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이 다가오는 전법 수행의 큰 뜻

특집 | 생활속의 불교수행 - 전법

2007-09-17     관리자
불교를 본격 접한 것이 대학 입학해서니까 사반세기가 됩니다만 수행과 전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이 수행이고 무엇이 전법인지 그저 헷갈리기만 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합니다.

방황 속에 만난 J스님

순탄하게만 느껴지던 삶에 변화가 온 것은 대학 졸업을 전후한 때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대학 4년 동안 불교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정말 잘 몰랐습니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이나 가야 한다고 생각한 곳도 없었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취직을 하기가 썩 자신도 없고 내키지도 않았습니다. 생각을 다듬을 겸 군복무를 할 요량도 했지만 그마저 시력이 안 좋다며 면제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학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한 데다 모 선배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이른바 민중불교운동을 한답시고 6개월을 지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나 자신부터 확신이 부족한 데다 아버님의 병도 깊어지고 가정이 불안해지면서 그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선배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말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던 그 때 저는 자신을 추스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마디로 전법보다는 수행 쪽에 무게를 둔 셈이지요.

부처님 말씀을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벳어로 된 원전공부를 하면서도 뭔가 미진한 점을 느끼며 방황하던 중 J스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제게 너무나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날을 토론을 주고받으며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제 자신의 논리가 너무 유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는 마치 소크라테스식 문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것을 들이대도 그에 대한 제 자신의 답변은 너무나 정리되지 못했고 엉터리였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참선을 하든 간경을 하든 염불을 하든 절을 하든 자신의 생각을 살펴본 일이 참말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저는 그렇게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가졌던 것입니다. 저로서는 그렇게 수행의 한 귀퉁이를 맛본 셈입니다.

수행과 전법 사이

그리고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 공부는 그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것은 결국 제 잘못이었습니다. 왜냐구요? 부처님과 역대조사께서는 늘 한결같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저는 너무 속이 좁았습니다. 생각의 폭과 깊이가 적었습니다. 그마저 저만의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게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죠.

왜냐구요? 제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남을 돌보냐고 생각한 것입니다. 소경이 대중을 이끌면 모두가 구덩이에 빠진다는 옛 말씀을 그럴듯하게 들이대면서 말이죠. 그러니 수행이 제대로 안됐을 뿐더러 전법은 생각지도 못했겠지요. 스님은 늘 저에게 다른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가질 것을 주문했지만 제겐 잘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그게 제 착각이었습니다. 내가 법을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데 굳이 전법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전법할 의욕이 생기다가도 힘들고 기분이 나빠지면 전법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공부는 반쪽에 머물렀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만의 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그것은 제 주위에 높은 벽을 쌓는 엄청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법을 조금 공부했다는 이유로 자기 잘난 게 돼버린 셈입니다. 전혀 공부가 안 된 것은 모르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전법은 의무사항이라기보다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기수행에도 커다란 장애가 된 셈입니다.

1주일간의 단기출가

이러한 저의 잘못을 눈치 챈 것은 불과 몇 년 전입니다. 그 동안 수련대회에 참석해보라던 스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저는 제 길을 고집했습니다. 여름 한철 휴가를 어떻게 제 자신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느냐, 가족과 함께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며 수련대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여름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휴가를 가기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수련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집사람의 반허락만 받고 저는 수련대회에 참석했습니다. 1주일 단기출가로 공부를 하면서 제 자신의 생각에 많은 구멍이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처음 스님을 만나 공부하던 때 이상 충격이 있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수련대회 참석대중들과의 토론 중에서도 어떤 것을 집어 들어도 제 생각은 법답지 못했습니다. 수련대회를 계속하면서 지금까지 제 공부의 문제점들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어떤 것이든 단순논리로 생각하다보니 이것과 저것을 딱 떼어놓고 봤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의 모습을 순간에 착각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연기법적으로 생각해도 이것은 이것일 뿐이고 저것은 저것일 뿐이었습니다. 연기법을 공부했다고 하지만 순간순간 나를 세상과 분리시켜놓았던 것입니다.

또 언제나 내가 내린 결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이 진실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제 생각처럼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 그러니까 수행과 전법이 둘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전까진 제겐 둘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불광사를 창건하신 광덕 스님께서는 일찍이 전법수행의 기치를 들고 도심포교에 앞장서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스님은 수행과 전법을 둘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수행이 곧 전법이요, 전법이 곧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전법이 최상의 공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스님의 크신 원력이 불광인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와 국민에게 미쳐 우리 사회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으면 합니다.

김봉래 님은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국대 인도철학과 석사과정을 졸업, 1990년 불교방송 입사 이래 보도국에서 근무 중이다. 조계종 국제포교사회 회장 소임을 맡아 국제포교에도 진력 중·고성염불로 수행의 틀을 잡아 나름대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