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으로 가는 배 반야용선] 법당은 반야용선이어라

사찰 속 용

2023-11-23     김희진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 벽화. 선실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으며, 배 앞에는 인로왕보살이, 뒤에서는 지장보살이 왕생자를 이끌고 있다. 근래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다. 

“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 
피안으로 모두 가자. 
깨달음의 세계로 속히 가자.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피안의 세계, 즉 극락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배는 반야선(般若船)이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 천왕문을 지나면 우측에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의 뒤쪽으로 가면 외벽 가득 반야용선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머리를 곧게 든 용의 형태로 표현된 긴 배가 힘차게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모습이다. 앞에서는 인로왕보살이 이끌고 뒤에서는 지장보살이 용선에 승선한 왕생자(往生者)들을 지키는 모습이 표현됐다.

불교에서 참된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야선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반야(般若)’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는데, 용의 형상으로 바다를 헤쳐 나가기에 ‘용선(龍船)’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로 방향을 잡고, 신이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용이 배가 되어 중생들을 실어 극락정토로 인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을 바다, 연못, 우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으로 여겨 왔다. 물을 관장하고 지배하는 용왕으로 표현되고, 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와 복을 불러들이는 길상(吉祥)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도 용은 물과 관계된 것으로 본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물로 다니는 것 가운데에서는 용의 힘이 으뜸”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물에서 가장 강한 용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극락으로 건너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야선을 용선으로 드러낸 것이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보물). 여수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운 승군의 거점 사찰이었다. 전쟁 후 1624년에 다시 건축된 대웅전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후불탱화가 있다. 
흥국사 대웅전 어간 기둥 위에 새겨진 용 머리.
흥국사 대웅전 어간 기둥 위에 새겨진 용 꼬리. 법당에 용을 새겨 넣는 것은 법당이 반야용선임을 뜻한다.

법당은 바다 위의 선실(船室)

반야용선에서 용의 머리는 뱃머리가 되고, 용의 꼬리는 배꼬리로 표현한다. 사찰에 가서 자세히 살피면, 법당은 이런 모습으로 장엄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법당 자체를 반야용선으로 보고 건축한 것이다. 

먼저, 법당의 중앙인 어간문(御間門) 양옆의 기둥을 보자. 기둥 위로 조각된 두 마리 용의 머리를 볼 수 있다. 용 머리는 반야용선의 뱃머리가 되고 자연스레 법당은 선실이 된다. 용의 꼬리는 법당 안쪽으로 이어지는데, 문지방 쪽에서 바라보면 완성된 용을 볼 수 있다. 전체로 보면 선실로 대비되는 법당을 이끄는 용의 모습인 것이다. 

법당 앞 계단을 뱃머리로 보기도 한다. 계단의 소맷돌에 용을 새겨 넣어 반야용선의 뱃머리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단석에 바다 생물을 조각해 법당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표현을 볼 수 있는 곳은 여수 흥국사 대웅전이다. 법당의 어간 기둥머리에는 구불거리는 용 머리가 있고, 소맷돌에도 용이 새겨져 있다. 특히 소맷돌 양쪽에 각각 새겨진 네 마리 용은 머리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극락으로의 강력한 염원을 나타내는 듯하다. 기단에는 게와 거북이를 조각해 바다 위를 떠가는 용선의 의미를 더 완성시켜 준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석등이 하나 있는데, 아주 독특하게 거북이 모양의 조각이 석등을 받치고 있다. 석등은 부처님의 진리를 의미하는데, 반야용선(대웅전)이 향하는 길을 석등이 인도하는 것을 형상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심지어 괘불대에도 용을 조각해 그 의미를 한층 더 분명히 나타낸다. 이렇게 본다면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불전 자체만을 반야용선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 대웅전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반야용선에 올라탄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여수 흥국사 대웅전 앞마당 석등
대웅전 기단에 게와 거북 등 바다동물을 조각해 놓았다.
대웅전 기단에 조각해 놓은 거북

