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등無等等, 광주 무등산] 극락강 극락땅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극락고을

2024-01-25     이준엽

 

빛고을 광주

옛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부처님 세계로 여겼다. 골골이 산천에 붙여진 땅 이름 그대로가 부처님 나라의 주소이기도 하다. 호남 최대의 도시 광주도 수많은 부처님 고을이 자리해 있다. 

광주(光州)는 순우리말로 ‘빛고을’이다. 백제 때 노지(奴只)라 했고 신라 때 무진(武珍), 무주(武州)로 불렀다. 무진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광주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광주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고려 태조 23년(940), 나라의 모든 군현 이름을 바꾸면서다. 그 후에도 해양-익주-광산 등 목과 현을 거듭하며 지명이 바뀌었다.  

기록에서 다시 광주가 등장한 것은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석서정기(石犀亭記)」이다. 이색은 광주천변 석서정에 올라 “빛고을(光之州)은…”이라며 광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줄기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성리학의 거두인 목은 이색은 당대의 큰스님들과 교류했다. 당시 스님과 사대부들은 송대에 유행한 선(禪)을 통해 시, 서, 화를 교류하며 사회를 선도해 갔다. 특히 목은은 간화선을 수행하고, 정토사상을 바탕으로 부처님 세상을 설파하던 신심 깊은 재가불자였다. 유불일치(儒彿一致)를 주장하며 생활 속에 실천불교를 펴고자 힘썼다. 

목은은 남도의 명찰 백양사를 거쳐 송광사로 가던 길에 광주를 찾았다. 여러 지명 가운데 유독 ‘빛의 고을(光之州)’이라 특정해 기록에 남겼다. 정토세상을 염원하던 신심 깊은 불자에게 무등산 아래 빛고을은 그토록 찾던 서방정토 극락고을이었던 것이다. 

불교에서 빛(光)은 아미타불을 상징한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의 또 다른 이름이 무량광(無量光), 또는 무량수(無量壽)다. 본래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 아미타바(Amitabha, 無量光)와 아미타유스(Amitayus, 無量壽)를 소리 나는 대로 음사(音寫)한 것이다. 사찰 전각 가운데 무량광전,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부처님 집이다. 다시 말해 빛고을(光州)은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극락고을이다.

 

상무지구에 위치한 무각사. 광주 도심의 대표사찰이다.

 

극락고을 광주

예나 지금이나 광주가 극락고을임을 알려주는 땅이름이 많다. 동, 서, 남, 북 사방이 온통 부처님 이야기로 가득하다. 

먼저 빛고을 동쪽을 보라. 그곳에는 ‘비할 바 없이 높은 산’이 있다. 무등산(無等山)이다. 산 이름 무등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무유등등(無有等等)이라 하여 ‘비할 데 없이 높고, 등급을 매길 수 없다’라는 뜻이다. 가장 높아 견줄 이가 없는 분, 부처님을 뜻한다. 그래서 ‘무등’은 부처님을 상징하며 무등산은 곧 부처님 산이다. 

광주의 남쪽에도 부처님 산이 있다. 빛고을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금당산(金堂山)이다. 사찰의 수많은 전각을 통칭 금당이라 한다. 금당은 황금 옷(金)을 입고 계시는 부처님의 집을 말한다. 금당산은 극락고을을 주관하는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는 부처님 산인 것이다.

해 뜨는 동녘의 무등산과 남쪽의 금당산을 제석산이 두 팔을 벌리고 있듯 이어주고 있다. 금당산 앞마당인 광주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룬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광주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광주천은 북쪽에서 작은 산 하나를 살짝 휘감아 서쪽으로 흐른다. 이 산은 모양새가 부처님 공양 그릇인 발우와 같아 발산(鉢山)이라 부른다. 산 능선이 마치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 둥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면 광주천 상류에 자리한 성거사지 거북이가 공양하기 위해 발산으로 향하는 듯하다.

광주천변 발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1960년대 광주천 건너에 방직공장이 생기고 전국에서 모여든 여공들로 활력이 넘쳐났다. 밤마다 별이 총총해 ‘별마루’라고도 불린 발산마을은 체조 영웅 양학선을 비롯해 꿈을 펼치는 젊은이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방직공장의 쇠퇴로 여공들이 떠나면서 발산마을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 발산마을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4년 지자체와 민간단체가 협력해 청춘발산마을 사업을 전개했다. 다양한 디자인 작업과 청년들의 입주, 주민 생활 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에 활력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청춘발산마을은 SNS에서 ‘#광주 가볼 만한 곳’, ‘#사진 찍기 좋은 마을’, ‘#주민과 청년이 공존하는 마을’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담양에서 내려오는 극락강과 황룡강이 만나는 곳에 서창마을이 있다. 두 줄기의 강물은 여기서 모여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멀리 보이는 산이 나주 금성산이다. 

극락강

무엇보다 광주가 극락고을임을 한마디로 정의해주는 것은 극락강(極樂江)이다. 극락강을 건너면 극락세계이기 때문이다.

광주 극락강은 세계 어디에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강이다. 예부터 담양에서 발원해 서남해안으로 흐르는 영산강 물줄기 가운데 광주를 지나는 부분을 일러 극락강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극락강이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딱 집어 단정할 수는 없다. 여러 자료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무등산 북쪽 원효사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담양에서 시작한 영산강 상류와 만나면서 극락강이 시작한다. 북광주 IC 옆 와우리이다. 

