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삶의 축복

희망씨앗 1

2007-09-17     관리자
오늘 아침 신문의 네 컷짜리 만화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날 때부터 두 팔이 짧고 손가락이 모두 여섯 개밖에 없는 한 소녀는 옷감을 짜는 데는 가장 좋은 손이라며 자신의 손에 대해 깊이 감사했습니다.”

나 역시 내 손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그것은 내가 열 개의 손가락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타이핑해 내 소중한 벗과 그를 보살피는 분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세상에 전할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가까이 경북의 한 절에 머물렀던 나는 읍내의 병원에서 전신마비 환자인 방진호(39세) 씨를 알게 되었다. 그는 비록 몸이 아팠지만 마음이 밝고 건강했다. 고작 세 번째 만났을 때 우리는 아픈 그의 육신을 눈앞에 두고 ‘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솔직했고 순수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이 툭 트여 있었다.

나는 인과의 법칙을 철석처럼 믿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폭 좁게 해석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업이란 단순하고도 수동적인 결과물, 그리고 삶과 운명에 대한 족쇄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현재를 활용해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경험조건에 대한 태도를 선택함으로써 미래를 보다 나은 것으로 열어가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영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삶은 배움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모든 상처는 별이 된다는 말(Scars into stars)을 진실로 믿는다. 진호 씨는 삶을 통해 배우며 가혹한 조건 속에서 보다 강인하고 드넓은 영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아름답다. 나는 그의 신체조건이 수행자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축복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진호 씨 역시 그렇게 믿을 것이다.

진호 씨는 9년 전 고압선에 감전당해 ‘삶의 새로운 경험’을 위한 지금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진호 씨와 내가 유쾌하게 웃으며 이미 완벽하게 합의한 것과 같이 그의 삶은 이미 더는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경험 조건이며, 성장을 위한 축복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긍정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토록 눈부신 청춘 서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면, 그 고통은 말 그대로 끔찍한 것이었을 게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진호 씨는 5년을 죽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비로소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그리고 나서 기적처럼 삶이 변했다. 그는 봉화의 해성병원에 입원했고,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나누어 가진 한 간병사 보살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으로 진호 씨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진호 씨의 마음에 밝음과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은 장 정각도 보살님(61세)이었다. 그녀를 통해 진호 씨는 불교를 만났다. 그녀가 가져다 둔 불서들을 읽으며 진호 씨는 차츰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미타 염불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새벽 5시면 라디오로 예불을 하고, 남아 있는 한 쪽 눈과 지금의 몸 상태라도 가능한 것에 대해 깊이 감사기도를 올린다. 또 마음속에 떠오르는 인연들 모두 행복하라고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하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자비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이렇게 기도로써 하루를 열면 마음이 평화롭고 밝아진다. 그 힘으로 하루를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낸다. 그러면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읽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평온히 잠들 때에도 마음속 깊이 행복하다.

요즘 진호 씨는 하루에 4시간 넘게 운동을 한다. 그토록 열심히 운동에 매달리는 것은 정각도 보살님 덕분이다. 이미 예순을 넘긴 보살님이 간병사 일이 힘에 부쳐 자신을 떠나게 되는 것이 진호 씨는 조금은 두렵다. 정각도 보살님처럼 헌신적이고 따뜻한 사람, 어머니의 자애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은 진호 씨에겐 다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진호 씨의 올해 목표는 혼자 힘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만 할 수 있어도 정각도 보살님이 큰 힘을 덜 수 있다.

나는 진호 씨의 삶에서 참다운 수행자의 삶을 본다. 자신의 현재 삶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최대한의 긍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보다 나은 삶과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진호 씨.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보듬고 도우며 살아가는 진호 씨와 정각도 보살님. 언제나 주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진호 씨. 이 삶에서 참수행의 향기가 난다. 부처님의 자비롭고 환한 미소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진호 씨가 고맙다. 그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그의 의식이 좁고 제한된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넓고 깊은 차원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무심월 유인선 님은 보현행원품을 무척 좋아하는 불자로서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한 불국정토, 더불어 성불하는 부처님 나라를 이룩해 가고 싶은 꿈을 지니고 있으며 사찰 사보 편집장을 거쳐 프리랜서 출판기획자, 리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