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에서

바라밀가족 이야기

2007-09-17     관리자
옷 벗은 나무 사이 길 따라 오르는 가파른 언덕 2km.
숨 고르며 돌아보면 건너 편 기슭의 그림자 물 위에 일렁인다.
수종사(水鍾寺) 가는 길은 좀 더 길어도 좋지 않겠나?

일주문 들어서니 애달픈 가을 살포시 잡아놓았구려.
유수 같은 세월을 멈칫 막아선
불보살 도력이려나?
단청 없는 삼정헌(三鼎軒) 누각에 올라앉아
다탁(茶卓) 두고 마주앉은 도반이여!

빛바랜 일주문 밖에서 절을 지켜온 수문장
오백년 은행목일랑은 게 두게나!
얼레빗처럼 가로지른 교각 사이로 흐르는 강물 위로
피어오른 운무는 가을 햇살에 부서진다.

석양이 황금비늘로 강물을 덮을 때까지
아니 팔당대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보석처럼 빛날 때까지
이렇게 마주앉아 이야기 나누어도 좋지 않겠나?
차나 마시며….

一杯(한 잔), 一杯(한 잔) 그리고 또 一杯(한 잔)

- 수종사 삼정헌에서



* 시(詩)ㆍ선(禪)ㆍ차(茶)가 공존한다는 삼정헌(三鼎軒). 수종사의 물맛과 차 맛은 천하일품이다. 다성(茶聖) 초의 선사와 다산과 추사도 이곳에서 차(茶)를 즐겼다 한다.

최윤정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 숭산 스님의 법어집 『부처님께 재를 떨면』을 번역하였으며,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영어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