법당이 이렇게 반야용선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때는 임진왜란 이후부터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의 활약으로 조선 전기의 억불정책이 완화됐으나 불교계의 어려움은 여전히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주에만 의존해 사찰을 운영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땅을 개간하거나 사찰계(契)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승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사찰을 보수하거나 조성할 자금을 마련하는 데 동참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백성들은 종교적으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백성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불교를 통해 구원받고자 했다.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할수록 어딘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당시 불교가 그 역할을 했다. 17세기 중후반부터 전쟁 등으로 소실된 사찰의 재건이 활발히 진행됐다. 이때부터 법당에 많은 용이 조각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는 선조와 자신들의 극락왕생에 대한 염원이 커지게 된다. 극락세계로 가는 수단인 반야용선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고자 생각하게 되고, 그 염원은 법당을 반야용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흥국사 대웅전 계단돌에 새겨진 용
흥국사 석조 괘불대에 조각된 용

 

흥국사 대웅전 닫집에 새겨진 용. 용은 부처님이 앉아 있는 불단을 감싸고 있다. 

법당 안의 용

법당 안 여기저기에서 용을 발견할 수 있다. 기둥, 들보, 벽화, 천장, 닫집, 수미단 등 다양한 곳에 그림으로, 또 조각으로 용이 내려앉지 않은 곳이 없다. 심지어 반야용선으로 대비되는 법당 안에 또 다른 반야용선을 그리거나 조각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이같이 용은 사찰에서 가장 많이 장엄되는 존재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임에도 법당 안팎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용은 장식적인 의미를 넘어서 제각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불전(佛殿)은 모든 중생계가 담긴 곳이자 불국토를 상징한다. 그중에서도 천장은 천상 세계를 표현하기 때문에 특별히 화려하게 꾸미기도 한다. 특히 법당 안에서 중요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용이 많이 장엄된다.

법당에 들어서면 가장 중심에 불상이 있고, 그 위에 작은 집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이는 극락정토의 모습을 반영하는 닫집이다. 닫집은 불상의 머리 위를 장식하는 동시에 반야용선 속의 부처님 방, 혹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나무 그늘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닫집 안의 용은 몸을 구불거리며 비틀고 있다. 용은 봉황 같은 서수(瑞獸, 상서로운 동물)와 비천상, 구름, 보주(寶珠, 보배로운 구슬) 등과 함께 표현돼 천상 세계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사원에 가면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용왕인 나가(那伽, Nāga) 무찰린다가 부처님을 보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몸 뒤에서 머리를 들어 올려 킹코브라처럼 목 부위를 넓게 펴서 그늘을 만드는 조각상이다. 이러한 형태는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무찰린다는 그 의미만 유지되고, 부처님 머리 위의 닫집 안에 등장하는 용으로 변화한다.

부안 개암사 전경. 백제 시기에 창건된 고찰이다. 개암죽염과 관련해 진표율사의 신화가 전래한다. 1636년 건축된 대웅보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보물로 지정됐다. 
개암사 대웅보전에는 많은 용이 새겨졌다. 건축물의 공포(拱抱)마다 용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대웅보전 불단 
대웅보전 어간과 충량(衝樑)의 용 머리
대웅보전 모서리에 보이는 용의 머리

또 용은 법당을 지탱하는 중요한 구조 대부분에 표현된다. 대들보, 충량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부재가 지닌 기능에 용의 상징성을 더해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들보의 단청에서 용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용은 긴 몸을 뻗어 법당 밖으로 나가거나, 목을 꺾어 뒤를 돌아보는 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법당 안에서 가장 큰 용을 꼽으라면 충량에 새긴 용일 것이다. 충량(衝樑)은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고 있는 보를 말하는데, 충량 자체가 용으로 표현된다. 양쪽 벽에서부터 길게 뻗어 나온 용의 몸이 대들보 위에 목을 걸치고 있는 형태다.

