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는 재미로 사는 중생에게 불연佛緣 심는 지안 스님

[근현대 스님들의 수행과 사상]

2023-12-28     효신 스님
통도사 반야암 지안 스님. 사진 불광미디어

“불법의 물속으로 뛰어들어라”

“속았네, 완전히 속았어요. 
어서 물어내요.”
“뭐가, 인마!” 
“이 세상 최고의 인격을 이루는 
유일한 삶이 출가라 해서 머리 깎았더니 생각한 거랑 다르구만요. 
어서 물어내세요!”
“아따, 그 자슥. 물어줄게. 
자, 자, 자(여기여기여기). 
내 팔뚝 한 번 꽉 물고 이제 고마해라!”

지안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한 신효 스님이 지안 스님께 ‘속았다’며 따지는 장면이다. 수행 공간이라면 철저한 시비의 객관성 안에서 올바른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에 실망한 신효 스님의 투정이다.

요산 지안(樂山志安, 1947~ ) 스님의 법문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는 상대방의 마음에 통로를 열어 부처님을 자각하게 만든다. 한국불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스님 스스로가 매 순간 부처님 법에 환희심을 일으키며 지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부처님을 아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고 진심으로 전하는 법문에 어찌 감동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지안 스님의 강의나 법문을 듣고 있으면 마을에서 사는 삶은 온전히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고, 출가하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지 못한 것에 송구스러움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 지안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출가를 꿈꿀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안 스님은 스스로를 사정없이 깎아내린다(요즘 말로 ‘디스’한다). 늘 본인은 부족하고 모자란 일개 중일 뿐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듣는 사람은 지안 스님을 그저 일반 스님으로 여기게 되니 한국 승가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들만이 모인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 실상은 그게 아니니 속은 셈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승가도 사바세계 중생들이 모여 부처님을 향해 나아가는 곳이다. 지안 스님처럼 논리정연하게 쉬운 말로 불법의 본뜻을 풀어내는 스님을 만나기란 흔치 않다. 신효 스님도 그래서 속았다며 따지고 있다. 

지안 스님이 신효 스님에게 보낸 편지

20대에 출가해 다락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코피 흘리며 공부한 시절을 보낸 지안 스님의 뼈대를 이루는 경은 『화엄경』이다. 지안 스님은 『화엄경』의 특징을 3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불교 경전의 결정판이자 최고의 문학서이다. 둘째, 인류 최고의 윤리서이다.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수행의 바른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 세상에서 인간의 의식을 가장 넓혀주는 책이다. 『화엄경』을 이해하려면 삼매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인간의 의식을 가장 넓혀주는 경이라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지안 스님은 스님들과 불자들에게 『화엄경』을 다 못 읽더라도 「십회향」(十廻向, 수행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는 보살의 10가지 행)품만이라도 보기를 권한다. 「십회향」품을 통해 불법의 요체인 ‘마음 잘 쓰는 법(善用其心선용기심)’을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이라 한다.

더하여, 지안 스님은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불법의 물속으로 뛰어들어라”고 한다. “불교가 좋으면 불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불교가 자기 것이 된다. 불법(佛法)의 강물을 둑에서 백날 구경할지라도 관광객의 시선일 뿐, 직접 물에 들어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적셔 보지 않으면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 물에 직접 뛰어들어 봐야 그 물을 자기가 마음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어찌 머리를 안 깎고 배기겠는가?

지안 스님. 사진 불광미디어

 

향기로운 인연으로 맺어진 사자(師資)

지안 스님은 고려대 법학과 재학시절 고시 준비하러 통도사에 들렀다가 장엄한 새벽예불에 감동 받아 바로 머리를 깎았다. 추운 겨울 새벽, 스님들이 예불드리며 읊는 창불음(唱佛音)을 듣는 순간 주체하기 어려운 눈물이 쏟아졌고 그 순간 출가를 결심했다. 법당을 나오자마자 가져온 고시용 책들을 절 마당에 쏟아놓고 불태웠다. 그렇게 행자의 삶이 시작됐다.

스님의 은사스님은 상좌의 법명을 내리면서 “뜻을 세우는 것(立志)을 바로 하여 한 생을 편안히 살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안(志安)’이라 하였네. 중노릇 잘하려면 금생에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살게”라고 소참법문을 했다. 특히 ‘중노릇 잘하려면 금생에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살라’는 스승의 이 말씀은 너무나 매력적이라 지안 스님은 한평생 되새기며 지냈다고 한다.

지안 스님의 은사스님은 벽안 스님으로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신 경봉 스님의 맏상좌다. 그러니 경봉 스님은 지안 스님의 노스님이 된다. 지안 스님이 지니는 한국불교에 대한 자부심은 경봉 스님과 벽안 스님의 삶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직결된다.  

