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가치관

용타 스님의 생활 속의 수행 이야기

2007-09-17     관리자
병술년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불광 불자님들의 가정에 보다 좋은 일들이 많으시기를 빕니다. 몸도 더 건강하시고, 마음도 더 평안하시고, 원하시는 것들이 두루 성취되시고, 무엇보다도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보살도가 더 육화(肉化)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과 인연 된 지 벌써 한 해를 지나고 있군요. 이 인연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좌우지간 저는 여러분과 인연된 이 마당이 늘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이 달에는 삶과 가치관에 대해서 명상해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진리-삶

세상에서 제일 귀한 진리는 무엇일까요? 단도직입으로 정답 하나를 말한다면 ‘삶’ 자체, ‘인생’ 자체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 자체 말입니다. 그 삶 자체를 제해두고 더 우선한 진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좋은 것도 자신의 삶이 있고 난 다음에 의미가 있습니다. 삶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의미요, 가치요,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제1 주제인 이고득락(離苦得樂)이나, 달마 스님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나, 마조 스님의 여즉시불(汝卽是佛) 등을 가만히 명상해보면 삶 자체가 핵심 진리임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삶으로서 숨쉬고 있는 이 실존(實存)에 깊은 의미 파지(把持)를 못한다면 선불교의 선지(禪旨)들은 영원히 그림의 떡과 같을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의 영역이 아닌 삶 자체가 하드웨어라면 지성과 의지로 운영되어지는 삶의 내용은 소프트웨어입니다. 필자는 가끔 110 발상을 떠올립니다. 사람은 태어남 자체로, 즉 삶 자체로 이미 100이요, 평생 무엇인가를 작위(作爲)함으로써 나머지 10을 채워 110이라는 완성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드웨어적인 삶 자체로 이미 100인 것이니 나머지 10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이미 확보된 100의 대(大) 긍정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100의 의미인 삶 자체가 그토록 중요하기는 하나 그 삶의 내용이 좋지 않다면 어떻겠습니까? 병들고 가난한 삶, 여러 장애로 꼬이는 삶, 소망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는 삶,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삶, 각종 재난으로 고통이 이어지는 삶 등은 차라리 죽음이고 싶은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 자체의 소중함을 고려하기 어렵고, 다양한 측면으로 삶에 집착하게 됩니다. 요컨대, 삶 자체의 소중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삶의 내용을 충실히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깊게 유념해야 합니다.

인생의 핵심적인 길-정견(正見)

자, ‘삶’입니다.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삶 자체는 인위(人爲)권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삶의 내용을 풍요롭게 엮어가는 일은 우리의 지혜와 의지권에 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10의 의미인 소프트웨어적 삶을 보다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적으로 중대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다양하게 이야기 될 것입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엮어가는 길의 전반을 명상한다는 일은 또 하나의 주제로 넘기고, 그 길의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주제로 명상해 봅시다.

즉 인생을 풍요롭게 영위하는 핵심적인, 혹은 제일 중요한 길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설문에도 다양한 답이 있을 것입니다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본다면 단연 바른 가치관 정립, 곧 정견(正見)입니다.

마음에 설정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대각을 성취하시고 천하에 법을 펴실 때, 여덟 가지의 길, 곧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를 실천 덕목으로 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덟 가지 중 제 1번을 정견(正見: 바른 가치관)으로 정하신 것을 우리 불제자는 명상적으로 음미해야 합니다. 팔정도(八正道)에서 정견(正見)을 도체(道體)라 하고 나머지 일곱 개의 덕목을 도지(道支)라고 함의 의미도 가만히 사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아(無我)를 삶의 현실로

팔만대장경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8만여 개가 된다는 뜻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바로 천하에 대한 바른 지혜, 바른 견해 곧 정견(正見)을 의미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 불자님들은 그 많은 정견 체계들 중에서 어떤 정견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신의 가치관으로 익히고 있습니까? 익혀진 그 정견을 얼마나 삶으로 살고 계십니까? 예컨대 부처님의 정견 가르침 중에서 가장 손꼽히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하나 들고 스스로를 돌아볼까요? 우리 불교인에게 있어서 무아란 정견 중에서 정견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 입문한 지 한 3년 정도만 되면 무아(無我)는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의 가치관으로 익혀져야 하며, 무아(無我)를 삶의 현실로 충분히 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불조(佛祖)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활구(活句)가 되도록 깊게 받아들여 가치관(정견)으로 정립하고, 보다 깊은 명상을 통해 초점이 선명한 가치관이 되게 하며, 명실 공히 구체적인 삶의 기준이 되게 하는 것이 생활 수행의 기초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