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당간 강릉 삼척] 강릉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

“인월사로 오세요~ 작약 꽃차 만들어 놓을게요”

2023-06-27     송희원
강릉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

화마가 휩쓴 신라시대 절터 인월사 

“이 가문데 피느라고 애쓴다, 애써.”

재를 털어내고 피어난 작약꽃에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이 안타까운 안부 인사를 건넸다. 스님은 작년 11월 경내에 작약꽃 5,000송이를 심었다. 하지만 화재로 작약 대부분은 타버리고 몇 송이는 뒤늦게서야 겨우 꽃망울을 터뜨렸다. 인월사가 있는 강릉 경포 일대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지 두 달이 지났다. 2023년 4월 11일 오전 8시 30분, 경포호 인근 강풍으로 쓰러진 소나무가 전봇대를 건드리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강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은 삶의 터전이었던 펜션과 가정집 400채를 태우고, 45년 동안 강릉 시민들의 신행·수행공간이었던 인월사마저 앗아 갔다. 목조로 지은 대웅전, 담마선원, 관음전, 어린이 법당, 요사채, 공양간 건물이 모두 불에 타 붕괴됐다. 

“불길이 번지기 전, 바람이 심상찮아서 은사 스님을 모시고 대피했어요. 경찰이 통제해서 경포호숫가에 서서 불길이 올라오는 걸 지켜봤는데 30, 40분 만에 다 타버린 거예요. 절 근처 소나무도 펜션도 활활 타고, 온 사방이 전부 불바다였어요. 6월 초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작약 축제를 열려고 준비해 놓고 꽃필 날만 기다렸는데….”

일주문 안으로 남은 것은 석불 미륵부처님과 콘크리트 건물 한 채뿐. 건물 잔해에서 타버린 청동 불상을 거둘 새도 없이, 다가오는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전소된 전각들의 철거는 국비로 처리돼 봉축 행사 전 경내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막 법당을 마련해 부처님을 모시고 밤새워서 등을 달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했다. 

“부처님오신날에 산불 피해 주민들과 신도들을 위해 봉축 치유 공연을 열고 잠시나마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렇게 봉축은 잘 치렀는데, 오후부터 비가 내리더니 천막 법당 안으로 물이 새서 법당을 다시 다 걷어냈어요. 예전처럼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건립될 때까지는 여러분들이 관심과 응원 주시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해요.” 

인월사는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사찰이었다. 옛 문헌 기록에 고려 충숙왕 13년(1326) 강원도 안렴사 박숙이 ‘인월사 옛터’에 경포대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경포호 근처에 있는 경포대의 원래 자리가 바로 옛날 인월사 터였던 셈이다.   

재범 스님은 지금의 인월사 뒷산이 인월사 옛터이자 경포대의 본래 자리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신라시대 굴산사, 신복사, 한송사가 있었을 당시 인월사도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은사 대성 스님이 1979년 인월사 옛터의 밭뙈기를 사서 조금씩 땅을 넓히고 불사를 해왔다.

“강릉 굴산사는 당간지주와 범일국사 승탑, 신복사와 한송사에는 석조불상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요. 이러한 유적들로 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는 것과 절의 규모가 고증됐죠. 아쉽게도 인월사는 유적이 없어요. 1980년대 초반 고고학자들이 인월사 옛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했지만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어요. 불이 났거나 없어졌을 수 있죠. 
하지만 강릉 하면 경포대고, 그 경포대가 바로 인월사 옛터에서 시작됐어요. 관동팔경으로 꼽히는 강릉 경포대에는 하늘·바다·호수·술잔·찻잔·눈동자에 6개의 달이 뜬다고 해요. 공교롭게도 인월사도 ‘도장 인(印)’ 자에 ‘달 월(月)’ 자를 써요. 이러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인월사라는 아름다운 절을 잘 가꿀 필요가 있죠.” 

유물 하나 없이 기록으로만 남은 ‘옛 인월사’, 화재로 또다시 터만 남은 ‘현재의 인월사’. 하지만 스님은 “덕분에 더 잘된 거예요”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철거된 터를 보고 신도들이 ‘스님 인월사가 터가 원래 이렇게 넓었었나요?’라며 놀래요. 이 넓은 땅으로 새롭게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관음전과 공양간, 어린이 법당은 지은 지 40년 된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계속 고쳐 써왔어요. 사실상 재건축 대상이었죠. 이번 기회로 잘 정비해서 새로운 프로그램도 열고, 새롭게 출발해야죠.”

