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용이 나르샤] 인도의 나가Nāga, 용이 되다

용, 부처님을 외호하다

2023-12-26     강희정

2021년에 개봉한 디즈니 만화영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상 영화에 나오는 드래곤(dragon, 용)의 성격은 서양의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서양에서의 용은 때로는 난폭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의의 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왕좌의 게임>이라는 드라마 속 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양의 용은 대부분 하늘을 날아다니며 입에서는 과격하게 불을 뿜는다. 마치 화산이 터져 나오는 듯한 폭발적인 화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용은 불을 뿜는 존재가 아니라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 용은 비를 내려주는 역할도 한다. 가뭄이 들면 비를 기원하며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동양과 서양의 용은 이름만 같을 뿐, 그 성격은 전혀 다른 셈이다. 서양과 동양만큼이나 다른 불과 물의 용이다. 

동양에서는 언제부터 용이 나올까? 우리가 생각하는 몸이 길고,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은 그 기원이 중국에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신석기시대에 용을 섬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석기 유적에서 발굴된 용은 몸집이 짧고 통통해 돼지처럼 보이다가 점점 날렵하게 길어지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대략 한나라 때가 되면 용은 사신(四神, 청룡·백호·주작·현무) 가운데 하나로 정착한다. 와당(기와의 일종)이나 금속공예품 등 한나라 때 유물에서 용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용은 비늘이 있는 뱀처럼 기다란 몸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굵고 짧은 발이 달렸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용은 비를 내려주거나, 특정한 마을을 수호해 주는 영험한 힘이 있다든가 하는 영물로 여겨졌다. 미술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용은 지혜롭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으면서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묘한 존재로 여겨졌다. 

미륵의 좌상, 북제, 중국역사박물관 소장 
미륵부처님 좌우로 용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중국의 용 모습이다. 

 

나가Nāga와 용龍

용은 아시아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용은  다르다. 흔히 우리가 용이라 부르는 존재는 인도와 동남아에서는 나가(Nāga)에 해당한다. 나가는 용처럼 동물이면서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다. 인도에서 킹코브라 정도 되는 거대한 뱀을 나가라 불렀고, 산스크리트와 빨리 문자에서 모두 나온다. 나가의 기원이 인도에 있는 만큼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 모두에 나가라는 영험한 존재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열대, 혹은 아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크나큰 뱀의 존재를 잘 몰랐던 중국에서 불교 경전을 한역할 때, 나가를 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도에는 원래 용의 관념이 없고, 인도와 기후가 다른 중국에는 원래 코브라가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나가가 몸이 길고 물과 관련이 있으며 신비한 힘을 지녔다는 설명이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은 이를 용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비를 몰고 다니거나 물을 다스리는 신령이라는 점에서 나가와 용은 서로 닮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용이라고 받아들였고,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 심지어 베트남에서는 나가와 용을 동일시하게 됐다. 

하지만 인도에서 나가는 실제로 살아 있는 동물 킹코브라다. 직접 그 모습을 본 사람도 많고, 킹코브라가 지닌 가공할 만한 힘을 생생하게 체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니, 나가라는 말이 주는 위엄에 경외심을 갖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용은 상상 속의 존재다. 어마어마한 위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상상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에게 느끼는 공포심과 위압감, 그것에 가깝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인 뱀이 상상으로 만들어진 신화적인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이 둘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가를 용으로 번역한 것만 봐도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가 얼마나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됐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도 데오가르 사원 벽 나가와 비슈누 조각, 출처 셔터스톡
인도의 나가가 누워 있는 비슈누를 보호하고 있다.

 

경전에 나타난 용

불교 이전 인도 신화에도 나가는 나온다. 인도 서사시인 『리그베다(Ṛg-veda)』에 나올 정도로 뱀은 사람들과 가까운 존재였지만 『베다』에서 뱀은 악을 대표하는 부정적인 존재이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도 사상의 발전과 함께 뱀은 나가로, 힘이 세고 자존심이 강하며 반은 인간, 반은 뱀인 형태를 취하는 반신(半神)의 존재가 된다. 또한 강이나 호수, 우물 등 물과 관련된 존재이며, 상상의 새인 가루다(Garuda)와는 숙적 관계다.  

힌두교 신화에서 나가는 비슈누가 천지를 창조할 때, 그를 보호하는 모습을 취한다. 신비한 힘을 가진 반신격인 나가가 그 힘으로 신들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사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도 데오가르의 비슈누 사원 벽에도 나가와 비슈누 조각이 있다. 비슈누를 받치고 있는 나가는 여러 개의 머리를 우산처럼 펼쳐서 신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이다. 불상도 이와 비슷하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도 나가는 뱀을 지칭한다. 베다시대에 천신 인드라(Indra)의 적으로 간주된 나가는 점차 물과 관련이 있는 힘의 소유자로 바뀌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고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물을 관리할 수 있는 존재로 그 속성이 강조된 것이다. 『대사(大事, Mahāvaṁsa)』에는 석가모니가 자신에게 대항하던 나가들을 조복시키자 나가들이 천상의 음식을 공양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깨달음을 얻어 정각의 기쁨을 즐기던 석가모니를 우기의 비바람에서 보호해 준 것도 나가였다. 몸을 우산처럼 넓게 펴 비슈누를 보호하던 그 모습처럼 말이다. 

이 모습은 그대로 인도에서 동남아로 전해져 동남아 불교미술로도 남아 있다. 캄보디아와 태국 등지에는 높이 똬리를 튼 뱀의 몸통 위에 고요히 명상에 잠긴 듯한 석가모니 조각이 여러 점 전한다. 7개의 뱀 머리는 파라솔처럼 펼쳐졌다.

