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十牛圖]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축생

2024-02-22     정운 스님

경전 속 코끼리·말·원숭이

초기불교 경전과 대승불교 경전에는 코끼리·사자·말·소·원숭이 등 다양한 축생들이 등장한다. 경전에 축생이 등장하는 이유를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축생의 특징과 현상을 수행에 비유해 연결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축생의 행동이나 모습을 사람들의 마음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전후자 모두 수행자들이 정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설이라고 볼 수 있다. 

『법구경』을 중심으로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축생들을 살펴보자.    

첫째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축생으로 코끼리를 꼽을 수 있다. 코끼리는 충직한 모습이나 정진으로 비유하는 게 보편적이다. 

먼저 정진으로 비유한 코끼리의 경우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늪에 빠졌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구조하려고 해도 구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이 코끼리가 전쟁터에서 행진했던 경험이 있는 것을 알고, 지혜를 발휘해 군악대의 음악을 연주해줬다. 그러자 코끼리가 웅장한 군악 소리를 듣고, 스스로 늪에서 빠져나왔다.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코끼리가 스스로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그대들도 번뇌의 늪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327]” 

다음은 코끼리의 충직한 모습이다. 코삼비 지역 비구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분쟁을 벌였다. 부처님께서 싸움을 말리다가 지쳐 숲속에 홀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시봉했던 동물이 코끼리다. 이후 부처님께서 코끼리와 헤어질 때, “진실되고, 지혜로우며 덕이 높은 도반을 만난다면 그와 함께 즐겁게 살며 수행을 잘해서 삶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할 정도로 코끼리를 향한 애틋한 말씀을 하셨다. 

또한 『법구경』에는 코끼리를 주제로 하는 ‘코끼리품’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홀로 고고하게 정진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데서 기인해 대승불교에서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타고 있는 동물이 바로 코끼리다.  

둘째는 말(馬)인데, 말은 정진과 게으름, 분노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두 비구가 숲속에서 함께 수행했다. 한 비구는 열심히 정진하는데, 다른 비구는 게으름을 피웠다. 결제가 끝나고, 부처님께서 꾸짖으며 “게으른 비구는 둔마(鈍馬)와 같고, 부지런한 비구는 준마(駿馬)와 같다[#29]”고 말씀하셨다. 또한 말이 달리는 모습을 사람의 분노나 악한 성품에 비유해 이를 제어해야 하는 것(마음)에 비유했다. 

“어리석은 이는 말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직 고삐만 잡고 있다[#222].” 

“조련사가 말을 잘 다루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잘 다루어야 한다[#380].”  

셋째는 원숭이인데, 마음의 불안이나 번뇌에 비유한다. 원숭이는 『법구경』에 등장하지 않는데, 초기불교 경전인 『불유교경』에 “마음이 고요하지 못해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잠시도 머물지 않는 산란한 원숭이와 같다”고 했다. 또한 중국 선사들의 어록에도 잠시도 안주하지 못하는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하고 있다.  

 

불교 경전에 나타난 소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소’의 비유를 크게 세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첫째, 『대반열반경』에는 소의 우유를 ‘최상의 진리’나 ‘최상승의 경전’으로 비유한다. 소에서 나온 우유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제호(醍醐)’라고 한다. 이 제호를 불교 최상의 진리에 비유했다. 여기서 최상의 진리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과 열반사상이다. 또한 경전 가운데 『대반열반경』이 최고의 수승한 경전이라며, 제호에 비유하고 있다. 『벽암록』 2칙 평창(評唱)에서도 “만약 참구하여 투철하게 사무치게 되면 자연히 으뜸가는 제호의 맛과 같다”며 최상의 해탈을 말한다.    

둘째, 『법화경』 「비유품」에서는 소를 일불승(一乘)에 비유하고 있다. 한 장자가 있었는데, 대저택의 부호다. 어느 날, 그 큰집에 불이 났는데, 혼자만 빠져나왔다. 저택 안에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집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장자는 아이들에게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 장난감을 준다’고 소리친다. 양거는 성문승, 녹거는 연각승, 우거(소가 끄는 수레)는 보살승을 상징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자, 장자는 가장 뛰어난 대백우거(大白牛車,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준다. 여기서 백우거란 『법화경』에서 최고의 진리인 일승(대백우거大白牛車)에 비유한다. 이는 화택에 비유를 들어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삼승방편(三乘方便) 일승진실(一乘眞實)을 말한다.   

셋째, 동양에서는 농업 문화로서 소와 매우 친숙하다. 동양의 종교인 불교는 선(禪)이 발달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와 관련한 비유와 상징이 많다. 『법구경』에서 “목동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 노사(老死)가 목숨을 순식간에 (저 세상으로) 몰고 간다[#135]”고 했다. 

『유교경』에서는 “그대들 비구들이여, 이미 능히 계에 머물렀다면, 마땅히 5근을 제어해 방일하거나 5욕에 빠지지 말라. 비유컨대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소들을 감시하면서, 남의 농작물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5근(안이비설신, 여기서는 번뇌를 상징)이 함부로 날뛰지 않도록 (마음을) 잘 보살피고, 길들일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셋째 항목이 십우도와 가장 밀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