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창간 50주년] 야수(野水)에 숨은 광명

다시 보는 불광 ❶ 1974~1977 선(禪)의 원리(原理) | 경봉(鏡峰) 스님(통도사 호국선원 조실)

2023-12-26     경봉 스님

①  더위 피하는 도리

옛날 날이 더운 어느날 조사스님에게 묻기를 “날이 이렇게 더우니 어느 곳에 가서 청량을 얻어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니 조사 스님 말씀이,

“화탕로탄(火湯爐炭) 간에 피해라” 이랬다. 

날이 더운데 신선한 곳이 어디인지 바다로 가라든지, 산으로 가라든지, 해야 될 것인데 물이 펄펄 끓고 숯불이 벌겋게 붙는 거기 가서 피해라 이랬다. 그래서 “화탕로탄 간에 어떻게 청량을 얻는 곳입니까?” 하니까,

“화탕과 로탄 간에는 더운 것이 없느니라” 이랬다. 

그러니 우리가 덥다 춥다 하는 것도 분별망식(分別妄識)이 들어서 춥다 덥다 하지 분별망식이 없으면 불에 집어 넣어도 뜨거운 것이 없고 얼음장에 갖다 놓아도 추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정신을 단련했기 때문에 춥고 더운 것도 나한테는 관계가 없다 하고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오는 것이고 또 여러분이 살림살이를 하고 사업을 하는 것도 춥고 더운 것을 불구하고 풍풍우우(風風雨雨)에 내 가정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를 위해서 사업하는 그 정신이 살아 있으면 더운 곳이 어디 있으며 추운 곳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이것만 보아도 여러분은 다 산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업하는 사람은 자나깨나 사업에서 머리가 떠나지 아니 해야 그 사업은 성공하고 또 승속(僧俗) 간에 수도하는 사람도 도(道)를 닦는 정신이 자나깨나 머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간단(間斷)없이 되어야 성공을 하는 것이다. 

예술, 미술, 철학, 종교가 전부 정신통일 하는 데 묘(妙)가 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나 성공을 하려면 정신을 통일해야 하는데 하루 24시간 중에 9시간 일하고 5시간 놀고 6시간 잠을 자도 4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4시간 동안에 1~2시간 사이라도 정신을 통일해야 맑은 지혜가 나와서 관찰력이 빠르고, 판단력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하찮은 마음으로 돌아와서 어떠한 애로(隘路)나 난관(難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타파하고 해결할 정신이 생기는 것이다.

 

②  마음을 관하는 법

예전에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達磨) 스님에게 묻기를 “만약 어떠한 사람이 불토(佛土)를 구하려고 하면 마땅히 어떠한 법을 닦아야 가장 요긴한 것이 됩니까?” 이렇게 물으니 달마 스님 말씀이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섭해가지고 있다” 이랬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이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으면, ‘어떤 사람은 마음이다, 어떤 사람은 성리(性理)다, 부처 자리다, 한 물건이다’ 이렇게 별별소리를 다 하지만 그것이 부득이해서 하는 말이지 어디에 마음이라고 써 붙여 놓았느냐.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이것이 사람마다 자기 것이지마는 이것을 모르고 있다.

그저 이 몸뚱이를 내것이라고 애지중지하고 있지만 이것은 생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암만 따져봐야 부모 물건인 것이지 내 물건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 목전에 역력히 있는 맑은 소소영영한 이것이 나이지만 이것을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먹고 입고 주하는 의식주(衣食住) 삼건사(三件事)에 노예가 되어 헤매다가 호흡이 떨어지면 그만 갖다 내버리기가 바쁜 것이다.

 

③  인생(人生)살이 호흡지간

예전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너희 생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하고 물으니, 한 제자가 대답하기를 “수일간(數日間)에 있습니다” 이러니 부처님이 “너는 공부 못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다른 제자에게 물으니 “밥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이래서 또 부처님이 “너도 공부 못하겠다”하시고, 다른 제자에게 묻기를 “사람의 생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하고 물으니 그 제자가 대답하기를 “호흡간(呼吸間)에 있습니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너는 공부 하겠다” 이렇게 말씀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호흡만 떨어지면 그만 죽고 그것이 곧 내생(來生)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모르고, 자기의 소소영영한 것이 어느 곳에서 부모 태중으로 왔는지도 모르고,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곳도 모르고, 또 죽는 날도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자다가 자기의 다리가 하도 가려워서 한참 긁다가 도무지 시원치가 않아서 눈을 뜨고 가만히 보니 곁의 사람의 다리를 긁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사는 것도 전부 남의 다리를 긁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1~2시간이라도 내가 나를 찾는 정신통일 하는 데 주력해서 살아야 밝은 지혜가 나와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다.

심(心)이라고 하는 것은 만법의 근본이라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지만 부득이 해서 마음이라고 경전(經典)에도 말을 했다.

모든 법이 일체 마음의 소생으로 되는 것이니 능히 이 마음을 요달(了達)할 것 같으면 모든 수행을 갖추어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무도 천지만엽(千枝萬葉)이 꽃도 피고 가지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무의 근본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뿌리가 없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람도 이와 같아서 근본되는 마음을 찾아야 되고, 마음을 요달해야 되고, 마음을 증득(證得)해야 되지 마음을 요달하지 못하면 수행하는 것이 헛되게 되는 것이니 공부를 하려고 하거든 내 마음이 청정(淸淨)하고 밝아야 된다. 어둠이 없으면 밝아지는 것이다.