광주의 북쪽 시가지를 휘감고 흐르는 극락강을 따라가다 보면 신창동 선사유적지-극락평-풍영정-극락강역을 만난다. 다시 강물은 신가지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고, 광산구 서창고을에 이르러서 장성에서 흘러온 황룡강과 만난다. 여기서부터 다시 영산강이란 이름으로 나주평야를 향해 달려간다. 따라서 광주 북구 와우리에서 광산구 서창마을까지를 극락강이라 하겠다. 특별히 광주의 북쪽과 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부처님 강이다. 

이렇듯 광주는 동(무등산), 남(금당산), 북·서(극락강) 사방으로 불보살이 감싸고 있는 정토세계임이 틀림없다.

극락강은 광주를 포근하게 감싸고 흐르기에 호남고속도로에서 광주 시내로 들어가려면 꼭 건너야 하는 강이다. 광주공항이나 고속열차를 이용해 광주에 들어서는 이들도 극락강을 건너야 한다.

개신교에서는 요단강 건너 천국에 나기를 염원한다. 성경에 요단강은 약속의 땅 가나안과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죄를 씻고 천국으로 건너가는 강이다. 요단강 건너에 천국이 있다는 것이다. 광주의 극락강도 그러하다. 극락강을 건너면 극락고을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이 무량광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빛고을이다. 다만 천국이 죽은 후에 가는 사후세계라면 극락은 사후뿐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중생들의 세계다. 

예전에 광주 서구에 극락진(서창나루)이 있었다. 이곳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 극락원과 곡식을 보관하는 서창이 있었다.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극락강에 이제는 극락교, 서창교 등 콘크리트 다리가 나룻배를 대신하고 있다. 

해 질 무렵, 서창마을에 가면 극락을 만날 수 있다. 극락강과 강변의 억새밭, 그리고 멀리 산 능선이 가지런하게 뻗어 있는 나주 금성산으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장관이다.

몇 해 전이다. 극락이라는 명칭과 관련해 설왕설래하는 일이 있었다. 광주 유촌동 극락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극락초등학교는 1931년에 세워져 100년 역사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민원이 생겼다. 일부 학부모들이 “극락은 특정 종교를 상징한다”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에 극락이 웬 말이냐”는 것이었다. 극성 민원에 교장 선생님은 난감했다. 그렇지만 학교 명칭은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한 동문들의 의견도 들어야 했다. 회별 동문회마다 ‘개명에 반대한다’는 회신이었다. 다행히 극락초등학교 명칭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극락’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광주 극락초등학교 
극락강 서쪽에 있는 빛고을 포교원

 

서방시장

극락고을을 말해주는 또 다른 땅은 서방시장이다. 담양, 순창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한 시장이다. 역참제도가 있었던 조선시대 때 경양역이 있었던 곳으로, 1966년경 광주에서 최초로 ‘싸전(쌀가게)’이 생기면서 오늘의 시장 모습을 갖췄다. 

서방시장의 서방(西方)은 극락으로 불리는 서방정토에서 유래했다. 서쪽으로 10만 억 국토를 지나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고 계시는 정토다. 이곳은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상향의 세계, 극락이다.

광주 서방시장의 서방은 극락강을 따라 극락으로 가는 서쪽 길목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민초들의 초가들이 염주를 실에 꿰듯 이어져 있다는 염주동, 동서남북 골짜기마다 자리하고 있는 절골(사동寺洞), 선암사가 있었던 선암마을, 성거사가 자리했던 성거산 등 수많은 땅이 광주를 부처님 고을이라 말하고 있다. 

서쪽의 정토, 극락은 인도의 방위와 시간관에서 유래한다. 인도인들은 더위를 피해 남쪽보다 동쪽을 선호한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쳤을 때도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동쪽을 바라보고 앞쪽을 과거, 뒤쪽을 미래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극락을 내세에 꼭 태어나야 하는 안락한 세계며, 그것은 서방에 존재한다고 여긴다. 

광주시청과 광주시의회 건물은 극락으로 이끄는 배 ‘반야용선’의 형상을 띄고 있다. 시의회는 인로왕보살이 되고, 시청은 지장보살이 되어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극락으로 가는 운송 수단으로 반야용선이 있다.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의 호위를 받으며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은 서쪽으로 향해 간다. 그런데 광주광역시 청사가 물 위에 떠 있는 ‘배’ 형상이다. 그것도 극락강을 따라 서쪽을 향하고 있다. 광주시청 청사의 형상이 거친 파도를 헤치고 극락을 향해 가고 있는 반야용선인 것이다.

광주광역시 청사 앞쪽은 인로왕보살을 자처하듯 시의회가 자리해 있다. 뒤편에는 지장보살이 중생을 보호하듯 행정부서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시청 중앙은 민원실, 은행, 쉼터 등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광주광역시 청사를 설계했던 이가 반야용선을 염두하고 도면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없다. 어쩌면 빛고을 중생들의 몸과 마음에 쌓여왔던 ‘극락’, ‘무등산’, ‘극락강’의 DNA가 영향을 끼쳤나 보다. 

 

사진. 유동영

 

이준엽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문화재를 수료했다. 법보신문, 현대불교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대불련 전북지부 지부장, 불교신문 광주전남 지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