이렇게 용들은 사방에서 부처님이 앉아 있는 불단을 감싸고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동시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암사 대웅보전 내에 불단을 감싸고 있는 닫집과 천장. 용이 부처님을 호위하는 모습이다. 

 

화재를 막는 용

법당의 용은 불법을 보호하는 호불(護佛)의 역할뿐 아니라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더 가진다. 우리나라 사찰은 목조 건물이기 때문에 화재에 아주 취약하다. 용은 물을 지배하기에 용 장식은 화기(火氣)를 누르는 역할도 한다.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은 많은 용 조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법당에 앉아 천장을 둘러보면 용이 사방을 빈틈없이 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개의 충량, 네 개의 귀포, 정면 어칸의 세 개의 용 머리까지 모두 아홉 마리의 용이 부처님을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구룡(九龍)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아홉 마리에 닫집 안에 있는 세 마리까지 더하면, 총 열두 마리의 용이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화려하고 강렬하게 장식된 것이다. 

 

용가의 악찰보살

법당 안에서는 벽화에 반야용선을 그리거나 작은 조각으로 용선을 만들어 천장에 매달아 놓기도 한다. 용가(龍架)라고 하는 이 조각은 가로로 긴 나무 막대기의 한쪽 혹은 양쪽을 용머리로 만들어 공중에 장식한다. 워낙 그 수가 적기도 하고, 법당 천장에 연등이 많이 달려 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히 보면 막대기에 용의 비늘과 배의 문양도 표현돼 있다. 용의 배 부분이 되는 막대기 아래에는 풍탁(風鐸)이라고 하는 여러 개의 종이 일렬로 달려 있다. 이 용가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법회 시에 사용한 예불 도구로 추측된다.

청도 운문사 용가

용가의 양쪽 끝, 용의 턱 아래에 작은 고리가 달려 줄을 매달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작은 동자가 매달려 있기도 하다. 줄에 매달린 동자를 ‘악착(齷齪)동자’ 혹은 ‘악착보살’이라 한다. 용가 위에 청조(靑鳥)가 앉아 있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다. 보통 용가는 법당의 서쪽 대들보 근처에 매달려 있다. 흔히 ‘서방정토 극락세계’라고 말하듯이, 극락세계는 서쪽에 있다는 불교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법당 안의 용들은 하나하나가 불국토를 장엄하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법당이 극락세계임을 나타내기 위해 아름답고도 엄숙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충량과 같은 큰 부재에서부터 아주 작은 곳까지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다.

 

사찰 곳곳의 용

용은 불교에서 천룡팔부(天龍八部)를 대표하는 신중의 하나로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호법신으로 나타난다. 용은 3귀의와 5계를 받은 최초의 축생이자,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깨달은 축생이다. 또한 용은 사찰에서 용왕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사찰에 용이 유독 많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잦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민족에게 상징성을 지닌 신앙적 존재를 갈구하게 했다. 즉 호국적 의미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삼국통일을 거치며 발전하기 시작한 호국룡은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의미가 더 발전하게 된다. 두 차례 전쟁으로 백성들은 큰 피해를 봤고, 자연히 고통스러운 현실에 호국에 대한 염원과 극락세계로의 열망은 커져 나갔다. 이러한 염원이 사찰의 여러 모습에 반영된 것이다. 

이 밖에도 용은 사찰을 출입하는 다리에도, 일주문 기둥에도 조각돼 있다. 사찰 영역이 시작되는 곳부터 용은 곳곳에 장식되는데, 불교에서 이런 지위를 지닌 것은 용이 유일하다. 우리는 사찰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수많은 용의 보호를 받는다. 사찰은 극락세계로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공간인 것이다. 사찰 곳곳에 숨어 있는 용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깨달음의 세계, 극락세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유동영

 

김희진
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원. 한국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용 도상의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 불교의 용 도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용왕각과 용왕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불교문화와 불교민속을 중심으로 한 용(龍) 문화에 관한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