 

스님의 만행, 대중 속으로

재범 스님은 2004년 인월사에서 강원도 최초의 위빠사나 수행도량 담마선원을 개원해 이끌어왔다. 점차 선원이 자리 잡으면서 2016년부터는 7~14세 어린이 30~40명을 대상으로 무료 명상 캠프도 꾸준히 열었다. 스님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세월 만행 길에서 만난 불교가 있다. 

어린 나이에 동진 출가해 강릉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재범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한 뒤 대중포교 운동을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80년대 중반 서울 삼양동 빈민촌 어린이집에서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포교했다. 어린이에게 불교를 쉽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불교계 최초 어린이 교양 잡지 「굴렁쇠 어린이」 주간을 맡았다. 문서포교를 위해 잡지를 차 트렁크에 싣고 종단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대중불교 포교 1세대로 불리는 선배들이 ‘불교가 산에서 나와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땐 노스님들이 조용한 절에서 무슨 풍금 소리가 들리냐며 선배들을 혼내기도 했죠. 대중포교 2세대인 저 역시도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봉제공장이 있는 구로동 포교원에서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어린이 포교 역시 아이들이 불교라는 심성을 가지고 커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투자하는 일이라 생각했죠. 돈이 있어도 돈이 없어도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활동했어요.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포교하는 것. 그런 것들이 저의 진정한 만행이죠.” 

이후 스님은 1996년 대구불교방송 개국과 함께 ‘산사의 향기’, ‘살며 생각하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선방에서 수행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책으로 접했던 위빠사나를 수행하기 위해 방송을 정리하고 무작정 미얀마로 떠났다.

“한국 선방 수행이 저와 잘 맞지는 않았어요. 미얀마에 가니 지도하는 스님들이 수행 단계에 따라 개인 인터뷰도 해주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좋았어요. 이런 합리적인 수행 프로그램이 현대인과 잘 맞을 것 같아서 한국에 가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은사 스님이 선방을 내어 주셔서, 2004년 인월사에 담마선원을 개원했어요. 화두선이 맞는 사람은 화두선, 위빠사나가 맞는 사람은 위빠사나를 하면 돼요. 다 부처님 가르침이니까 가릴 필요가 없죠. 단지 자기 성향에 맞는 것을 선택해서 수행하는 게 중요해요.”

 

이제 인월사는 전국구!

재범 스님이 현재 인월사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화재 이전부터 기획해 놓은 치유농장 프로그램으로 자비와 가람의 ‘람’ 또는 ‘쪽빛 람(藍)’ 자를 합쳐 ‘자비람’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비람은 보건의료와 농업을 연결해 고령자 또는 취약계층의 심신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인월사 텃밭이나 자연에서 난 풀이나 꽃 등을 활용해 요리하거나, 용액으로 생화를 동결시켜 부채나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으로 만드는 ‘프리즈 버드’ 체험을 할 예정이다. 대상은 학교 밖 청소년이나 장애인 독거노인 어르신들. 

텃밭에 50여 가지 꽃을 심었는데 그중 메인은 작약꽃이다. 이 꽃은 식용이라 화전도 부쳐 먹고, 식초로도 만들 수 있다. 또 뿌리는 한약재로 쓰거나 달여서 어르신들 족욕을 해드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스님은 여성 농업인으로 등록해서 건조기를 지원받고, 족욕기도 사놨었다. 준비해 놓은 것들이 모두 타버렸지만, 스님은 “어린이 포교든 치유농장이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할 수 있다”며 “인월사에는 캠핑할 수 있는 넓은 터와 2,000평이나 되는 밭이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홍보 없이 아는 사람만 와서 조용히 수행을 해왔는데, 이번 화재로 방송을 타면서 인월사가 전국구가 됐어요. 이제 누구나 와서 수행하고, 치유농장 체험도 할 수 있도록 완전히 오픈하고 확장해야죠. 부처님도 초창기에는 숲속에서 사시면서 나무 밑에서 수행했어요. 제자들이 수행하다가 호랑이에 물려간 이야기가 경전에 나오는데,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대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잘사는 거죠. 인월사는 기도와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할 거예요. 언제든지 오세요. 제가 작약 꽃차 만들어 놓을게요.”  

 

2023년 4월 11일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뒤 인월사의 모습. 사진 인월사 제공.

인월사 복원불사

● 인월사 주소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463번안길 21-12
● 후원계좌  농협 30102-254-37231 (인월사)
● 문의  033-644-1685 / 010-4678-1685

 

사진. 유동영