게도 몇 차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인도, 네팔, 티벳 본토 그리고 몽골 등지의 오래된 사원에 현장 답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시선을 끌었던 것 중의 하나가 다채로운 색상으로 이루어진 옛 사찰의 도상들이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선불교의 ‘목우도’ 혹은 ‘십우도(十牛圖)’와 유사한 티벳 사원의 ‘목상도’는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목상도(牧象圖)란 ‘마음을 대변하는 코끼리(상象)를 점진적으로 길들이는(목牧) 장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도圖)’이라는 뜻이다. ‘목상도’는 중국과 한국 등의 ‘목우도’라는 표현을 빗댄 것에 불과하고, 티벳어로는 ‘시내뻬리(Zhi gnas dpe ris)’라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시내’는 집중 명상(지止, 사마타śamatha), ‘뻬리’는 그림이라는 의미다. 즉 ‘집중 명상과 관련한 점진적 명상 수행의 과정을 묘사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집중 명상이란 ‘통찰 명상(관觀, 위빠사나vipaśyanā)’과 더불어 불교 명상 수행의 대표적 명상 방법이며, ‘마음이 대상에 집중함(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반해 ‘통찰 명상’이란 집중된 마음을 바탕으로 ‘자아(인人)’와 ‘존재나 현상(법法)’에 대한 집착을 해체해서, ‘에고를 가진 자아의 해체(무아無我)’와 ‘실체 없음(공空)’이라는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진리를 꿰뚫는 명상법을 말한다. 

불교 명상 수행에서는 최종적으로 ‘집중 명상’과 ‘통찰 명상’의 어느 한쪽만을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양자의 균형을 맞추어서 한 쌍으로 연결해서 작용한다는 ‘지관쌍운(止觀雙運)’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도와 티벳불교의 주류 명상 수행법에서는 ‘집중 명상’과 ‘통찰 명상’이라는 명상 방법의 2가지 과정이 엄밀히 구별된다. 먼저 ‘집중 명상’으로 마음을 ‘숨’이나 ‘붓다의 신체’ 등 하나의 특별한 명상 대상에 집중하도록 한 후, 어느 정도의 집중 상태에 도달하고 나서 ‘통찰 명상’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목상도에서는 ‘9가지 마음의 머무름(구종심주九種心住)’이라고 일컬어지는 ‘집중 명상’의 단계를 중심으로 그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이 그림을 ‘시내뻬리’, 즉 ‘집중 명상도(圖)’라고 후대에 부르게 된다. 

‘점오선(漸悟禪)’을 대변하는 중국 보명(普明, 곽암선사보다 약간 이른 시기)선사의 ‘목우도’는 마음을 정화하는 각 단계가 독립적인 한 장면, 한 장면으로 구성되며, 최종 10장면으로 이루어진다. 보명의 목우도와 흡사한 티벳 ‘목상도’에서는 탕카(thang ka, 괘불탱과 비슷함)와 같이 명상 수행의 단계 전체가 한 장면만으로 취합된다. 이러한 점이 보명선사의 목우도 혹은 십우도와 차이가 나는 외형적 특징이다.

목상도 삽화 중 오른쪽 하단에 사원이 보이는데, 이 건물이 명상 수행의 무대다. 사원이 의미하는 것은 산란한 곳으로부터 벗어나, 분리(分離)된 고요한 장소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환경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사원 앞에 한 승려가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 승려가 바로 명상 수행의 주인공인 불교 요가수행자다. 그는 오른손에 갈고리를 왼손에 밧줄을 지니고 있으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뒤를 따라 쫓는다. 코끼리는 우리의 마음(심心)을 상징하며, 코끼리의 검은 색은 ‘마음의 까부라짐(혼침昏沈)’을 나타낸다.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한 밧줄은 수행자가 스승을 통해서 선택한 특별한 하나의 명상 대상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것(염念)을, 갈고리는 알아차림(정지正知)을 의미한다. 코끼리 조련사가 야생 코끼리를 밧줄과 갈고리로 차츰차츰 조련하듯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수행자는 들숨과 날숨으로 이루어진 호흡이나 붓다의 신체 혹은 만트라(mantra) 등 특별한 하나의 명상 대상이나 주제에 마음을 고정시켜서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이때 기억은 집중과 연결된다. 이 ‘기억’이 바로 ‘사띠(sati, 산스크리트어 스므리띠smṛti)’의 의미다. 호흡이라는 명상 대상을 기억하고 그 호흡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하고자 한다면, 그 호흡이라는 대상을 놓치고 있는지, 마음이 들뜨거나 까부라진 것이 아닌지 알아차려야 한다. 명상 대상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그 명상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사띠’로 대변되는 ‘밧줄’이 의미하는 것이고, ‘갈고리’는 하나의 명상 대상을 놓치고 있는지 아닌지, 외부로 향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작용’을 상징한다.