나가의 보호를 받는 석가모니, 앙코르시대, 캄보디아, 프놈펜 국립박물관 소장

불전에서 나가 무찰린다(Mucalinda)는 자신의 거처에서 나와 세존의 몸을 7번 돌돌 말아 감싸고 자신의 머리를 우산처럼 석가모니의 머리 위에 펼쳤다. 그는 “추위와 더위, 바람과 열, 파리, 모기가 붓다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동안 꼼짝하지 않고 석가모니를 감싸고 보호한 나가 무찰린다는 구름이 걷히고 날이 좋아지자 스스로 물러나 석가모니에게 예를 표했다. 무찰린다의 이야기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깨달음의 순간을 묘사한 모든 불전에 그대로 전해지며 한역 경전에 용왕으로 번역돼 나온다. 나가와 용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나가는 인도 초기 불교미술에서 종종 나타난다. 석가모니의 설법에 감명받은 나가 이야기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이 나가 엘라파트라(Elapatra) 이야기다. 엘라파트라는 뱀의 몸으로 나고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석가모니에게 하소연하고 삶의 인과에 관해 설법을 들은 후,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이 이야기는 한역 경전에서 “용왕 엘라파트라의 귀의”로 번역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교미술로 만들어져 바르후트 스투파에 새겨지기도 했다. 고뇌하는 존재이자, 신비한 힘을 지닌 반신답게 엘라파트라는 긴 뱀의 하반신에 사람의 몸을 했다. 머리 위로는 머리가 여럿 달린 코브라 모양의 터번을 쓴 모습이다. 

또 갓 태어난 싯다르타 태자를 씻어주는 나가의 모습 역시 모두 중국에서 용으로 바뀐다. 중국은 물론 한국 팔상도에서 볼 수 있듯이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씻어주는 것도 모두 용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어린 태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용이다. 숫자 또한 바뀌어서 인도, 동남아에서는 머리가 7개 달린 나가인데, 중국 쪽으로 가면 중국인이 좋아하는 9라는 숫자에 맞춰 머리가 9개 달린 용으로 된다. 인도의 나가를 용으로 번역하고, 숫자 역시 현지인의 취향에 맞게 변화시켰음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자든 미술이든, 모두 인도의 나가가 한자문화권에서 용으로 이해되고 인식됐다는 뜻이다. 

해인사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부분도, 해인사 소장 아홉 마리의 용이 부처님을 목욕시키고 있다. 사진 불광미디어

 

동남아시아의 용

인도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동남아에서는 용이라기보다는 나가 그대로 수용됐다. 때로는 동남아 각지에서 신격화되거나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경우도 있지만 중국과 달리 불교와 힌두교의 맥락에서 나가 그대로 신격화됐다. 1년 내내 물이 많은 데다가 우기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려 각양각색의 뱀이 많이 사는 동남아에서 뱀 신앙이 발달한 것은 당연하다.

가장 먼저 인도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인 캄보디아는 이미 건국 신화에서부터 나가를 매우 중요하게 신격화하고, 지배층이 나가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동남아 토착 전통에서는 나가를 토지의 신으로 숭배하는 경향도 있었다. 특히 인도 종교가 전해지기 전에도 라오스와 베트남 등지에서 나가를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라오스의 여러 종족 가운데 라오(Lao)족에게는 나가가 지금의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의 수호자이자 라오 왕국의 수호자라는 신화가 전승되고 있다. 산 류파선(San Leupasun)이라는 시인은 라오스와 태국을 각각 나가와 가루다에 비교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라오스는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나라면서 메콩강의 지류가 많아서 거대한 뱀도 많기 때문에 일찍부터 뱀을 숭배하고, 두려워했다. 또한 나라의 지배층이 뱀의 후손이라는 믿음 역시 캄보디아와 공유한다. 

나가 숭배는 사실상 거의 모든 동남아시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힌두교가 잘 남아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 전통에서 나가는 종종 가루다와 투쟁을 벌인다. 이는 인도 신화의 내용을 현지에 맞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인도네시아 특유의 토착 애니미즘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나가의 특수한 힘에 대한 숭배가 인도네시아에서 강화된 것이다. 나가가 관장하는 물은 곧 풍요와 연결된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나가지만 동시에 부를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인데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그저 하급 신이다. 이 점은 중국에서 용이 신들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 달리 나가보다는 중국식 용을 높이 평가하고 숭배하는 곳이 베트남이다. 일찍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베트남은 황제의 복식에도 용을 수놓는 등, 중요한 곳에는 머리에 뿔이 달린 중국식 용을  만들어 둔다. 중국에서 용이 황제와 그 후손을 상징한 것과 같다. 우리나라처럼 청화백자에 용을 그리거나, 뱃머리를 용의 형상으로 만들어 용선이라 부르기도 했다. 거칠 것 없는 용맹한 용의 기세를 닮고 싶었던 모양이다.   

청화백자, 15세기, 베트남, 하노이 역사박물관 소장
나전칠기 액자, 1890년, 베트남, 하노이 역사박물관 소장
백자호, 19세기 말, 중국, 싱가포르 페라나칸박물관 소장

 

글·사진. 강희정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이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다. 불교미술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난처한 동양미술이야기』 1~3,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1~2, 『클릭 아시아미술사』 등이 있다. 『아편과 깡통의 궁전: 동남아의 근대와 페낭 화교사회』(푸른역사, 2019)로 제3회 롯데출판문화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