여러분이 가정살이를 하든지 장사를 하는 데도 지혜가 있어서 그 마음 자리가 밝아야 되지 밝지 않으면 모든 일에 장애가 생기고 잘 안되게 된다. 눈을 감고 밤길을 가려고 하면 앞이 어두워서 어디 갈 수가 있느냐? 그러니 이 정신을 단련시켜 마음에 광명이 나야 무슨 말을 해도 빨리빨리 잘 알아듣게 된다.

 

④  눈이 설하는 화엄경

一二三四五六七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하면 칠(七) 자인데 사람의 얼굴에 칠(七) 낱이 있다. 눈이 2(二)개 귀가 2(二)개 콧구멍이 2(二)개 입이 1(一)개 합해서 7(七)개의 대방광불화엄경을 가지고 매일 상주설법(常主說法)을 하고 있다.

왼쪽 눈은 해고, 오른쪽 눈은 달인데 일월(日月)이 밝아 온갖 삼라만상을 다 본다. 나는 짐승을 보면 새가 오는구나, 까마귀가 오는구나, 까치가 오는구나, 하는 것을 다 알고 사람이 오면 사람이 오는구나, 전부 다 알게 해주는 이것이 상주설법이고,

또 귀는 사람소리, 발소리, 소 소리, 개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불소리, 온갖 소리를 다 듣고, 이 귀가 구멍만 뚫려 있으면 소리가 그냥 지나가 버릴 것인데 양쪽에 청수기(聽受器)가 붙어 있어서 소리가 들려오면 그것을 받아서 바로 들어 가게 해놓은 이것이 또 묘법이고,

코는 내리 붙어 가지고 2(二)구멍에서 단 냄새, 짠 냄새, 향 냄새, 똥 냄새, 온갖 냄새를 다 맡아 가지고 알려주는 이것이 묘법이고,

입은 방송국도 되고 입에다가 눈 감고 무엇을 넣어주어도 짠 것을 넣어주면 이것이 간장이구나, 이것은 토장이구나, 이것은 된장이구나, 이것은 청국장이구나 다 알고 단 것을 넣어주면 이것은 꿀이구나, 이것은 엿이구나, 이것은 설탕이구나, 하고 온갖 것을 다 아는 이것이 묘법인 것이다.

그런데 천상인간에서 제일 높은 이가 세존(世尊)인데 양쪽 눈은 일월광명세존(日月光明世尊)이 있어서 상주설법하시고,

귀는 성문여래(聲聞如來)라 소리를 듣는 부처님이 있어서 온갖 소리를 다 들어 알려주는 이것이 상주설법이고,

코는 향적여래(香積如來)라 온갖 냄새를 다 아는 향적여래 부처님이 있어서 상주설법을 하시고,

입은 법희여래(法喜如來)라 법희여래 부처님이 있어서 상주설법을 하시는데 나한테 있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줄 모르고 어디서 법문한다 하고 누가 말만 하면 그 말에 쫓아서 다른 사람 말만 자꾸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佛)이라는 것은 법계불(法界佛) 본성불(本性佛) 열반불(涅槃佛) 수락불(受樂佛) 성정각불(成正覺佛) 원불(願佛) 삼매불(三昧佛) 업보불(業報佛) 주지불(住持佛) 심불(心佛)의 열 가지 부처가 있는데 열 가지 부처만 불이라는 것은 벼(나락)가 부처요 법은 보리(麥, 맥)가 법이요, 승(僧)은 콩이 승이라는 말이다.

 

⑤  어떤 것이 부처님인가?

조사문에 들어오면 ‘불이 무엇이냐’ 이러면 ‘베짜는 삼 서근이 부처다’ 이랬고, 또 ‘마른 똥 막대기가 부처다’ 이랬고, 

또 ‘우리 몸뚱이가 곧 부처다’ 이랬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흉내도 못내는 말이다. 

그러면 이 냄새나는 이 몸뚱이가 어떻게 부처냐고 깜짝 놀라겠지만 진리적으로 들어가면 나한테 있는 부처를 찾으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 성리가 돌아와서 한 가지 여래와 더불어 합하면 그 합한 곳은 남도 아니고 나도 아니더라.

我性還共如來合 合處非他非自己
(아성환공여래합 합처비타비자기)

성리라고 하는 것은 소금은 짠 것이 소금의 성리요, 불은 뜨거운 것이 불의 성리요, 물은 젖는 것이 물의 성리요, 사람은 깨달아 아는 소소영영한 그 자리가 사람의 성리인데 사람 사람이 내 성리가 그 자리를 알면 이 자리는 중생의 본성과 부처님의 청정무애(淸淨無碍)한 그 자리가 합해 가지고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냐 무언인지 그것을 알려고 해야 되는 것이다.

달이 야수(野水)에 뜨니 광명을 감추었고
난초는 봄 산에서 옛 부처의 마음을 토(吐)하네.
月浮野水光明藏 蘭吐春山古佛心
(월부야수광명장 난토춘산고불심)
끝으로 말도 아니고 문자도 아닌 법문이 하나 있다.

할(喝).

일할하고 법좌에서 하좌.

 

이 글은 1977년 11월호(통권 37호)에 실린 경봉 스님의 법문입니다. 일부 문장은 현대 문법으로 교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