삽화 속 코끼리 앞에 원숭이가 달려가고 있는데, 원숭이는 마음의 ‘산란(散亂)’을 상징하며 원숭이의 검은 색은 ‘들뜸(도거掉擧)’을 의미한다. 숨에 집중해서 고요하게 머무르고자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의 마음은 ‘미친 원숭이(crazy monkey)’처럼 후회막심한 과거의 기억으로 혹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끊임이 없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이러한 원숭이와 같이 날뛰는 마음과 맞대결해서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명상 수행의 중요한 토대다. 호흡 등의 명상 대상에 마음을 묶은 후, 마음이 떠돌아다니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그대로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하지 못한다.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원숭이처럼 미쳐 날뛰고 있을까, 라며 스스로를 폄훼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이러한 폄훼, 자신감의 결여 그리고 낙담 등의 마음 작용은 현재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그림 속에 길(도道)이 굽이굽이 위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서서히 명상 수행의 단계가 함양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명상 수행의 점진적 향상은 ‘9가지 마음의 머무름’이라는 단계로 이루어지며, 삽화 속 ①~⑨의 숫자로 표시한 9인의 수행자에 상응한다. 코끼리의 검은 색은 명상 수행의 점진적 진전과 함께 서서히 제거되고, 최후에는 하얀색이 된다. 

삽화의 설명에 의하면, 길의 구부림이 6각인데, 각각 6가지 힘에 대응한다. 6가지 힘이란 [1]청문(聽聞)의 힘, [2]사유의 힘, [3]특별한 하나의 명상 대상에 대한 기억(念)의 힘, [4]알아차림(正知)의 힘, [5]정진의 힘, [6]축적된 익숙함(관습串習)의 힘이다. 삽화 속에는 [1]~[6]의 번호로 표시된다. 

먼저 [1]청문의 힘을 통해 ①외부 대상이 아닌 숨이나 붓다의 신체 등 특별한 하나의 명상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한다. 이것이 9가지 마음의 머무름 중 첫 번째인 ‘마음을 안으로 머물게 함(내주內住)’이다. 삽화 중 ③을 보면, 왼쪽에 코끼리 등에 올라탄 작은 토끼를 볼 수 있다. 이 토끼는 마음이 아주 미세하게 침몰(沈沒)한 상태를 상징한다. 까부라짐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명상 수행 중에 나타나는 침몰의 상태이다. 너무나 미세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데, 이때 침몰임을 수행자가 직접 알아차린다면 붓다의 신체를 관상(觀想)하거나 광명(光明)을 명상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고양시켜야 한다. 명상 대상을 놓치지 않고 기억(念)해서 수행을 점진적으로 진행할 때, 까부라짐(昏沈)과 들뜸(掉擧), 침몰이라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正知)이 수행자에게 중요한 덕목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최초로 길이 구부러지기 직전에 화염(火焰)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화염은 마음을 제어하기 위한 기억과 알아차림과 관련한 정진의 힘을 일으키는 것을 나타낸다. 이 화염은 7번째 단계인 마음의 머무름(⑦)에 이르기 이전까지 나타나며, 그 크기로 정진력의 크기를 알 수 있다. 결국 명상 수행의 시작점에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화염이 크게 두드러지지만, 명상 수행이 진척됨에 따라 화염은 작게 묘사된다. 

7번째 단계 이후부터는 화염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별도의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정진은 없지만 이전의 정진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명상 수행이 전개돼 그 명상 수행의 흐름에 올라타서 나아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⑨9번째 명상 수행의 단계인 ‘평정에 머무름(등지等持)’이라는 상태를 지나 마음과 신체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잠재적 경향성인 습기(習氣)를 제거한 경안(輕安, 수행자가 명상 대상에 질리지 않고 유연하게 명상 대상을 부리는 것)을 획득해서 ‘집중 명상’이 완성되는데, 삽화 맨 오른쪽 상단에 다시 화염이 분출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단계는 ‘집중 명상’을 토대로 한 ‘통찰 명상’의 진행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단계에 이르러서는 다시 강한 기억과 알아차림이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마음과 신체의 경안을 획득하면 집중 명상이 완성되는데, 이러한 집중 명상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수행자는 다시금 집중 명상을 토대로 기억과 알아차림을 구비한 통찰 명상으로 나아가서 자아와 현상 혹은 존재가 실체가 없다는 ‘공성(空性)’을 궁극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티벳 목상도에서는 집중 명상과 통찰 명상이 한 쌍으로 결합해서 일어나 작용하는 ‘지관쌍운’을 최종적 목표로 설정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목상도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했다. 지면상의 한계로 9가지 마음의 머무름, 6가지 힘, 4가지 주의집중 등 도상에서 설명하고 있는 세부적인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설명할 수 없어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는데, 추후 또 다른 인연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티벳 목상도를 읽고 다시 한번 그림과 삽화를 살피면서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의 명상 수행 과정에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억(念)의 밧줄과 알아차림(正知)의 갈고리를 우리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미세한 침몰의 상태를 명상 상태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혹시라도 티벳 목상도와 불교의 요가 명상 수행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아래의 필자 논문이 유용할 것이다.

Cha, Sangyeob. 2013. “The Yogācārabhūmi Meditation Doctrine of the ‘Nine Stages of Mental Abiding’ in East and Central Asian Buddhism.” In The Foundation for Yoga Practitioners. Harvard Oriental Series vol.75, Harvard University Press.

Cha, Sangyeob. 2017. “The Role and Significance of the Tibetan Elephant-Taming Illustrations.” In Śrāvakabhūmi and Buddhist Manuscripts. Tokyo, Nombre.

 

차상엽
경북대 인문학술원 동서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조교수를 역임했다. 『티벳문화입문』, 『티벳밀교』, 『옥 로댄쎄랍의 보성론요의 여래장품』, 『라싸 종교회의』 등 다수의 번역 및 역주서를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