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은 수행입니다

권두칼럼

2007-09-17     관리자
요즘 세상은 살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고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지상에서 보도되는 사건과 사고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세상을 스스로 버리는 가장, 부모 없이 혼자 버려진 채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로 성폭력, 총기난사, 방화, 폭행 등을 범하는 사람들,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체, 쓸쓸히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독거노인… 이런 뉴스를 듣다보면, 이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얼마 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서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우려하며 이를 해소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가나 사회는 그렇다 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아픈 사연을 들어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그리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버림받게 되기까지, 아마 나름대로 도움의 손길을 우리를 향해 뻗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소외받고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 없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세상을 버리고 싶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자비의전화에서, 사찰에서 제가 십수년 동안 해 온 일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비우고 그들의 괴로운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서 ‘얼마나 아프겠나’, ‘얼마나 힘들었겠나’ 하는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그 아픔을 느껴주는 것, 이것이 ‘상담’입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설령 그가 피를 나눈 내 가족이 아닌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끝내 극단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온통 다 쏟아내어 놓으면, 억울한 마음, 분한 마음, 섭섭한 마음, 수치스런 마음 등에 휩싸여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주변의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주변 상황 속에 매몰되어 있던 자기 자신도 다소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법을 깨닫고 나서 자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되면, 모든 것이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 그리고 헛된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이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상담을 해 주는 사람은 끝까지 잘 버텨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하는 일은 수행이라고 합니다. 상담하는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탐냄, 성냄, 어리석은 마음 등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상담 받으러 오는 사람의 그것도 제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담자의 삼독심이 강할수록 내담자가 더 큰 상처와 화를 입을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늘 깨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끊임없이 수행정진을 해야 합니다.

서양에서 건너 온 상담심리와 정신치료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양식 상담에서 많은 한계점을 느끼고 우리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법에서 그 대안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서양에서는 문제와 문제해결 방법, 그리고 상담자와 내담자가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들이 결코 둘이 아니며 연기(緣起)에 의해 상의상관(相依相關)하고 있기에 무명을 깨침으로써 동시에 문제해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상담자 자신이 끊임없이 수행을 하여 자신의 무명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한 상담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불교계에도 상담분야가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상담분야가 활성화되면 상담자도 많이 양산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할 것이,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며, 자기 자신도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다 제도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시면서,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이 세상의 소리를 다 듣고 계시는 관세음보살님이야말로 우리 상담자가 배워야 할 모델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