한때 지안 스님의 한국불교와 승가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감명은 조계종 총무원에 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었다. 직원 가운데 이석심 님은 ‘총무원에 10여 년을 근무하면서 한국불교와 스님 생활에 대한 자부심을 이토록 강렬하게 지닌 스님은 처음이라 휴가를 내고 3박4일 일정의 지안 스님의 특강을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스승에 대한 지안 스님의 향심(向心)은 단순히 ‘존경심’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심을 담고 있다. 일상을 곁에서 함께하며 그분들의 평생을 지켜봤기 때문에 두 어른스님의 사상이 지안 스님에게 오롯이 녹아 있다. 3대에 걸친 세 스님은 비슷한 업연으로도 이어지는데, 붓글씨와 유학에 밝았던 경봉 스님과 

벽안 스님처럼 유학자인 부친을 둔 지안 스님도 그런 공통점을 지닌다. 향기로운 인연으로 맺어진 사자(師資, 스승과 제자) 관계들이다.

“너와 내가 만나면 향기가 어리고
온화한 바람 속에 봄볕이 따사롭네
인생이 괴롭다 즐겁다 하는 건 마음 두고 하는 말
활달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아무것도 괴로울 게 없다네.”   
 - 경봉 스님

벽안 스님은 상좌 지안 스님을 통도사 강원에 강사로 기르시려고 늘 “운허 스님을 본받으라”고 당부했다. 스승의 보이지 않은 배려 등으로 스님은 강원 졸업반 때부터 학인들을 가르쳤는데 시비(是非)가 분명하고 엄격해 학인들 사이에서 “미제 도끼자루 강사스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안 스님은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사정없이 혼을 냈기 때문에 ‘절대 부러지지 않는 미국산의 도끼자루’로 통했다. 그 시절 제자들은 지금의 인자한 지안 스님의 모습에 적응이 잘 안된다고 슬쩍슬쩍 말을 흘린다. 

 

법문 중인 지안 스님. 사진 불광미디어

 

불연(佛緣), 세 가지의 인연

스님은 불법 공부는 의지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수행의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힘은 부처님의 향기를 훈습(薰習)하는 데 있다. 부처님의 향기가 몸에 배면 누가 보지 않아도 수행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 훈습은 바로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적인 힘이 모자라 지혜와 자비는 금방 동이 나고 말기 때문에 누가 얼마만큼 정성을 기울이느냐, 달리 말하면 정성의 도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쉽게 법문을 잘하시는 대표적인 스님으로 종범 스님과 지안 스님을 든다. 사람들은 지안 스님에게 어려운 주제인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를 잘 묻는다. 그러면 스님은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이고, 마음을 밝히는 종교이며, 마음을 잘 쓰는 종교”라고 명료하게 대답한다. “불교에서 일체중생은 누구나 자기 마음의 공덕을 똑같이 갖고 있다. 부처님 마음이나 중생 마음이나 다 똑같기 때문에 『화엄경』에서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세 가지는 똑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남을 차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바로 도(道)이고 참된 수행이다. 학 다리가 길면 긴 대로 오리 다리가 짧으면 짧은 대로 본래 평등한 것임을 볼 수 있는 견처를 지녔다면 비록 성불은 못 했을지라도 부처님의 정신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지안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은 결국 ‘인과법, 인연법, 일심법’으로 요약된다고 한다. 일심법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첫 단계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마음 공덕을 볼 줄 아는 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지안 스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인연이라고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중요한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시절인연이고, 둘째 지연(地緣, 땅과의 인연)으로 장소인연이고, 마지막이 사람과의 인연이다. 이 세 가지 인연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게 절에 다니며 맺은 불연(佛緣)”이라고 한다. “불연이 성숙되면 사람과의 인연이 좋아져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내게 이익이 되는 좋은 장소를 만나게 되고 좋은 시절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베풀어야 할 세 가지 의무인 “줘야 할 의무, 받아야 할 의무, 다시 갚아야 할 의무”와도 연동된다고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세 가지 의무를 잘하기 위해서 사는데, 결국 부처님 법과 인연을 맺으면 저절로 행해지는 회향공덕의 의무라고 한다. 따라서 부처님 밭에는 작은 씨앗 하나 뿌리더라도 공덕의 열매가 맺어지듯이 가장 소중한 인연이 바로 불연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지안 스님은 부처님 법을 만나는 것이 세상 최고의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지안 스님이 가장 반기는 소식은 누군가가 머리를 깎고 부처님의 제자가 됐다거나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한다는 말이다. 설령 그 사람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 소식을 접하면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입산할 것이다. 그가 신효 스님처럼 속았다며 철없이 징징거리면 지안 스님은 또다시 당신 팔뚝을 내밀어 물어보게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리라. 

 

효신 스님
동국대 강사, 철학과 국어학 그리고 불교를 전공했으며 인문학을 통한 경전 풀어쓰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